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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그라운드 숨은 영웅' 대주자로 사는 법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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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8. 03 

 

대주자(代走者). 말 그대로 ‘대신 주자가 되는 선수’를 말한다. 점수가 꼭 필요한 절체절명의 순간 발이 느린 선수가 누상에 나간다면, 감독들은 ‘대주자 카드’를 꺼내들어 득점 확률을 높인다. 

현역 시절 발이 빨랐던 한 야구 해설위원은 “타자였던 기존 주자가 (베이스 간 거리인) 27m를 5초에 뛰었다면, 대주자는 같은 거리를 3.5초 정도에 달려야 효과가 있다. 이전 선수보다 반 베이스 정도는 더 빨리 가야 한다는 의미”라며 “무사 1루에서 주자를 교체하는 이유는 다음 타자의 단타 때 한 베이스가 아닌 두 베이스를 가기 위해서다. 이때 반 베이스 정도는 더 빠른 주력이 있어야 가속도가 붙어 3루에 안착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당연히 대주자의 필수 조건은 ‘빠른 발’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타격에서 밀려 주전으로 기용되기 어려운 선수들이 주로 맡는 역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실한 무기 하나를 장착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도루왕에 오른 박해민(삼성)처럼 처음에는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기용되다가 주전으로 도약하는 선수들도 종종 나온다. 

# 대주자가 한 시즌에 5~6승을 만든다 

발만 빠르다고 대주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수의 투구 동작에서 빈틈을 찾아내고, 미세한 움직임으로 상대 야수진을 속이고, 단숨에 스피드를 올렸다가 정확한 슬라이딩으로 연결하는 기술이 동반돼야 좋은 대주자가 될 수 있다. 대주자가 기용되는 순간, 상대 배터리와 내야진이 ‘도루’에 대한 대비를 시작하기에 더 그렇다. 앞서 언급한 해설위원은 “대주자에게는 고도의 주루 기술이 필요하다. 오버런을 막기 위해 슬라이딩 거리와 스피드를 잘 조절해야 하고, 최대한 빠르게 베이스를 찍고 다음 베이스로 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폭으로 도는 게 가장 좋은지 몸 안에 기억이 돼 있어야 한다”며 “여기에 투수의 견제 타이밍도 잘 캐치해야 한다. 대주자가 나갔다가 역동작에 걸려 아웃당하는 순간 게임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그런 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넥센 시절 전문 대주자로 활약했던 유재신의 모습. / 연합뉴스


경기 출전 시간은 가장 적지만 가장 부담감이 큰 임무이기도 하다. 점수 차가 큰 상황에서 주전 타자의 체력 안배를 위해 백업 선수를 기용할 때를 제외하면, 대주자는 대부분 경기 후반부 초접전 상황에서 투입된다. 이 해설위원은 “특별한 목적이 없는 이상 대주자 카드를 5회 이전에 쓰는 감독은 거의 없다”며 “대주자는 경기 후반 한 점을 만들어내는 ‘스페셜리스트’로 쓰이기 때문에 화려하진 않아도 비중이 그 누구보다 크다”고 했다. 

실제로 팀에 잘 키운 대주자 한 명이 있다면 감독이 역량을 발휘하기가 더 수월해진다. 염경엽 SK 단장은 넥센 사령탑 시절 “대주자 한 명이 한 시즌에 5~6승은 만들어 준다”며 종종 ‘대주자 예찬론’을 펼친 감독이다. 현역 시절 스스로 대주자로 출전했던 경험을 팀 운영에 녹였고, 발 빠른 외야수 유재신에게 전문 대주자 역할을 맡겨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다. 팀에서 좀처럼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던 유재신도 발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염 단장은 당시 “대주자는 절대 쉬운 자리가 아니다. 피곤하면서 고생한 티가 잘 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상황에 경기를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며 “경험이 많이 쌓여야 한다. 경험이 많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에서 부담감을 이겨 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또 “상대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나도 선수 시절 대주자로서 상대 투수들의 투구 버릇을 보기 시작했다”며 “주전은 아니었지만 백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투수들의 습관을 파악하고, 내가 판단해서 도루하면서 약점을 찾아 나갔다”고 떠올렸다. 

그만큼 대주자들의 역할과 책임감 단속에 엄격하기도 했다. 염 단장은 “유재신에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지시를 했는데, 벤트레그 슬라이딩을 하다 아웃돼 2군에 보낸 적이 있다”며 “전문 대주자가 나가서 아웃되는 건 팀에 최악의 상황이다. 세이프가 되도록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또 좀 더 가치가 높은 대주자로 인식되려면, 스스로 쓰임새를 높일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수비력도 좋아야 한다. 한 포지션에 그치지 않고 여러 포지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며 “타석에서 번트까지 잘 대면 더 금상첨화”라고 했다. 이 역시 직접 깨달은 부분이다. 염 단장은 “대주자 역할만 제대로 인정받아도 선수 생활 10년이 연장된다. 내가 바로 그랬다”고 거듭 강조했다. 
 
