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15
1970년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빼어난 수영실력과 미모를 자랑한 80년대의 최윤희, 신기록 행진으로 국민을 열광케 한 90년대의 지상준. 그러나 이들은 ‘아시아’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중국과 일본이 수영 강국임을 감안하면 아시아 정상만 해도 큰 업적이지만, 세계무대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그랬던 한국수영이 최근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 지난달 열린 월드컵대회에서 한규철(21·삼진기업)과 성민(20·한국체대)이 각각 금메달을 2개씩 목에 건 것. 성민은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2001∼2002 월드컵수영대회(25m 쇼트코스) 7차 시리즈 배영 남자부문에서 이틀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한규철도 지난 1월28일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진 월드컵 9차 시리즈 자유형 남자 1500m에서 1위에 올랐다. 1월24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8차 시리즈 같은 부문에서 금메달을 걸었던 것에 이어 두 번째였다. 98년 호주 퍼스 세계선수권에서 한규철이 진입한 접영 8강이 그때까지의 최고 성적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번 성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수영의 앞길에 푸른 신호등이 켜진 것일까? 그러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선 한규철은 태릉선수촌에서 훈련받지 못하겠다며 입촌을 ‘정중히’ 거부해 한때 대표팀에서 제외됐었다. ‘훈련을 위한 훈련’이 많아 정작 시합에 나가선 힘이 빠져 기록이 뒤떨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를 지도한 것은 대표팀 코치들이 아니었다. 유럽까지 따라온 개인코치 백성흠씨와 단둘이서 금메달을 만들어냈던 것. 98년 퍼스에서는 그의 주종목이 자유형과 접영 단거리였는데 작년부터 자유형 장거리로 바뀐 것도 의미심장하다. 개인에게 알맞은 종목을 정하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이다. 그가 일찌감치 자유형 장거리에 매진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생각해 보면 이번 선전은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다. 수영인들은 이러한 일들이 국내 수영지도 체계의 비전문성을 입증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른바 ‘뺑뺑이’다. 종목이나 거리에 관계없이 이들이 매일 태릉선수촌에서 하는 일은 계속 물속에서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하는 것. 그러다 지치면 지상에 올라와 고무벨트 잡아당기기를 계속하는 식의 훈련이다.
수영법 분석이나 비디오를 통한 부분동작 분석은 남의 나라 이야기. 오로지 코치의 눈썰미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이러다 보니 수영선수 가운데 선수촌에서 야반도주한 경험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기록 경신의 기대를 모은 조광제도 떠났고, 공부도 중요하니 선수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해서 제재를 받은 장희진은 미국으로 유학 가버렸다. 이번에 금메달을 딴 성민도 호주 유학을 고민중이다. 태릉선수촌의 ‘뺑뺑이’ 훈련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이번 금메달 성과 역시 반짝 선전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전창 /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 jeon@donga.com
주간동아 322호 (p123~123)
[스포츠 뒷이야기] 악연 또 악연 ‘대만야구’ (0) | 2023.02.14 |
---|---|
[스포츠 뒷이야기] 거친 매너 '중국 남자농구' (0) | 2023.02.13 |
[스포츠 뒷이야기] 관심 집중!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0) | 2023.02.09 |
[스포츠 뒷이야기] 고교 야구팀 해외 전지훈련 (0) | 2022.12.24 |
[스포츠 뒷이야기] 이형택 '랭킹 50위' 도전장 (0) | 2022.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