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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승리의 여신' 부르는 별별 황당 징크스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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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9. 27

 

야구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대표적 징크스들이 있다. 경기 전에는 달걀을 깨지 말 것, 미역국을 먹지 말 것, 면도하지 말 것, 전날 이길 때 입은 옷을 또 입을 것 등이다. 

온갖 세밀한 데이터와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경기를 치르는 2018년 프로야구에도 ‘징크스’라는 비과학적이고 ‘원시적’인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야구는 선수의 마음가짐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멘탈 게임’으로 유명하기에 더 그렇다. 지금은 은퇴한 한 베테랑 선수는 몇 년 전 “팀이 연승 중일 때 집에서 야구장으로 나오다가 며칠째 빨간 불에 걸리던 횡단보도에서 파란 불이 켜졌다. 무심코 지나쳤는데, 경기 내내 이기고 있는데도 그 생각이 나서 찜찜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성적에 따라 울고 웃게 되는 감독과 선수들은 승리하기 위해 어떤 불편도 감수한다. 그들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마음의 지푸라기’가 징크스인 셈이다. 징크스는 주로 ‘재수 없는 일’ 혹은 ‘불길한 징조나 악운’으로 설명되는 단어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을 얻기 위해 징크스를 만들고 따른다. 

▲ 역대 최고 홈런타자 이승엽은 홈런 친 날 유니폼을 반드시 다음날 다시 입곤 했다.

 

# 전설에게도 징크스는 있다 


A 선수는 “징크스는 내게 부적과도 같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십자가, 불교인들에게는 염주가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워낙 경기 때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심하기 때문에 우리도 일종의 종교처럼 마음을 기댈 곳을 찾게 된다”며 “징크스를 잘 안 믿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이기는 날 행동했던 패턴을 그대로 지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레전드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역대 최고 홈런 타자 이승엽은 한때 경기에서 홈런을 치면, 그날 입었던 유니폼을 반드시 당일 밤에 세탁해 다음날 다시 입곤 했다. 구단에서 선수들에게 유니폼 여벌을 넉넉하게 지급하지만, 홈런의 기운을 이어가기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일본 요미우리 시절 긴 슬럼프에 빠지자 “너무 경기가 안 풀려서 야구장에 출근할 때 일부러 다른 길로 바꿔서 가보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화의 전설이었던 ‘대성불패’ 구대성은 현역 시절 한여름에 겨울용 패딩 점퍼를 입고 워밍업을 했다. 반대로 남들이 다 두꺼운 옷을 껴입고 팔을 푸는 3월 시범경기 때는 여름용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그야말로 ‘기행’에 가까웠지만, 스스로 그 이유를 절대 얘기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본인에게 중요한 징크스였던 것 같다”고 짐작했을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의 새 역사를 아로새긴 스즈키 이치로는 야구에 대한 장인정신을 식습관으로도 표출했다. 2001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줄곧 경기 전 식사로 같은 메뉴를 고집했다. 홈경기 때는 아내가 만들어준 ‘승리의 음식’ 카레로 식사를 했고, 원정 경기 때는 페퍼로니 피자를 먹고 경기에 나갔다. 이치로가 카레나 페퍼로니 피자를 유난히 좋아해서가 아니다. 카레는 대량으로 만든 뒤 냉동보관하기 쉬워 아내가 집을 비웠을 때도 언제든 데워먹을 수 있고, 페퍼로니 피자는 미국 전역 어디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라서다. 혹시 모를 ‘변수’를 최소화하겠다는 이치로의 의지다. 

