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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10년 간 이어온 전창진 감독과 찰스 로드의 진한 '브로맨스'

--민준구 농구

by econo0706 2022. 12. 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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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1.

 

“부산 KT는 찰스 로드를 지명하겠습니다.”

2010년 7월 23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몬테 카를로 호텔에선 KBL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연출됐다. 부산 KT의 수장이었던 전창진 감독이 2010 KBL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0순위로 무명의 찰스 로드를 선발한 것이다. 모두가 물음표를 던졌던 이 선택은 KBL 역사에 있어 가장 진한 ‘브로맨스’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10년 전을 회상한 전창진 감독은 “외국선수들을 보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떠났을 때였다. 몇몇 선수들을 지켜봤는데 찰스(로드)가 눈에 들어오더라. 세기가 부족한 느낌은 있었는데 신체 조건이 굉장히 좋았다. 트라이아웃 때 참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있었고 KBL에서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딱 들었다. 그래서 20번째로 선택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2010-2011시즌은 외국선수 2인 보유, 1인 출전의 시대로 2라운드 10순위였던 로드에게는 많은 기회가 돌아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 심지어 KT의 메인 외국선수는 2009-2010시즌 최우수 외국선수상의 주인공 제스퍼 존슨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존슨과 로드의 출전 시간 분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개인 기록에선 손해를 봤지만 KT의 첫 정규경기 1위를 이끈 주역이 됐다. 특히 로드는 54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19분 55초 출전 및 15.1득점 5.9리바운드 1.6블록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사실 로드는 존슨과 함께했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KT의 농구는 존슨 중심으로 돌아갔고 로드는 그저 서브 외국선수였을 뿐이었다. 존슨과 동행한 44경기 동안 로드는 평균 13.6득점 4.9리바운드 1.4블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존슨의 부상 이후 메인 외국선수로 올라선 10경기는 로드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균 21.8득점 10.3리바운드 1.1어시스트 1.4스틸 2.7블록을 기록하며 정규경기 1위 수성에 힘썼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가 된 로드는 동부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펄펄 날았다. 존슨의 부상 이탈 후 전창진 감독은 앤서니 존슨, 제임스 피터스 등으로 대체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제공한 건 로드였다. 비록 1승 3패로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평균 34분 7초 동안 22.2득점 11.5리바운드 1.7어시스트 1.2스틸 2.0블록으로 맹활약했다.

외국선수 제도가 자유계약제로 변화한 2011-2012시즌은 수많은 트라이아웃제 선수들과의 이별을 알린 시기였다. 그러나 전창진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수많은 돈을 들여 확신 없는 투자를 하는 것보다 증명된 선수와 함께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뒀다. 결국 로드와 다시 손을 맞잡으며 대권 재도전에 나선 것이다.

로드의 2011-2012시즌은 기록만 보면 크게 나쁘지 않았다. 발목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48경기에 출전해 평균 20.3득점 11.5리바운드 1.5어시스트 2.6블록을 기록했다. 다른 팀들이 거액을 투자해 NBA 및 유로리그 출신 외국선수들을 들여왔지만 로드는 그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물론 기록만 놓고 보면 말이다.

전창진 감독과 로드의 애증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한다. 시즌 초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둘의 관계는 언론을 통해서도 수차례 드러났다. 전창진 감독은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로드의 문제점과 교체 가능성을 언급할 정도였다.

“찰스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정말 예쁜 친구였다. 실력도 많이 늘었고 말도 잘 들었다. 어떤 역할을 주면 그대로 해주는 고마운 선수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자유계약제로 바뀌었음에도 찰스를 선택한 것이다.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똑같은 것 같다.” 전창진 감독의 말이다.

전창진 감독과 로드의 관계가 위태로워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외국선수 교체처럼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할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은 왜 만들어진 것일까.

전창진 감독은 “처음에는 절실함으로 농구를 했던 선수들이 연봉이 올라가고 출전시간이 많아지면 우쭐해진다. 나는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기본만 충실히 해줘도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이 우쭐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혼자만의 경기를 하게 된다. 찰스가 그랬다. 정말 많이 혼냈고 의견 대립도 잠깐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때부터였을까. 로드를 떠올렸을 때 ‘악동’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앞에 존재하기 시작했던 게 말이다. 컨트롤하기 힘든 외국선수라는 평가 역시 이때 자리했다.

