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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PS 오르고도 퇴진한 감독들 사연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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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9 

 

“내년 시즌에는 SK와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55)은 10월 13일 인천에서 LG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소집했다. “‘중요한 할 말’이 있으니 더그아웃 인터뷰 대신 정식 간담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구단에서 재계약을 제안해 왔지만 고심한 끝에 내년에는 SK 감독으로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힐만 감독은 2017시즌을 앞두고 KBO 리그 역대 두 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SK와 2년간 계약했다. 첫해이던 2017년 5할대 승률에 성공하며 팀을 와일드 카드 결정전으로 이끌었고 두 번째 시즌인 올해 SK를 정규 시즌 2위에 올려놓는 저력을 발휘했다.


SK는 힐만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해 일찌감치 재계약을 1순위로 검토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부터 여러 차례 힐만 감독을 만나 재계약 문제를 논의했다. 힐만 감독도 SK의 제안에 만족했다. “구단이 나를 원하고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느낌을 줘 무척 고마웠다. 이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른 결심을 내렸다. “SK를 사랑하고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SK 감독으로서 KBO에 머무는 것도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오직 ‘가족’ 문제로 미국에 돌아가야만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이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2018 KBO 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 행사에서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힐만 감독과 SK의 아름다운 이별, 뒷맛 씁쓸한 이유

 

좋은 성적을 남긴 사령탑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명예롭게 퇴진하는 장면은 아마도 모든 구단과 감독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아름다운 이별’일 터다. 힐만 감독은 2년간 머문 KBO 리그와 SK에서 ‘박수 받을 때 떠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다만 이 퇴진 발표를 놓고 시선이 엇갈리는 지점은 힐만 감독이 사퇴를 발표한 ‘시점’이다.

SK는 올해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정규 시즌 최종전을 무사히 끝낸다고 해도 아직 힐만 감독이 지휘해야 하는 게임이 최소 3경기에서 최대 12경기까지 남은 상황이다. 게다가 그 남은 경기들은 결과에 따라 SK의 1년 농사 성패가 좌우될 만큼 중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집중력이 필요하다. 포스트 시즌 종료 이후까지 발표를 미루지 않은 SK와 힐만 감독의 선택에 많은 이가 고개를 갸웃할 만하다.

힐만 감독은 이런 세간의 의문 역시 미리 예상하고 준비한 듯했다. 정규 시즌 종료를 앞두고 사퇴를 선언한 이유를 묻자 “지금이 가장 적절한 타이밍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2007년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감독직에서 물러날 당시 경험에서 깨달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가 설명한 요지는 결국 ‘팀을 위해서’였다. “나에게 초점이 쏠리는 상황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오로지 ‘팀’에 관심이 모여야 하고 그런 집중도가 흐트러지지 않기를 원했다”며 “언제나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정규 시즌 최종전이 끝난 뒤 PO가 열릴 때까지 13일간 휴식 기간이 있다. 오늘 이 얘기를 끝내야 그 기간 동안 이 화제가 마무리될 것으로 여겼다”고 했다. 이어 “이 문제로 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최대한 덜 미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며 “포스트 시즌에 우리가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남은 13일간 오로지 준비에 집중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선의가 늘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힐만 감독의 기자회견은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대부분 시간을 SK 관계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데 썼다. SK 구단주부터 사장·단장·코칭스태프·각 파트별 프런트, 선수는 물론이고 힐만 감독을 영입할 때 SK에 몸담았던 전 단장의 이름까지 일일이 언급했다. 또 그들에게 어떤 점이 어떻게 고마웠는지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이라기보다는 힐만 감독이 ‘SK 가족’들에게 전하는 공개적 작별 인사에 가까웠다.

재계약 제안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 문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2005년 일본에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때 68세에 불과했고 내게는 큰 비극이었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 아버지가 재혼하셨는데 올해 불행하게도 새어머니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크게 다쳤다. 동시에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지금 84세인 아버지께서 새어머니를 보살피신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환자 본인보다 그 환자를 보살피는 사람이 먼저 사망할 확률이 60%에 달한다고 한다”며 “물리적으로 아버지와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 그런 상황이 내게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결국 아버지 곁으로 가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굳이 ‘너무 많은 정보’를 다 공개하는 이유에 대해선 “내 결정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솔직하게 다 말해야 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힐만 감독은 일찌감치 SK와 이별을 예고했다. 앞으로는 언제든 비행기나 차를 타고 아버지에게 달려갈 수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계획이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메이저 리그에서 여섯 팀이 감독을 찾고 있고 다섯 팀이 단장을 구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직 나는 분명한 SK 감독이다. 앞으로 이어질 포스트 시즌을 함께할 수 있게 돼 영광스럽다”면서 “SK가 중요한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 ‘2019년판 힐만’은 누가 될까 / 서울신문


#팀을 PS로 이끌고도 퇴진한 감독들 

사실 계약기간이 끝난 사령탑이 먼저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은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한국에 ‘이방인’으로 머무는 외국인 감독들과 달리 한국이 삶의 터전인 국내 감독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령탑 자리를 지키려고 애쓸 수밖에 없어서다. ‘문책’이 아닌 이유로 스스로 명예 퇴진한 감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일한 사례가 2004년 삼성 사령탑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김응용 전 감독이다. 


