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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수첩] 감독들의 하루는 고독하고 애달프다

--김현기 축구

by econo0706 2022. 9. 3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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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5. 18.

 

지난 14일 ‘수원더비’ 취재를 마치고 수원종합운동장을 떠날 때였다. 경기가 끝나고 시간이 꽤 흐른 뒤였음에도 조덕제 수원FC 감독이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운동장 외벽에 착잡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이날 수원 삼성전을 앞두고 “어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경기 뒤에도 아쉬움은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기자와 잠시 대화하던 그는 “그래도 우리 팀이 잘 싸웠다는 반응이 많던데…”라며 숨을 골랐다. 수원FC는 지난해 ‘조덕제표 막공’을 앞세워 기적 같은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일궈냈다. 지난해 12월 내내 많은 미디어들이 수원FC 문을 두드리며 그들을 다뤘다. 하지만 막상 올라온 K리그 클래식은 만만치 않았다. 초반 무패행진이 주춤하면서 최근 기록한 5경기 1무4패란 성적과 라이벌 매치에서의 아쉬운 결과는 상대팀이 강호란 점을 감안해도 조 감독 입장에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 다음날은 제주를 찾았다. 사퇴 뒤 번복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노상래 전남 감독도 밝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최근 리그에서 상승세를 탄 조성환 제주 감독도 난로를 펴놓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일주일 전 찾아온 감기가 주중 FA컵(11일) 32강 광주전 패배로 심해졌기 때문이다. 3-0 완승 뒤 만난 자리에서도 조 감독은 쉽게 기뻐하지 않았다. 조 감독은 “오늘 이기니까 (FA컵 때 이긴)남기일 광주 감독이 축하한다고 전화를 했다”며 “나도 노 감독과 친하지만 무슨 위로가 필요하겠나. 전남이 이기면 전화를 하고 싶다. 노 감독에게 전화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실 이겨도 오늘 밤까지만 좋다”고 털어놓았다.

 

▲ K리그 클래식 12개 구단 감독들이 지난 3월 미디어데이에서 올시즌 우승트로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최진철 포항 감독도 생각난다. 그도 지난해 10월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한국 남자축구의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첫 브라질전 승리와 조별리그 1~2차전 연승을 이끌며 각광받았다. K리그 클래식 포항을 맡은 올해, 그에게 6~7개월 전 환호는 찾아볼 수 없다. 포항이 이길 때 몇 차례 연락하면 그는 “이겼지만 내용이 아쉽다”는 말을 곧잘 했다.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선수들이 원하는 축구를 조금 한 것 같아 다행이다”며 위안을 삼은 적이 있었다. 예산이 대폭 삭감된 포항을 고민 끝에 맡아 이제 3개월 됐지만 세상은 ‘오늘의 최진철’과 ‘오늘의 포항’만 볼 뿐이다. 지금은 물러난 한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를 마치고 킥오프할 때까지 나만 아는 곳에서 피는 담배 두 개피가 유일한 낙이다”라고도 했다.

최근 K리그 감독들이 이렇게 저렇게 고민에 빠져 있다. 세상 모든 감독들이 다 힘들지만 가까이서 취재를 하다보니 K리그 사령탑들의 고독을 더 이해할 것 같다. 우승에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티켓, 그리고 6강과 강등까지. 게다가 요즘 팬들은 내용에도 만족해야 한다.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감독들 번민은 더 늘어가고 있다. 아스널에서 20년 넘게 롱런하며 성공가도를 걷는 아르센 벵거 감독도 “축구 감독으로 있으면서 화를 내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매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직업 세계가 프로스포츠고, 그 중에서도 감독이다. 시즌 초반 고민하는 K리그 ‘감독님’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세상이 그들을 좀 더 이해했으면 한다.

 

김현기 기자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자료출처 :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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