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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중전과 후궁의 결정적 차이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2. 1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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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왕의 죽음으로 조선은 비상체제로 움직이는데, 그래도 한나라의 왕좌를 비워 둘수는 없는 법.
 
세자가 황급히 용상의 자리를 채우는 사이, 궁궐 한 켠에서는 중전과 후궁들 사이의 ‘왕 사망 이후의 후궁들 생계대책에 관한 대책회의’라는…듣기만 해도 머리에 쥐내리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으니,
 

“중전마마…아니 대비마마, 이렇게 저희를 찾으신 연후가….”

 

“뭐 딴 거 없고, 대행왕(죽은 왕을 일컫는다)도 갔으니까 대충 족보를 정리해야 할 거 같아서 말야. 이게 또 우리 세자가…아니 이제 주상마마가 되셨으니까,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서 말야.”

 

“그…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불상사라뇨?”

 

“혹시 모르잖아?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지 아부지가 좋아하던 여자인지도 모르고 덤볐다간 이야기 골치 아파지잖아.”

 

“저기, 마마…설마 그럴 일이 있겠사옵니까?”

 

“일단 셔터 마우스! 이것들이 말야. 대비가 말하면 그러려니 하고 들어야지. 어디서 말대꾸야? 세컨드 주제에 말야...”

 

“마마, 말씀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세컨드라뇨? 이래뵈두 대행왕의 후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첩은 첩이잖아? 본처는 나구? 어쭈, 지금 조강지처한테 단체로 개기는 거야?”

 

“그런게 아니라….”

 

“시끄러워! 일단 말야. 내가 제조상궁한테 울 남편이 죽기 전에 건드린 애들 목록 뽑아 보라고 했거든? 업소용…그러니까 기녀들 제외하고, 궁 안에 있는 애들만 대충 추렴한 거니까, 출석 부르면 힘찬 목소리로 대답해, 알았지? 일단 승은(承恩)만 받은 승은상궁! 어디보자…내 남편이지만 진짜 너무 하네. 11명이 뭐야, 11명이…. 말자, 봉자, 경자, 혜정이, 장숙이, 인혜, 미숙이, 미자, 미동이, 연희, 영은이, 숙자! 그래, 네들 할 말 없지? 그러게 부지런히 해서 아들이나 하나 낳지 그랬어….”

 

승은상궁…임금에게 승은(承恩)은 받았으나, 특별히 어떤 귀여움을 받은 건 아닌 상태…거기다 자식도 못 낳게 되면, 후궁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저 상궁으로 만족해야 했다. 죽을때까지 승은 한번 못 받은 거 보다는 낫겠지만, 그저 하룻밤 풋사랑으로 인생을 끝내야 하는…어찌보면 궁녀들 보다 못한 처지가 바로 승은 상궁이었다.

 

“네들은…어쩔 수 없겠다. 걍 정업원으로 가라.”

 

“대…대비 마마!”

 

“어쭈, 그럼 네들 어쩌려고? 방법 있어? 그래도 한때 왕의 여자였던 몸으로 다시 시집을 가겠냐, 아니면 궁궐에서 버티겠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잖아. 네들 팔자가 그런거라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리고, 박숙원, 정귀인, 최숙의…이거 참 어쩌냐? 네들 다 아들 못낳지?”

 

“마마! 설마 저희들 보고 정업원으로 들어가란 소리는 아니지요?”

 

"정업원 아니면 갈 데 있어? 왕을 모셨던 몸으로 말야…. 뭐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야…. 솔직히 네들 궁에 있어봤자 천덕꾸러기 취급 받고, 그냥 조용히 정업원 가서 우리 남편한테 기도나 해라. 그게 서로를 위해 편해. 알았지?”

 

“대비마마! 이러실수는 없습니다!”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하루 줄테니까, 알아서 짐 싸서 들어가라~. 서로 험한 꼴 보지 않게, 조용히 떠나야 한다.”

 

그랬다. 조선시대 중전과 후궁의 결정적 차이…그건 왕이 죽은 뒤의 대접이었다. 중전은 본처라는 막강한 배경 덕분에 대비라는 새 직함을 받고, 왕실 어른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후궁들은 왕이 죽은 뒤에는 정업원(淨業院 : 고려후기 개경에 창건된 절로, 조선 개국후 한양으로 옮겨졌다. 공민왕의 후비였던 안씨가 공양왕 시절 이성계의 압력으로 고려의 옥새를 이성계에게 넘기고는 정업원의 주지가 되었다. 이후 단종의 비였던 정순왕후 송씨나 왕의 후궁들이 들어와 노후를 보내는 후궁 전용 절이 되었다. 그러나 숭유억불을 컨셉으로 잡은 조선의 선비들에 의해 정업원 타파 의견이 모아져 몇 번의 철거와 재건을 반복하다. 선조 때 완전히 문을 닫게 된다)으로 쫓겨 나야 했다.

 

“남은 여생 동안 우리 남편 극락왕생이나 빌어라. 그게 세컨드의 한계지…쯧쯧.”

 

보면 알겠지만, 처와 첩의 차이…이 작지만 큰 받침 하나의 차이가 왕의 사후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던 것이다. 그나마 왕자라도 한명 있으면 대충 눈치 보다가 왕자에게 몸이라도 의탁하거나 할 수 있을 터인데…역시 본처와 첩의 차이는 작지만 큰 차이인 듯하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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