# 대주자 역사에 새 장을 연 인물은? 

강명구 삼성 주루코치가 바로 그 ‘산 증인’이다. 강 코치는 2013년 5월 15일 잠실 두산전에서 개인 통산 100도루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개인통산 100도루다. 이 기록은 한국 야구사에 ‘대주자’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기에 더 값졌다. 도루 100개 가운데 대주자로 기용돼 만들어낸 도루가 96개에 달했다. 2003년 프로에 데뷔해 11년 만에 쌓아 올린 기록이다. 당시 맞은편 더그아웃에 있던 김진욱 KT 감독은 “강명구는 사실 대놓고 ‘나 도루하겠다’고 나오는 선수인데도 잡기가 어렵다. 확실히 대주자 분야에서 특화된 선수”라고 극찬했다. 실제로 강 코치가 대주자로 나올 때마다 상대 투수는 견제구 3~4개를 기본으로 던지면서 경계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100도루 달성 시점까지 도루 성공률 82%을 기록했을 정도로 높은 적중률을 자랑했다. 100m를 11초7에 달리는 기본 스피드에 순발력 있는 스타트, 절묘한 슬라이딩 기술, 타고난 센스가 뒷받침됐다. 
 

▲ 전문 대주자의 산 증인인 강명구 삼성 주루코치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활약하던 모습. / 연합뉴스


물론 강 코치도 처음에는 ‘대주자’라는 이름표가 달가웠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 야구를 잘했고, 주전 리드오프와 유격수를 맡겠다는 목표로 프로에 입단했다. 하지만 스타플레이어와 강타자들이 즐비한 삼성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기는 쉽지 않았다. 서서히 팀과 언론이 자신의 역할을 대주자로 한정 짓기 시작하던 시기에는 “신문에서 ‘그라운드의 육상선수’라고 칭찬하는 기사에도 나는 화가 났다”고 털어 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10년 넘게 1군 엔트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동안 강 코치에게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시작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노하우도 생겨났다. 

마무리 투수만큼이나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 출전하기 때문에 강 코치도 늘 긴장을 달고 살았다. 통산 100도루를 넘어선 뒤에도 “나가기 직전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다리도 떨렸다. 내가 도루에 실패하면 경기를 망친다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5회를 넘어서면 몸을 풀기 시작했지만, 그러다 결국 투입되지 않고 경기가 끝나는 날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매 시즌 개인 목표도 따로 세우지 않았다. ‘오늘, 지금 이 순간만 산다’는 마음으로 매 경기를 치렀다. 

강 코치는 결국 2014시즌을 끝으로 은퇴해 삼성 전력분석원으로 새 출발했고, 올해부터 퓨처스리그 주루코치를 담당하다 지난 6월 1군 주루코치로 승격됐다. 현역 시절 12시즌 동안 쌓아 올린 통산 도루 수는 111개. 실패는 24개에 불과해 통산 도루 성공률이 무려 82.2%에 달했다. KBO 리그 개인 통산 도루 1위인 전준호 NC 코치(71.17%), 2위인 이종범 MBC SPORTS+ 해설위원(81.9%)보다 더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면서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그런 강 코치가 은퇴하면서 ‘제2의 강명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남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주자 전문 선수로 머물지 말라”였다. “지금 대주자라고 해도, 결국 타석에 설 기회가 오고 수비도 하게 된다. 안타를 치고, 호수비를 하면 더 쓸모 있는 선수가 된다”며 “그렇게 주전선수로 자랐으면 좋겠다. 대주자 전문 선수들이 더 큰 꿈을 가졌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 스즈키 다카히로와 끝없는 담금질

일본 프로야구에도 ‘대주자 전문 선수’의 길을 개척한 선수가 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요미우리에서 뛴 스즈키 다카히로다. 스즈키는 중학생 시절 육상부에 소속돼 중거리 대표로 활약했던 육상 선수 출신이다. 당시 매일 30km를 달리는 훈련을 한 덕분에 발이 빨라졌다는 후문이다. 1997년 요미우리에 입단할 때도 빠른 발 덕분에 지명을 받았지만, 1군에 올라온 건 입단 6년째인 2002년이 처음이었다. 그 후 은퇴할 때까지 단 한 시즌도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하면서도 개인통산 도루 228개를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대주자로서의 능력 덕분에 은퇴 직전까지 무려 20년간 팀이 경기 막판이면 항상 찾는 ‘비장의 카드’ 역할을 해냈다. 특히 그가 남긴 도루 성공률 82.9%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200도루를 넘긴 선수들 가운데 역대 최고 수치다. 

그가 대주자로서의 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훈련법도 여전히 일본에선 ‘레전드’로 회자되고 있다. 2015시즌을 앞두고는 “도루 성공률 100%를 목표로 하겠다”며 일본의 ‘빙상 영웅’ 시미즈 히로야쓰에게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시미즈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스피드 케이팅 500m 금메달과 1000m 은메달을 따낸 일본의 간판 선수다. ‘로켓 스타트’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스타트에 특히 강한 선수로도 유명했다. 나이가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주력이 떨어진 스즈키가 “스타트 동작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며 새 훈련 방법과 코치를 찾아 나선 것이다. 결국 스즈키는 복근을 사용해 상체와 하체를 더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근육으로 출발 반응 속도를 더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강명구 코치 역시 ‘더 잘 달리기 위한’ 훈련을 은퇴 직전까지 거듭했다. 2013시즌을 앞두고 “도루 타이밍이 갈수록 아슬아슬해진다는 느낌을 받아 캠프 내내 스타팅 순간의 체중 이동과 준비 동작 때 몸의 각도를 세밀하게 고치려고 애썼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슬라이딩 훈련을 반복하는 것은 물론, 일부러 내리막길을 달리면서 속도를 조절하거나 급브레이크를 수월하게 거는 연습까지 매번 반복했다. 스스로의 무기인 ‘발’을 최상으로 갈고 닦으려는 ‘장인정신’이 그들을 ‘대주자 스페셜리스트’로 만들었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3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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