사실 야구를 잘하는 선수일수록 독특한 징크스가 더 많다. 경기가 잘 풀리는 날이 보통 선수들보다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인생은 …처럼’이라는 별명의 원조인 이호준은 현역 시절 스스로 “징크스가 100개도 넘는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일단 손톱과 발톱은 무조건 월요일 오전에 깎았다. 동료 투수가 경기장에서 손톱을 깎는 모습을 목격한 뒤 4타수 무안타에 그친 적이 있을 정도다. 미역국은 시즌 중에 절대로 먹지 않았다. 가족의 생일이어도 예외는 없었다. 아내 홍연실 씨는 심지어 요리에 쓸 달걀을 하루 전에 미리 깨놓았을 정도다. B 선수는 “징크스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면 나약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일부러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선수들도 많다”며 “하지만 대부분 좋은 경기를 했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무의식중에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 정민태는 음식 징크스까지 철저히 지켰던 선수로 유명하다.

 

# 징크스의 기본은 ‘루틴’이다 


사실 징크스의 기본은 ‘루틴(routine)’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을 꼭 해야 심신이 편하다는 선수들이 많다. 이런 선수들은 반대로 그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널리 알려진 삼성 박한이의 타격 준비 동작도 그중 하나다. 공 하나마다 헬멧을 다시 쓰고, 장갑 손목 부분을 다시 조이고, 배트로 바닥에 선을 긋는 등 일련의 동작이 이어진다. 심지어 헬멧을 쓰는 방법조차 정해져 있다. 헬멧 안쪽 부분이 얼굴에 닿을 듯이 바짝 앞으로 붙이면서 정교하고 정성스럽게 머리에 끼운다. 한 스포츠방송사의 측정 결과, 이 동작들은 과거 한 세트에 총 24초가 소요됐다. 구단 관계자는 “프로야구에 ‘12초 룰’이 도입되면서 박한이도 동작을 몇 가지 생략하려는 시도를 해봤다”며 “그런데 하나라도 빠지면 결과가 좋지 않았다. 결국 12초 안에 압축해서 다 끝낼 수 있게 같은 루틴 안에서 동작 하나하나에 좀 더 속도를 붙이게 됐다”고 귀띔했다.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인 정민태는 ‘음식 징크스’까지 철저하게 지켰던 선수로 유명하다. 등판 다음날부터 이틀은 고기, 그 다음 이틀은 회를 각각 먹었다. 그리고 등판 전날인 5일째 휴식일에는 반드시 채식으로 몸을 가볍게 했다. 섭취하는 영양분의 밸런스를 고르게 맞추겠다는 의도였다. 등판 당일에는 주로 회를 먹어야 경기가 잘 풀렸다는 후문이다. 당시 현대 운영팀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염경엽 SK 단장은 “정민태가 등판하기 전날에는 다음날 식사하러 갈 횟집부터 찾아 놓아야 했다”며 웃기도 했다. 비단 정민태뿐 아니라 수준급 선발투수들에게는 경기에 나서지 않는 4일간 다음 등판을 준비하는 자신만의 루틴이 반드시 존재한다. 처음 선발 보직을 맡게 된 투수들은 이 루틴을 정립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정도다. 

롯데 손아섭은 경기 시작 15분 전 명상을 하는 루틴이 있다. 조용한 곳에 혼자 눕거나 앉아 눈을 감고 당일 상대 선발 투수의 투구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슬럼프가 깊어지거나 집중력이 더 필요한 경기일 때는 더 어둡고 밀폐된 공간을 찾게 된다는 후문이다. 그는 “명상을 거르면 불안하다. 명상을 해야 타석에서 집중력이 높아지고, 명상을 빼먹고 경기에 나서면 결과도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후 타석에 나가서는 자신의 배트 끝을 날카롭게 노려본 뒤 상대 투수를 향해 강한 눈빛을 보낸다. 승부에서 지지 않겠다는 무언의 다짐이다. 

# 감독들도 징크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선수들에게만 징크스가 있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 팀 승리가 간절한 감독들도 알고 보면 징크스에 죽고, 징크스에 산다. 이 분야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레전드’가 바로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이다. 평생을 야구와 함께 걸어온 김 전 감독에게는 징크스가 인생의 일부분이자 일종의 종교다. 
 

