2004-11-24
경기중 다리가 ‘후들’ 어젯밤 혹시?
지난 11월13일 2001-2002 애니콜프로농구 정규시즌 원주 삼보와 서울 SK나이츠의 경기가 열린 원주 치악체육관의 관중석. 미모의 한 흑인 여성이 삼보의 해리 리브즈(27·199.8cm)가 득점할 때마다 흐뭇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리브즈의 ‘걸 프렌드’ 크리스털 헤어스턴씨. ‘보이 프렌드’를 만나기 위해 멀리 미국 애틀랜타주에서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좋은 우리말인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를 놔두고 굳이 ‘∼프렌드’와 같은 영어를 사용한 이유는 뒤에 밝히겠다.
이날 리브즈는 다른 경기와 달리 후반에 슛 거리가 다소 짧아지는 등 체력의 문제점을 드러냈고,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삼보는 홈에서 아쉽게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4쿼터 내내 쉴새없이 뛰어다니기로 유명한 ‘강철 체력의 소유자’ 리브즈는 왜 피곤함을 감추지 못했을까. 경기가 끝난 뒤 삼보 관계자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 까닭을 우선 ‘걸 프렌드’에게서 찾았다. 경기 전날 입국한 ‘걸 프렌드’와의 애틋한 정을 자제하지 못해 밤새 사랑의 밀어를 나눴기 때문이라고 추리했던 것.
프로농구 구단 관계자들은 시즌이 시작된 뒤 외국인 선수들이 ‘걸 프렌드’를 초청하겠다고 얘기하면 다소 긴장하게 된다. 혹시라도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까 해서다. ‘걸 프렌드’와 경기력 사이에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기에?
외국인 선수들이 말하는 ‘걸 프렌드’란 단순한 여자친구가 아니다. 우리 식으로 해석하자면 ‘애인’ 또는 ‘결혼을 약속한 상대’에 가깝다. 즉 쉽게 얘기해 한방에 묵어도 그리 큰 흠이 되지 않는 관계인 것이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낯선 이국 땅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오랜만에 만나는 ‘걸 프렌드’는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존재다. 여행자들이 때로는 오아시스의 샘물을 너무 많이 들이켜 배탈이 나듯, 외국인 선수들도 가끔은 ‘걸 프렌드’와의 사적인 관계에 지나치게 열중하다 경기에 차질을 빚을 때가 있는 것이다. 자, 이만큼 상세히 설명했으면 구단 관계자들이 남의 남녀관계에 안테나를 세우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이해되리라 믿는다.
지난 97-98 정규시즌 때 당시 청주 현대 걸리버스(현 전주 KCC 이지스) 소속이던 서울 SK빅스의 ‘탱크’ 조니 맥도웰(30·194cm)은 때맞춰 한국에 온 여자친구를 밤새 접대(?)하느라 코트에서 별명답지 않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으로 일관해 세인의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이 글로 인해 외국인 선수들의 갑작스러운 부진을 모두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피곤해한다고 ‘저 친구 어젯밤 혹시?’라며 쓸데없는 상상만 계속하면 농구 관람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조성준 /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when@sportsseoul.com
주간동아 311호 (p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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