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웃사이드 파크] 우리를 웃기고 울린 ‘특급용병’ 열전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3. 5. 21. 22:51

본문

2015. 08. 18 

 

요즘 KBO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는 한화 외국인투수 에스밀 로저스(30)다. 2015 시즌 개막을 뉴욕 양키스에서 맞았던 이 투수가 한화 유니폼을 입는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이미 열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뉴욕에서 날아온 지 4일 만에 공을 던지기 시작하자 관심은 더 뜨거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첫 경기인 8월 6일 대전 LG전에서 사상 최초로 데뷔전 완투승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고, 4일 휴식 후 다시 마운드에 오른 8월 11일 수원 kt전에서는 급기야 완봉승까지 올렸다. 데뷔 2경기 연속 완투승은 당연히 역대 최초 기록. 로저스는 동시에 ‘지저스(Jesus)’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랑을 쓸어 담은 선수일 것이다.

▲ 한화 외국인투수 에스밀 로저스가 데뷔 후 2경기 연속 완투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 한화 이글스

사실 로저스는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이 엄청나게 화려한 투수는 아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팀인 양키스에서 바로 얼마 전까지 현역 메이저리거로 뛰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역대급’ 경력이다. 한화는 시즌 후반기에 합류한 로저스와 연봉 70만 달러(약 8억 3370만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언론은 이보다 더 많은 100만 달러(11억 9100만 원) 이상의 몸값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 “거의 한 경기당 1억 원꼴”이라는 농담이 나온 이유다. 

어쨌든 투자한 만큼 얻는 게 있다면 구단으로서는 돈이 아깝지 않다.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갔던 ‘특급 용병’들 가운데, 경력과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구단과 팬들을 모두 실망시켰던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름값 높은 용병들은 누구? 

메이저리그 출신 용병들 가운데 최고의 경력을 뽐냈던 스타는 단연 삼성 훌리오 프랑코였다. 1982년 필라델피아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그는 텍사스 소속이던 1989~1991년 3시즌 연속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 선정됐고, 5차례나 실버슬러거 상(2루수 4번, 지명타자 1번)을 받았다. 1991년엔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다. 프랑코는 특히 한국에서도 빅리거의 위용을 떨쳤다. 2000년 삼성에 입단해 132경기에서 타율 0.327, 22홈런으로 좋은 성적을 남겼다. 

특히 이때는 용병 도입 초기라 국내 선수들이 프랑코에게 메이저리그식 체계적인 몸 관리법을 전수받는 계기도 됐다. 프랑코는 2001년 삼성을 떠나 다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고, 2007년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2527경기, 타율 0.298, 2586안타를 기록했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7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최고령 홈런 기록까지 세웠다. 

투수들 가운데서는 KIA에서 뛰었던 호세 리마가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리마는 1999년 메이저리그 휴스턴에서 21승을 올리며 다승 2위에 올랐던 특급 투수. 메이저리그 13시즌 통산 89승을 올리고 2008년 한국에 왔다. 또 리마보다 1년 앞서 KIA에서 뛴 펠릭스 로드리게스는 시속 160㎞의 광속구와 함께 ‘F-로드’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투수였다. 메이저리그 통산 563경기에서 38승 26패 방어율 3.71을 기록했고, 한때 빅리그 최고의 셋업맨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둘은 2년 연속 KIA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리마는 2008시즌 중반에 퇴출됐고, 로드리게스 역시 2007년 30게임에서 10홀드에 방어율 3.13의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떠났다. 

# 경력과 성적 사이

사실 그동안 경력과 성적이 반비례한 용병들은 리마와 로드리게스 외에도 많았다. 1991년 내셔널리그 올스타 출신인 롯데 펠릭스 호세, 2010년 텍사스에서 월드시리즈까지 뛰고 곧바로 한국에 온 두산 더스틴 니퍼트 정도가 입단 당시의 화제성을 성적으로 충족시켜준 최고의 케이스. 
 

▲ 왼쪽부터 타이론 우즈(일요신문 DB), 훌리오 프랑코( / 삼성 라이온스


반대로 한국에서 성공한 용병들 가운데에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거의 없다가 한국에 와서 ‘코리안 드림’을 이룬 선수들이 더 많았다. 더블A 출신이었던 OB 타이론 우즈, 마이너리그가 주무대였던 세스 그레이싱어, 잠시 메이저리그에 이름만 올렸던 현대 클리프 브룸바 등이 대표적이다. 

