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웃사이드 파크] 한계 투구수 논란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3. 5. 20. 17:28

본문

2015. 08. 26 

 

한화 왼손투수 권혁(32)은 올 시즌 KBO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김성근 감독을 맞아들인 한화가 승수를 하나둘씩 쌓아 올릴수록, 권혁이 얼마나 자주 등판해 얼마나 많은 공을 던졌는지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져갔다. 불펜 투수인 권혁은 한 경기에서 40구, 혹은 50구를 예사로 던졌다. 경기당 1이닝으로도 모자라 2~3이닝씩 마운드를 지키는 경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10경기를 치르면 6~7경기에 등판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점수차로 앞서거나 뒤지고 있을 때조차 마운드에 올랐다. 해묵은 ‘혹사’ 논란이 필연적으로 따라 붙었다. 
 

▲ 2011년 크게 뒤지고 있는 경기에서 147개의 공을 던져 ‘벌투’ 논란을 겪은 SK의 김광현(오른쪽)과 열흘 동안 3경기에 선발 등판해 총 347구를 던진 한화의 에스밀 로저스(왼쪽). /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물론 ‘투수가 던질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이 없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다. 최근 한화가 새로 영입한 화제의 용병 에스밀 로저스는 한국에서의 첫 열흘 동안 3경기에 선발 등판해 총 347구를 던졌다. 10일째인 포항 삼성전 투구수는 123개였다. 한쪽은 “메이저리그는 원래 4일 휴식 후 등판하는 로테이션을 소화한다.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반대쪽은 “막 한국에 도착한 투수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정이다. 당장은 괜찮아도 피로가 누적될 수 있다”고 맞섰다. 투수의 투구수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이렇게 늘 풀리지 않는 숙제다. 

# 혹사와 투혼, 교훈과 벌투 사이

김성근 감독은 ‘한계투구수’라는 뜨거운 화두에 여러 차례 불을 붙여 온 대표적 인물이다. 과거 OB와 쌍방울을 지휘하던 시절은 물론, 한화 이전의 마지막 프로팀이었던 SK에서도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서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에이스 김광현의 ‘벌투’ 의혹이었다. 

김광현은 지난 2011년 6월 23일 광주 KIA전에서 무려 147개의 공을 던졌다. 8이닝 동안 홈런 3개를 포함해 14안타를 맞고 8실점을 했다. 김 감독은 그런 김광현을 교체하기는커녕, 아예 경기 중반 이후 불펜을 텅 비워 놨다. 끝까지 경기를 책임지라는 신호였다. 5회까지 91개, 7회까지 125개의 공을 던진 김광현이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르자 야구장이 술렁였다. 147개는 지금까지 김광현의 한 경기 최다 투구수로 남아 있다.

김 감독은 당시 김광현에 대해 “좋은 공을 던지면서도 스스로 던지는 법을 모른다. 컨트롤, 완급조절, 타자를 보는 눈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광현은 직전해인 2010년 193.2이닝을 소화하고 17승 7패, 방어율 2.37, 탈삼진 183개를 기록하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지만, 시즌 직후의 부상 여파로 2011년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후유증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김 감독은 그날의 한 경기를 투자해 에이스의 위력을 회복시키는 기회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공을 많이 던지다 보면 세게 던지는 데 집착하지 않고 몸에서 힘을 빼면서 잃어버렸던 밸런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미 전의를 잃은 김광현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광현은 다음날 곧바로 2군에 내려갔다. 3개월이 지난 뒤에야 1군에 복귀했다. 그때 이미 김 감독은 SK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였다. 

상황은 다르지만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혹사’ 논란은 심심치 않게 도마 위에 올랐다. 2013년 라쿠텐에서 한 시즌 24승 무패 신화를 남겼던 다나카 마사히로(현 뉴욕 양키스)도 그 장본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그 해 요미우리와의 일본시리즈 6차전에서 무려 160개의 공을 던지면서 완투패한 뒤 바로 다음날 열린 7차전 9회에 다시 등판해 15개를 더 던졌다. 라쿠텐은 창단 9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지만, 다나카가 이틀간 기록한 175개의 투구수는 일본 야구계의 우려를 샀다. 아무리 팀을 위한 ‘희생’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일본이라 해도 현대 야구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나카보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텍사스의 다르빗슈 유도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아직 다나카의 어깨나 팔꿈치에 통증은 없다 해도 분명히 몸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때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다나카는 빅리그 진출 첫 해인 지난해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했다. 올해 역시 팔에 통증을 느껴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 투구수의 진짜 ‘한계’는 어디일까 