▲ SK 시절 김성근 전 감독은 ‘수염 징크스’로 명성이 자자했다. 첫 승리 때 우연히 수염을 깎지 않았다가 16연승 내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야 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SK 감독 시절이던 2010년의 ‘수염 징크스’다. SK가 기적과도 같은 16연승 행진을 펼칠 때였다. 김 전 감독은 첫 승리 때 우연히 수염을 깎지 않았다가 연승기간 내내 면도를 하지 못하고 희끗희끗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야 했다. 연승이 끝나고 수염을 깎을 때는 “자르기 정말 아쉬웠다”고 했는데, 실은 “연승이 끝나서 아쉽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김기태 KIA 감독을 비롯한 많은 후배 감독들이 연승 때 이발을 하지 않거나 면도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승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곤 했다. 

자잘한 징크스는 나열하기도 숨 가쁘다. 이긴 날 양말을 왼쪽부터 신었다면, 그 다음날도 똑같은 순서대로 양말을 신어야 했다. 한밤중에 치킨 집에 갔다가 다음날 팀이 이기면, 질 때까지 매일 밤 그 가게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치킨을 먹었다. 우연히 반바지를 입고 왔다가 연승을 한 뒤로는 출근 복장으로 점점 더 짧은 바지를 고집했다. 늘 가던 이발소 대신 원정 숙소 이발소에서 급하게 머리카락을 잘랐다가 경기에 패한 뒤에는 아예 고교생처럼 머리를 밀어버렸다. 경기 후 맥주 한잔을 즐겨 하지만, 먹지 않고 잤다가 연승을 하면 바로 금주에 돌입했다. 자전거를 타고 왔다가 팀이 이기면 다음날도 같은 길로 자전거를 타고 야구장에 도착했다. 김 전 감독은 “이기면 이 모든 과정이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 오른손을 불끈 쥐고 있는 한화 시절 한대화 전 감독. 애제자였던 박석민이 오른손을 덥석 잡은 뒤부터 한화전에서 활약하자 오른손을 가리고 다녔다.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은 매사 무던한 편이었지만 유독 ‘박석민 징크스’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민감했다. 웃지 못할 사연이 있어서다. 삼성에서 오랜 기간 코치로 일하던 한 감독이 2010년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한화와 삼성이 맞붙는 날이면 애제자였던 박석민(현 NC)이 늘 인사를 하러 오곤 했다. 하지만 박석민이 한 감독의 오른손을 덥석 잡은 뒤부터 유독 한화전에서 펄펄 날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박석민은 어떻게든 경기 전에 한 감독의 오른손을 잡으려고 애썼고, 반대로 한 감독은 박석민이 나타나는 순간 자신의 언더셔츠 소매를 바짝 끌어당겨 오른손을 가리곤 했다. 철저히 오른손을 사수하던 한 감독이 잠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사이 박석민이 기습적으로 손을 터치하고 달아나는 해프닝이 벌어졌을 정도다. “그저 은사께 인사를 드리러 왔을 뿐”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박석민과 “이긴 다음날은 안 올 줄 알았다. 완전히 ‘철판’을 깔았다”고 짐짓 한숨을 내쉬던 한 감독의 신경전은 당시 한화-삼성전의 유쾌한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가 하면 류중일 LG 감독은 삼성 사령탑 시절부터 징크스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스타일이다. 아마추어 때 경기 전에는 달걀을 먹지 않았던 게 유일하다면 유일하다. 땅볼 타구를 수비하다 공을 뒤로 빠뜨려 일명 ‘알을 까는’ 실책을 했는데, 한 선배가 “너 달걀 먹었지? 그러니까 알을 까지”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 입단 뒤에는 “달걀을 안 먹고는 힘을 낼 수가 없다”는 이유로 단 하나 있던 징크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류 감독은 “징크스가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가능한 한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있으면 너무 피곤하다”며 웃었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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