이유는 많다. A 야구 관계자는 “과거 메이저리그 경력이 많았던 특급 용병들은 다들 전성기가 지나서 한국에 왔다. 통산 성적이 화려하다 해도 이미 한국에 오기 전에는 마이너리그에 오래 머물렀던 선수가 대부분이었다”며 “오히려 로저스나 (한국에 처음 올 때의) 니퍼트처럼 나이가 젊은 편이고 직전까지 메이저리그에 머물렀던 투수들이 더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또 용병 투수들에게는 미국에 비해 ‘머리를 많이 쓰는’ 한국 타자들의 스타일이 여러 모로 부담이다.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은 “시속 100마일(160㎞)을 던져도 컨트롤이 없으면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고, 시즌 도중 퇴출됐던 한 투수는 “빠른 주자들이 내 슬라이드 스텝을 파고들어 도루를 자주 시도했다. 등 뒤를 신경 쓰다가 자꾸만 제구가 높게 되곤 했다”고 회상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투지’에 큰 차이가 있다. 용병 담당 스카우트인 B는 “메이저리그에서 훈장을 달고 온 선수들은 아무래도 간절함이 덜하다. 한국 야구의 수준을 한 수 아래로 보고 시즌 전에는 제대로 대비도 하지 않는다”며 “그러다 개막 직후 ‘어어, 이거 뭐야?’ 하고 깜짝 놀라다 한 시즌이 간다. 그래서 오히려 적당한 경력의 용병이 더 나을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 역대급 문제의 용병들

특히 한국 야구는 메이저리그 100홈런 타자들과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역대급 문제 용병’이 둘이나 나왔다. 지난해 SK에서 뛰었던 루크 스캇이 그 가운데 하나다. 스캇은 메이저리그에서 4번타자로만 109경기를 뛰었고, 빅리그 통산 889경기에 나가 타율 0.258, 135홈런을 기록한 타자였다. 한국을 거쳐 간 용병 타자들 가운데 통산 홈런수가 가장 많았다. 심지어 SK에 오기 직전 시즌에도 빅리그 91경기에 출장했다. 
 

스캇의 영입이 발표된 뒤 ‘SK가 어떻게 저렇게 대단한 선수를 데려왔느냐’며 모두 놀랐고, SK가 최초로 200만 달러(23억 8200만 원) 이상을 썼다는 소문까지 나왔다.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기간에도 상대팀 관계자들과 선수들의 관심은 스캇이 어떤 타격을 하는지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스캇의 실력보다 안하무인격 태도에 더 많이 놀랐다. 온갖 부상을 핑계로 출장을 기피하면서도 2군행 통보를 받자 감독에게 반항했다. 

심지어 퇴출 직전에는 취재진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만수 감독에게 공개적으로 항명했다.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감독을 향해 “거짓말쟁이!”, “겁쟁이!”, “내가 메이저리그에서만 9년을 뛰었다!”라고 소리 질렀다. SK는 결국 징계 차원에서 스캇을 웨이버 공시했다. 한국 성적은 33경기에서 타율 0.267, 홈런 6개, 17타점. 스캇은 기다렸다는 듯 잔여 연봉까지 모두 챙겨서 훌훌 떠났다. 

2004년에도 빅리그 100홈런 타자 두 명이 동시에 한국으로 왔다. 삼성 트로이 오리어리는 2003년 56홈런을 치고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구단이 야심차게 투자한 외국인 타자였다. 1993년 밀워키에서 데뷔해 빅리그에서만 1198경기를 뛰었고, 통산 타율 0.274, 127홈런, 591타점을 기록했던 선수. 스캇 이전에 가장 어마어마한 성적이었다. LG 알 마틴도 빅리그 통산 1232경기에서 타율 0.276, 132홈런, 485타점을 기록한 강타자였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들이 한 수 위의 장타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오리어리는 계약 직후부터 문제를 일으켰다. 시범경기가 개막 직후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며 돌연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일주일 만에 “내가 경솔했다.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며 복귀 의사를 밝혔다. 모처럼 고급스러운 용병을 ‘모셔’왔던 삼성도 오리어리를 떠나보내기가 아쉬웠다.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그럼에도 오리어리는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슬럼프에 빠졌다. 의욕마저 상실해 타석에서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6월에는 끝내 2군행 지시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구단의 지시를 무시한 채 숙소에 머물면서 “에이전트와 상의해 거취를 정하겠다”고 버텼다. 미국에 있는 에이전트가 전화로 설득을 거듭해 겨우 이틀 만에 2군 훈련에 합류시켰다. 그러나 구단은 이미 오리어리의 행태에 질릴 대로 질린 상황.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고 양손을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남은 건 타율 0.265, 10홈런, 28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마틴은 적어도 팀 적응에는 문제가 없었다. 용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선수단 미팅을 주도하는 리더십도 보였다. 베테랑 선수들과 식사도 자주 하며 친목도 다졌다. 다만 한국 나이로 38세였던 그에게 한국의 무더위는 너무 큰 장벽이었다. 용병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 설상가상으로 시즌 막바지에 오른쪽 어깨 부상을 당해 남들보다 한 달 일찍 시즌을 접었다. 결국 타율 0.291, 9홈런, 52타점이라는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배영은 /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일요신문 [제1214호] 

 

외국인 선수 옵션의 비밀
 - 때론 기 살려주려 ‘업 계약’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불과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KBO가 지난 시즌을 앞두고서야 허울뿐인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총액 30만 달러·약 3억 5730만 원)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30만 달러짜리’ 특급 용병들이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갔다. 그들 모두가 정말 30만 달러를 받고 뛰었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당연히 없었다. 몸값 상한선이 존재하던 시기에는 “아무개 용병이 발표 금액보다 얼마를 더 받았다”는 소문보다 “A 구단과 B 구단 용병들은 ‘정말로’ 발표 금액 그대로의 몸값을 받았다더라”는 얘기가 오히려 더 신선하게 들렸을 정도다.