투수의 어깨는 ‘분필’과 같다는 말이 있다.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혹사 논란의 기본 바탕이 되는 논리이기도 하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선동열 전 KIA 감독은 반대로 “어깨는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강해진다”고 여긴다. 선 전 감독 본인이 역대 한 경기 최다 투구수(1987년 5월 16일 사직 롯데전·232구) 기록의 주인공이다.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공을 던졌던 선 전 감독이지만,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팔꿈치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

물론 선 감독의 지론에는 전제가 있다. 최적의 투구폼과 밸런스로 던질 때에 한해서다. 선 전 감독은 “하체 중심이동을 잘 해서 상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덜어주면 많이 던져도 팔이 아프지 않다”며 “일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투수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A 투수 역시 “밸런스가 좋으면 100개를 넘어가도 힘든 줄을 모른다. 투구수를 생각해 강판되면서도 힘이 남아있을 때가 많다. 반대로 밸런스가 안 좋을 때는 초반부터 힘이 많이 들어간다. 중반 이후에는 쉽게 지쳐서 그만 던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며 “밸런스가 좋고 힘이 남을 때 많이 던지면 투혼이 되지만, 제대로 쉬지 못해서 밸런스가 깨진 상태에서 너무 많이 던지는 것은 혹사인 것 같다”고 정리했다. 

이 때문에 한계투구수라는 개념 자체가 애초에 선수마다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80개만 넘겨도 구속이 떨어지고 제구가 흔들리는 투수가 있는가 하면, 100개 이상을 던져도 경기 초반처럼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투수도 있다. 휴식을 취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한계투구수도 마찬가지로 달라진다. B 야구인은 “에이스급 투수라면 5일 휴식 기준으로 120개 이상은 소화해줘야 한다”며 “유연한 신체조건을 타고 난 선수들은 한계투구수를 조금 늘려줘도 회복에 큰 무리가 없다. 철저한 관리만 해준다면 꽤 오랫동안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일례로 LA 다저스 류현진은 한화에서의 마지막 해였던 2012년 9월 6일 대전 롯데전에서 132개의 공으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는데, 마지막 이닝이던 8회에도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려 여전히 힘이 남아 있음을 입증했다. 게다가 류현진은 그 전에도 두 차례나 한 경기에서 134개를 던진 전력도 있다. 당시 그는 “나 역시 투구수가 115개를 넘어가면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진다. 그 이후에는 ‘점수를 주지 말고 여기서 내가 막자’는 정신력으로 던지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선발투수가 한계투구수 지점까지 공을 던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기가 잘 풀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C 투수코치는 “일단 승리하면 많이 던져도 피곤한 줄 모른다. 그러나 그 다음날 확실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투구수 관리와 철저한 보강 운동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류현진 역시 “몸 상태에 따라 한계투구수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많이 던지고 난 뒤일수록 평소에 하던 회복과 준비과정을 더 충실하게 소화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100개’의 벽을 넘어라 

오히려 요즘에는 선발투수들이 100개 안팎의 공을 ‘한계’라고 여기는 것 자체에 불만을 느끼는 야구 관계자들도 많다. 투수 출신인 D 감독은 “최근 혹사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투수들이 더 많은 이닝을 던지도록 어깨를 단련시키고,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을 갖추도록 지도자들이 이끌지 못한 탓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많은 피칭을 통해 더 단련시키고 강화해야 할 어깨를 ‘어깨 보호’라는 명분으로 약하게 만들다보니 요즘 투수들이 예전 투수보다 지구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선발투수보다 더 확실히 경기를 이겨주는 불펜투수들이 있다면, 당연히 그 선수들을 감독이 선택하기 마련”이라며 “힘이 떨어지는 선발투수들에게 더 미련을 두지 않고 결단을 내리다 보면 불펜의 필승 카드를 자주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선동열이 232개를 던지고 최동원이 209개를 뿌리던 한국 프로야구에 ‘투구수 관리’라는 개념이 도입된 건 ‘박찬호 이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 야구인은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전 한화)가 국내 프로야구에 한계투구수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이식했다”며 “투수의 역할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경기당 130∼150개를 던지는 투수들이 많았지만, 박찬호로 인해 메이저리그 야구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국내의 투수 운용법에도 변화가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배영은 /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일요신문 [제1215호] 

 