해태 시절 팀을 아홉 번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 감독은 2000시즌을 마친 뒤 삼성 감독으로 부임했다. 한국 시리즈 우승 한을 풀고 싶었던 삼성이 김 감독을 ‘우승 청부사’로 영입했다. 김 감독은 부임 첫해인 2001년 곧바로 삼성을 한국 시리즈로 이끌었고 이듬해인 2002년에는 마침내 삼성에 첫 한국 시리즈 우승을 선물했다. 김 감독 개인에게는 통산 10호 우승이기도 했다. 한국 시리즈가 끝난 뒤에는 당시 상대였던 김성근 LG 감독을 두고 “야구의 신과 싸운 것 같았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에게 ‘야신’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계기다. 물론 김성근 감독은 이 말을 전해 듣고 “그럼 야구의 신과 싸워서 이긴 본인은 무엇이라는 얘기냐”고 맞받아쳐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김응용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2003년에도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쳐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2004년에도 한국 시리즈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현대와 역사적인 9차전 혈투 끝에 패해 아쉬운 준우승에 머문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김 감독은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내려놓고 해태 시절부터 애제자였던 선동열 수석코치에게 삼성 감독 자리를 물려줬다. 동시에 야구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구단 사장 자리에 올랐다. 삼성에서 퇴진이 아닌 ‘영전’을 했다.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끈 뒤 불명예 퇴진한 감독도 있었다. 순위 경쟁이 더 치열해진 2000년대 중반 이후 종종 벌어진 현상이었다. 김응용 감독의 후임이었던 선동열 감독이 그랬다. 선 감독은 첫 계약이 만료되던 2009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5년 장기 재계약에 성공했다. 2014년까지 계속 팀을 이끌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계약 첫해인 2010년 한국 시리즈에서 SK에 4전 전패로 패해 준우승한 뒤 돌연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당시 삼성은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최고의 명승부를 펼치고 한국 시리즈에 올랐지만 정작 더 중요한 무대에서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구단은 선 감독을 보내면서 ‘용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야구계에선 “한국 시리즈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경기력과 패배를 분하게 여기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선 감독의 모습이 ‘일등주의’를 추구하는 삼성그룹에 곱게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이 돌았다. 

김진욱 전 두산 감독은 2012년 두산 지휘봉을 잡은 뒤 2년 연속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다. 2013년엔 한국 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했고, 시즌 종료 후 선수들을 이끌고 마무리 캠프까지 떠났다. 하지만 두산의 그 해 마지막 경기였던 한국 시리즈 6차전 경기 내용이 계속 도마 위에 올랐다. “우승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에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내부 불만이 계속 터져 나왔다. 결국 감독 교체 시기로는 다소 늦은 11월 26일 전격 경질됐다. 감독이 마무리 캠프까지 다녀온 뒤 교체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 당시 여러 의혹이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두산은 김 감독 후임으로 재일교포 송일수 감독을 택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송 감독도 1년 만에 물러났다. 

 

▲ NC 다이노스 감독시절의 김경문 / 한겨레


#’명장’ 김경문 감독과 두 번의 퇴진 

KBO 리그를 대표하는 명장 가운데 한 명인 김경문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직전 시즌에 포스트 시즌을 지휘하고도 이듬해 성적 때문에 두 차례나 시즌 도중 물러나야 했다. 첫 번째는 두산에서였다. 김 감독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두산을 이끌면서 팀 컬러인 ‘화수분 야구’를 정립시켰다. 2007년과 2008년, 2010년 한국 시리즈에서 준우승도 했다. 다만 2011년이 고비였다. 포스트 시즌 단골팀이던 두산은 시즌 중반 7위까지 처졌고 서서히 구단 수뇌부와 불화설도 불거졌다. 김 감독은 잠실 라이벌인 LG와의 5월 5일 어린이날 매치에서 대패한 이후 꾸준히 사퇴 의사를 밝혔다. 결국 그 해 6월 13일 자진해서 두산 지휘봉을 내려놓고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물론 공백은 길지 않았다. 2개월 만에 NC 초대 감독으로 복귀했다. 전년도 준우승을 했던 감독이 이듬해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물러나는 것은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국 NC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끈 NC는 1군 진입 2년째인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올랐다. 신생 팀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서운 기세를 뽐내며 단숨에 강팀 반열에 올랐고 2016년에는 한국 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지난해 역시 정규시즌 4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뒤 3위팀 롯데를 꺾고 플레이오프까지 오르는 저력을 뽐냈다. 그러나 올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깊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 최하위 자리로 떨어진 뒤 좀처럼 위로 도약하지 못했다. 외국인 투수 교체 문제를 놓고 구단과 김경문 감독 사이에 갈등도 빚어졌다. 결국 NC의 시작과 비상을 함께한 김경문 초대 감독은 6월 불명예 퇴진했다. NC는 유영준 단장의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쳤고 새 감독으로 이동욱 코치를 선임했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3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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