2011-2012시즌을 마친 로드는 이후 스페인 리그로 이적할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실력이 아닌 팀워크를 무너뜨린다는 사유로 방출 통보를 받았고 다시 KBL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자랜드 소속이던 2014-2015시즌, 테렌스 레더와 트레이드되며 다시 전창진 감독과 손을 맞잡게 됐다.

2014-2015시즌은 비록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전창진 감독과 로드의 진한 ‘브로맨스’가 펼쳐진 시기였다. 당시 리바운드 1개 차이로 트리플더블 달성에 실패한 로드를 안아주던 전창진 감독의 모습은 아직도 팬들에게 회자 되고 있는 명장면이었다(로드는 2015년 11월 3일 삼성 전에서 21득점 14리바운드 10블록을 기록하며 2005년 크리스 랭에 이어 10년 만에 블록 포함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이후 11월 5일 모비스 전에선 12득점 9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에 실패, 그러나 전창진 감독은 로드를 안아주며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정말 대단한 기록을 두 번이나 세울 수 있었다(웃음). 사실 트리플더블이라는 것 자체가 나오기 힘든 기록인데 찰스는 블록이 포함된 트리플더블을 하지 않았나. 정말 나오기 힘든 대기록이다. 다음 경기 때도 트리플더블을 할 수 있었지만 리바운드 1개가 부족했다. 개인 기록만 좋은 게 아니고 경기 내용 자체도 좋았다.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전창진 감독의 말이다.

이외에도 전창진 감독과 로드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을 정도로 진한 관계임을 알렸다. 전창진 감독은 한국에서 돌을 맞이한 로드의 아들을 위해 사비를 들여 잔치를 열어줬다. 직접 사회를 보기도 했다고. 이에 로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전창진 감독의 취미인 골프용품을 두 손 가득히 들고 찾았다. 이처럼 둘의 관계는 일반 감독-외국선수 이상임을 증명했다.

오랜 시간 전창진 감독과 로드는 함께했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조금 다르다. 특히 팬들은 전창진 감독과 로드의 관계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전창진 감독 특유의 강한 질책이 TV 화면을 통해 그대로 나가며 오해가 생긴 것이다.

이에 전창진 감독은 “가장 중요한 건 나와 찰스는 정말 가깝고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일부 팬분들은 잠깐 TV에 나오는 장면으로 인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찰스 때문에 나도 욕을 많이 먹었다.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라며 “물론 외부의 평가는 자유다.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은 없지만 나와 찰스의 관계는 결코 나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찰스에 대한 오해 역시 있다. 그는 컨트롤하기 힘든 선수가 아니다. 분명 우쭐해진 시기는 있었다. 다만 제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찰스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그때 너무 어렸고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찰스는 정말 착하고 괜찮은 선수다”라고 감싸 안았다.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전창진 감독과 로드는 4년여 만에 재회했다. 부산이 아닌 전주에서 말이다. 전창진 감독은 “찰스가 메시지를 보냈을 때 정말 많이 울었다. 내 입장을 잘 안다면서 준비를 철저히 해서 돌아오겠다고 하더라. 다시 보게 되니 정말 반가웠고 기뻤다. 사실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아쉬움은 있지만 내가 원하는 찰스의 모습을 보여줬다”라며 미소 지었다(현재 로드는 삼성 전에서의 부상으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전창진 감독은 “몸 상태를 끌어올리지 못한 결과다. 삼성 전에서 잘했는데 많이 아쉽다”라고 이야기했다).

2002-2003시즌부터 수많은 외국선수들과 함께한 전창진 감독.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외국선수로 데이비드 잭슨과 자밀 왓킨스를 꼽았다. 2002-2003, 2004-2005시즌 정상까지 함께 올라선 이들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창진 감독은 로드를 외면하지 않았다.

“함께 정상에 선 외국선수들, 특히 잭슨과 왓킨스는 잊을 수 없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찰스 역시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존재다. 같이 정상에 선다면 보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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