‘혹사 끝판왕’ 고교 투수 살펴보니
 - ‘대어’들 마운드서 사라진 까닭은…

지난해 미국에서는 아마추어 야구선수 부상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 ‘스마트하게 투구하기(Pitch Smart)’를 제시했다. 만 17~18세 투수들이 어깨나 팔꿈치 부상 없이 안전하게 투구하기 위해 필요한 기준들을 정한 것이다. 일단 1일 한계투구수는 105개. 76개 이후부터는 근육의 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어 △1~30개 투구시 다음날 등판 가능 △31~45개 투구시 하루 휴식 △46~60개 투구시 이틀 휴식 △61~75개 투구시 사흘 휴식 △76~90개 투구시 나흘 휴식을 권장하고 있다. 

▲ 고교 시절 류현진, 이수민.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세부 조항이 있다. △던지기 전에는 충분히 몸을 푼다 △직구와 체인지업을 먼저 익힌 뒤 다른 변화구 습득을 시작한다 △12개월 동안 100이닝 이상을 던지지 않는다 △매년 2~3개월의 장기 휴식을 포함해 4개월은 피칭을 하지 않는다 △투수와 포수를 겸업하지 않는다 △하루에 한 경기에만 등판한다 등이다. 투구의 기반이 되는 선수의 몸을 장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치. 실제로 프로야구에서 투수들을 관리하는 방법과 비슷한 체계다.


한국 역시 2014년부터 고교야구에 투구수 제한과 휴식일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고교야구가 학생 선수들의 주중 교육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2011년 3월부터 주말리그를 시행했지만, 일주일에 두 경기만 열리기 시작한 뒤부터 오히려 일부 에이스급 선수들만 반복 출전하는 부작용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2013년에는 상원고 에이스 이수민이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와의 16강전에서 178개의 공을 던지는 일이 벌어져 논란을 빚었다. 주요 외신들조차 주목했던 ‘사건’이다. 

이수민은 이날 연장 10회까지 9.2이닝 4피안타 11사사구 8탈삼진 1실점(비자책) 역투를 펼쳤는데, 비단 이 경기뿐만 아니라 주말리그 왕중왕전을 포함해 총 7경기(완투 6회)에 등판해 총 974개(경기 평균 139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178구 외에도 162구, 150구를 각각 한 차례 던진 적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10이닝 동안 탈삼진 26개를 잡아내는 괴물 투수라 해도 성적에 눈이 먼 지나친 혹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이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고교야구는 예전부터 이미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고교 시절 특급 유망주로 통했던 투수들이 프로에 오자마자 수술대에 오르거나 부상으로 일찍 은퇴하는 배경으로 꼽혔다. 2006년에는 대통령배 대회에서 당시 만 17세였던 진흥고 에이스 정영일이 경기고를 상대로 13.2이닝 동안 242개의 공을 던졌다. 서스펜디드 게임 때문에 이틀에 걸쳐 기록한 투구수라 해도 2000년대 이후 야구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던 장면. 

심지어 정영일은 청룡기 대회 결승에서도 연장 16회까지 완투하면서 222개의 공을 뿌렸다. 그는 고교 시절 활약 덕분에 2006년 미국 LA 에인절스에 입단했지만 2008년 결국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2011년에는 충암고 변진수가 5연속 완투승으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16강전에서만 158개를 던진 변진수의 이 대회 총 투구수는 624개였다. 

내로라하는 한국 야구의 스타급 투수들도 고교 시절에는 혹사를 피해가지 못했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동산고 1학년 때 미추홀기 대회에서 팀의 4승을 홀로 따낸 뒤 팔꿈치 수술대에 올랐고, SK 김광현은 안산공고 3학년 때 청룡기 대회에서 한 경기에만 15이닝을 던지면서 투구수 226개를 기록한 적이 있다. LG에서 은퇴한 전직 메이저리거 김선우도 휘문고 시절 발목 부상을 안고도 하루에 200개 넘는 공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마 야구의 무분별한 혹사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야구의 소중한 자원을 보호해야 해서다. 이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도 결단을 내렸다. 대한야구협회와 협의해 한 경기 투구수를 130개로 묶고, 등판 이후에는 3일 휴식을 보장했다. 또 주말에만 경기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5월에 열리는 전반기 왕중왕전에 한해 주중 경기도 허용했다. 동일 광역권 리그 일부 경기는 금요일 수업 종료 후에도 열릴 수 있게 됐다. [은]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