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28
아마추어 명성 프로에도 통할까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최희암 연세대 총감독(47)이 기자회견을 가진 지난 3월27일. 무슨 얘기가 나올지 뻔한 자리에서는 앉기가 무섭게 떠나버리는 게 취재진의 습성이지만 이날만큼은 오랫동안 의자를 지키고 있었다. 화려한 명성의 대학농구 최고 지도자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
최감독의 프로행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어차피 한 번은 와야 할 사람이 결정됐다며 그의 입성을 반기는 쪽도 있었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를 앞세워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개중에는 지난 97년 최감독이 프로농구 출범을 반대했던 원죄에 대해 우선 공식적인 입장 표명부터 해야 한다며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세간의 그 같은 평을 의식해서였을까. 평소 달변을 자랑하는 최감독이지만 이날만큼은 시종 겸손한 자세였다. “정글이나 마찬가지인 프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새내기 감독에 불과하다”며 몸을 낮췄다.
“최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으니 다음 시즌에 모비스가 우승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농담성 질문에도,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51%의 승률을 올리는 게 목표인 사람한테 지나친 기대”라고 대답했다.
지난 90년대 초반까지 대다수 대학팀 감독들은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경기장에서 관중이 지켜보든 말든 욕설을 입에 달고 다녔다. TV에 중계되는 것도 아니고, 어린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하는 과정에서 거친 언행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관행은 최감독이 유명세를 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검정 뿔테 안경을 걸친 지적인 외모와 크지 않은 체구, 조리 있고 사근사근한 말투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농구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기에 성적까지 뒷받침해 주니 방송 CF에 출연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등 스타들을 직접 조련해 지난 93∼94 시즌에서 현대 삼성 기아 등 당시 실업 강호들을 제치고 농구대잔치 정상에 등극했다. 대학팀 감독으로 보기 드물게 이름을 날리다 보니 시련도 따랐다. 코트에서는 누구보다 신사이지만 대기실에 들어가면 선수들에게 손찌검과 폭언을 일삼는 이른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스타일이라는 뒷말이 솔솔 흘러 나왔다. 고교 졸업자 입학 과정과 관련해 구린 냄새를 풍긴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프로에 발을 디딘 최감독이 어떻게 자신의 역량을 펼칠지 관심이 집중되는 게 사실이다. 탄탄한 이론에 바탕을 둔 철저한 분업 농구와 불 같은 승부욕이 냉엄한 프로무대에서 어느 정도 통할지 눈과 귀가 쏠려 있다. 그는 과연 2000∼2001 시즌 준우승을 일궈낸 창원 LG 김태환 감독처럼 데뷔 첫해 신화 창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조성준 /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when@sportsseoul.com
주간동아 329호 (p9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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