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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魂의 母音] 그 여름에 읽은 책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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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못박아 놓고들 있지만 사실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계절일 것 같다. 날씨가 너무 청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엷어가는 수목의 그림자가 우리들을 먼 나그네길로 자꾸만 불러내기 때문이다.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서 책장이나 뒤적이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고리타분하다. 그것은 가을날씨에 대한 실례다.
 
그리고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도 우습다. 아무때고 읽으면 그때가 곧 독서의 계절이지.
 
여름엔 무더워서 바깥 일을 할 수 없으니 책이나 읽는 것이다. 가벼운 속옷바람으로 돗자리를 내다 깔고 죽침(竹枕)이라도 잇으면 제 격일 것이다. 그러니까 수고롭게 찾아나설 것 없이 출렁거리는 바다와 계곡이 흐르는 산을 내 곁으로 초대한다.
 
8,9년 전이던가, 해인사 소소산방(笑笑山房)에서 '화엄경 십회향품(華嚴經 十廻向品)'을 독송하면서 하녀름 무더위를 잊은 채 지낸 적이 있다. 그해 봄 운허노사(耘虛老師)에게서 <화엄경> 강의를 듣다가 십회향품에 이르러 보살의 지극한 구도정신에 감읍(感泣)한 바 있었다. 언젠가 틈을 내어 십회향품만을 따로 정독하리라 마음먹었더니 그 여름에 시절인연이 도래(到來)했던 것이다.
 
조석으로 장경각(藏經閣)에 올라가 업장(業障)을 참회하는 예배를 드리고 낮으로는 산방(山房)에서 독송을 햇었다. 산방이라지만 방 하나를 간막아 쓰니 협착했다. 서까래가 내다뵈는 조그만 들창과 드나드는 문이 하나 밖에 없는 방, 그러니까 여름이 아니라도 답답했다.
 
그래도 저 디오게네스의 통 속보다는 넓다고 자족했었다. 또 한가지 고마운 것은 앞산이 내다보이는 전망이었다. 그것은 3백호쯤 되는 화폭이었다.
 
<화엄경>은 80권이나 되는 방대한 경전이다. 십회향품은 그중 아홉권으로 되어 있다. 한여름 그 비좁은 방에서 가사와 장삼을 입고 단정히 앉아 향을 사르며 경을 펼쳤다. 먼저 개경게(開經偈)를 왼다.
 
"더 없이 심오한 이 법문(法門)/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데/내가 이제 보고 듣고 외우니/여래의 참뜻을 바로 알아지이다"
 
경은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 한문번역의 목판본으로 읽었었다.
 
요즈음은 한글대장경으로 번역이 나와 있지만 그때는 번역이 없었다. 한글번역이 있다하더라도 표의문자(表意文字)가 주는 여운이며 목판본으로 읽는 그 유연한 맛은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더러는 목청을 돋우어 읽기도 하고 한자 한자 짚어가며 목독(目讀)하기도 했다.
 
비가 올듯한 무더운 날에는 돌담 밖에 있는 정랑(淨廊)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왔다. 그런 때는 내 몸안에도 자가용 변소가 있지 않느냐, 사람의 양심이 썩는 냄새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체(一切)가 유심소조(唯心所造)니까.
 
저녁 공양(供養) 한 시간쯤 앞두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가사 장삼에 땀이 흠뻑 배고 깔았던 방석이 축축히 젖어 있었다. 비로소 덥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골짜기로 나가 훨훨 벗어버리고 시냇물에 잠긴다. 이내 더위가 가시고 심신(心身)이 날듯이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해서 그해 여름 십회향품을 20여회 독송했는데 읽을수록 새롭고 절절했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우러나서 한 일이라 환희로 충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내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1972년 8월 2일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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