당연히 일부 장수 용병들의 다년 계약설도 기정사실로 받아 들여졌고, 이미 수년 전에 수도권 C 구단의 한 용병 투수가 최초로 몸값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는 얘기도 공공연한 비밀로 통했다. 여러 논란에도 꿈쩍 않던 KBO가 결국 유명무실했던 연봉 상한선을 없앤 이유다. 이후 ‘업 계약서’라는 새로운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전에는 실제 계약 내용보다 축소해 발표하는 ‘다운 계약서’가 대부분이었지만, D 구단은 다른 용병들에 비해 몸값이 너무 낮은 E 용병의 자존심을 살려 주기 위해 오히려 금액을 더 올려서 발표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용병들의 계약서에는 발표된 금액 이외에 다양한 옵션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 일단 계약 때 용병들과 구단 모두 세부적인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외부에 함구하기로 약속을 한다. 용병들은 성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공개를 꺼리고, 국내 선수들은 괜한 박탈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옵션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소문은 알음알음 입과 귀를 타고 흘러 나간다. 때로는 경기 중에도 한눈에 눈치 챌 수 있다. 

F 구단 통역 담당자는 “용병들은 당연히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한국까지 와서 야구를 하고 있다. 옵션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용병 투수가 눈앞에 뒀던 승리를 날렸을 때 유독 흥분하거나, 용병 타자가 경기 흐름에 관계없이 특정 타이틀에 유독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조항에 보너스가 걸려 있을 가능성이 99%다”라고 귀띔했다. 몇몇 감독들은 아예 용병들의 옵션 조항을 기억해 놓는다. 다음 시즌 재계약을 원하는 용병이라면, 웬만하면 개인 성적을 챙겨주는 게 서로 기분 좋게 사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경력이 화려했던 G 선수는 아예 보너스 규모만으로도 연봉에 맞먹는 ‘풀 옵션’ 계약을 하기도 했다. 세세한 개인 성적은 물론, 자신이 도전할 수 있는 개인 타이틀 전체와 골든글러브, 시즌 MVP, 포스트시즌 MVP까지 가능한 옵션은 모두 다 걸었다. 성적 하나하나가 돈과 직결됐다. 구단도 동기 부여를 위해 이 조항을 받아들였다. G 선수를 영입했던 구단 관계자는 “이 조건을 모두 달성하면 액수가 꽤 커지지만, 경력에 걸맞은 자신감으로 여기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실제로 선수가 그만한 활약을 해준다면 팀에도 나쁠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KBO리그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용병들의 계약 정보 공유도 활발해졌다. 한 베테랑 해설위원은 “미국에 취재를 가보니 현지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한국 야구에 관심이 많고, 서로 KBO리그 진출을 추천하거나 궁금해 하며 이것저것 묻는 분위기였다. 한국에 가는 것을 최후의 보루로 여기던 예전과는 확실히 상황이 달라졌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새로 한국에 오는 용병들은 이미 한국 야구를 경험하고 마이너리그로 돌아간 옛 용병 출신들에게 조언을 많이 얻는다.

이로 인해 생긴 부작용도 있다. 용병들이 하나같이 “중도에 퇴출되더라도 무조건 계약금과 연봉은 다 받겠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구단들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더 커진 것이다. H 구단 관계자는 “요즘은 용병들도 전액 보장이 아니면 아예 사인을 하지 않겠다고 버틴다”며 “거액을 들여 영입한 용병이 시즌 초반에 부진하면 팬들은 빨리 퇴출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구단은 그 돈을 생각하면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귀띔했다. 

반대로 스스로 돈이 급해 급하게 한국에 온 용병이라면 구단이 감당해야 할 지출도 한결 줄어진다. I 선수는 교체되는 시점에 곧바로 월급이 일할 계산돼 지급되는 ‘칼 같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연봉도 아닌 월급 계약. 선수 입장에서는 굴욕을 감수해야 하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오히려 “이런 ‘생계형 용병’들이 정말 이를 악물고 뛴다”고 했다. 부상과 부진으로 허송세월하다 돈만 다 챙겨 떠나는 일부 외국인선수들과 대조적이다. [은]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