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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수첩] '판정항의 징계 규정'이 생긴 본질을 되돌아본다

--김현기 축구

by econo0706 2022. 11. 19.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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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5. 10

 

팩트 체크부터 할 필요가 있다. 2011년 10월 5일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 제3차 이사회에선 한 가지 흥미로운 결의가 이뤄졌다. ‘선수나 코칭스태프, 구단 관계자가 경기 판정이나 심판 판정에 대해 공식 인터뷰 등 대중적인 경로를 통해 부정적인 언급을 할 경우 별도 규정으로 제재한다’는 결의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5경기 이상 10경기 이하 출전 정지, 500만원~1000만원 제재금 부과 등이 따르고 있다. ‘연맹’의 사전적 정의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국가나 단체가 서로 돕고 행동할 것을 약속하는 조직체를 뜻한다. K리그 각 구단의 의견을 수렴하고 행정적 편의를 대행하기 위한 조직체가 바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인 것이다. 이사회 역시 총재와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파견 이사를 제외하곤 K리그 구단 사·단장 전원으로 구성됐다가 ‘봉숭아학당’처럼 각 구단 목소리만 내는 자리라는 혹평을 들은 뒤 구단 몫을 줄이고 사외이사를 늘렸지만 본질은 변함없다. 총재(커미셔너)의 리더십이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어쨌든 각 구단의 목소리가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연맹이고 연맹 이사회다.

‘입에 재갈 물린다’는 혹평을 듣고 있는 ‘판정 항의 징계’ 룰이 왜 탄생했는가에 대한 배경을 들어봤다. 당시 이사회의 한 구성원은 “안 그래도 승부조작 강풍으로 K리그가 흔들리고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구단 구성원들이 경기 직후 판정 불만을 쏟아내니 ‘이래선 안 되겠다’는 자정의 목소리들이 나왔다. 또 심판 핑계가 너무 많다보니 ‘심판 탓’의 효과가 사라지고 외부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쳤다”고 했다. 이사회 멤버는 아니었으나 한 구단 단장을 했던 이는 “마침 프리미어리그에서 판정에 항의해서 징계받고 그런 케이스의 기사들이 나왔다. 선진국에서도 그런 제도를 채택하니까 우리도 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각 구단 실무진들로 구성된 실무위원회 검토를 거쳐 결의가 이뤄졌다”고 회상했다. 프로‘연맹’은 각 구단 대표자들의 합의를 모아 채택된 이 룰을 실행하고 있을 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판정 항의 징계’는 각 구단이 만든 것이다. 필자는 2010년 즈음 모 구단 감독이 기자회견 막바지에 “지난 경기 주심 참 잘 보던데 어디 갔나…”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공개석상에서 심판들을 서로 비교하는 발언까지 있었던 셈이다.

 

올시즌 K리그의 두 구단 단장이 자기 구단이 당한 오심을 참지 못하고 취재진 앞에 직접 나와 울분을 터트린 일이 일어났다. 벌금 징계를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예정이다. 그게 구단들의 대표격인 이사회가 정한 룰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감독이든 구단주든 판정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으로 표시되면 2011년 10월 이후 징계가 주어졌다.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 “연맹이 왜 입에 재갈을 물리는가”란 비판이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사실 확인없이 나오는 얘기들이다. 입에 재갈을 물린 이들은 사실상 각 구단, 좁히면 각 구단 사·단장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비지니스적 관점에서 봤을 때 K리그가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선 판정 관련 불만을 터트리는 게 옳지 않다는 경험칙이 6년 전 하나의 룰로 연결된 것이다.

두 구단의 억울함, 단장들의 울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팬들의 속상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끓어오르는 심정을 토로하는 게 맞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지면 이사회를 통해 구단들이 룰을 예전대로 돌리면 된다. 그러나 6년 전 나무보다 숲을 보고 이사회가 만들었던 그 룰이 지금은 바뀌어도 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규정 변경을 실제 공개적으로 꺼내들 구단들이 얼마나 있을 지도 의문이다.

K리그에선 2015년부터 심판 물갈이가 이뤄지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실력 있어도 미심쩍은 심판을 내치고, 다소 부족해도 신선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심판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당분간 오심이 늘더라도 의심을 없애자는 방향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고, 개혁 3년차인 올시즌 치명적 오심이 속출하고 있다. 필자도 심판 수준이 ‘물갈이’ 1~2년차보다 더 떨어지는 것 같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리그, 완벽한 심판도 없다. 오심을 막을 강력한 보완재, 비디오판독시스템(VARs)이 당초 예정보다 3주 가량 빠른 7월 초부터 도입된다고 한다. VARs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효과가 얼마나 있을 지는 기다릴 필요가 있다.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기에 앞서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다.

 

김현기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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