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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北韓의 직업

by econo0706 2008. 11. 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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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의 계순희 선수
북한에서는 체육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튼튼히 단련하여 이들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공산주의적 혁명인재로 키우기 위한 사업' 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체육인의 양성 체계는 어떤가? 우수 선수의 발굴, 육성 차원에서 인민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 체육이 가장 중요시된다.

 

유망주의 조기발굴을 통한 집중교육과 각종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을 발굴하는 두 방법을 병행하고 있다. 유망주의 조기발굴은 선수선발 전문코치가 자질이 있는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적성검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들은 인민학교때부터 기능보다는 기본기 중심의 훈련을 받는다. 신인발굴 및 국가대표 선발행사는 종목별 공화국선수권대회와 매년 8월 전국체육구락부 소속원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전국체육구락부 체육경기대회 등이다.

 

전문 체육인 양성 기관으로는 중앙체육학원(남포), 각 도에 1개씩 설치한 3년제 고등체육전문학교, 4년제 평양체육대학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국가 대표 선수를 훈련시키는 국가종합체육단(평양)을, 각 시, 도 단위에 대표 선수단을 하나씩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실업팀격인 체육단은 4.25체육단(인민군종합체육단), 사회안전부(경찰) 체육단, 평양시체육단, 기관차체육단(철도부 소속) 등과 각도 체육단이 있다. 이밖에 종합기업소, 연합기업소 체육단이 10여 개가 있으며, 인민군 군단 체육단이 있다. 이렇게 많은 체육단에는 체육대학등을 졸업한 학생들이 취업하고 다시 프로로 전향한다.

 

북한에서 운동선수는 대중 연예인처럼 출신성분을 덜 따져 경쟁률이 보통 5대1이 넘는다. 이를테면 남한에서는 아이스하키라면 비싼 장비를 마련할 수 있는 부유층이 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북한에서는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개인이 돈을 낼 필요는 없다. 장비는 무료고, 링크 대관료 같은 것도 없다. 오히려 북한에서는 자식이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한 입 덜었다고 좋아한다.

 

과외체육학교를 졸업하면 출신성분과 희망에 따라 대학이나 체육선수단에 들어간다. 직업선수를 원하는 학생은 체육선수단에, 체육지도자를 원하는 학생은 대학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떤 운동이든 직업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는 일단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학교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다 보면 몹시 고단하다. 하지만 체육단 선수라는 신분을 얻게 되면 학생 때부터 월급을 따로 받는다. 노동자 평균 월급의 4분의 1선인 북한돈 25원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선수는 급수에 따라 무급은 80원, 4급부터는 100원 넘게 받는다. 식량난이 심해지기 전까지는 신발, 양말, 빨랫비누까지 공급됐다.

 

월간 화보집인 '조선'(2000년 2월호)에 소개된 최철수(30)씨는 15년째 권투선수로 활약해온 인민체육인이다. 국내외 대회에서 금메달 6개와 범아시아 국제프로권투 경기대회에서 받은 우승컵 등은 그의 화려한 경력을 말해 준다. 이런 경력 뒤에는 고통의 시간이 따랐다. 오전 6시 기상벨 소리와 함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오전 8시까지 청소와 식사를 마친 뒤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는 맹훈련이 오후 6시까지 계속된다. 체육선수단 소속 선수들의 월급은 1백원 정도로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이다.

 

북한은 우수체육인에 대한 포상제도를 통해 체육인의 사기 진작 및 경기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으며 월급·주택보급, 직장 알선 등에서 나름대로 좋은 대우를 하고 있다. 북한은 체육인에 대한 포상을 '인민체육인'을 비롯하여 '공훈체육인', '체육명수', '체육혁신자'등 4종류로 분류하여 실시하고 있다. 공화국 영웅·인민체육인 및 공훈체육인 칭호를 수여받은 자는 평양거주 및 입당 등의 특혜는 물론 노후에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특히 아파트, 승용차 및 포상금을 받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인민체육인으로는 이분희·이명훈·계순희 등 약 80여명, 공훈체육인은 약 430여명이 배출된 바 있다.

 

한편 북한에서도 분명 "스포츠의 프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아직은 일부 종목에 국한된 현상이지만 스포츠의 프로화는 엄연한 사실이고 또 그 범위도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가장 먼저 프로화된 것은 권투이다. 1993년 4월에는 평양에서 처음으로 '93공화국 프로권투대회'를 개최했다. 이 때 피킷을 든 라운드 걸(round girl)이 등장했는데 비키니나 미니스커트가 아닌 한복차림이어서 이채를 띠었다.

 

권투에 앞서 축구에 프로의 개념이 일부 도입된 바 있는데 지난 90년 창설된 '평양컵 국제대회'에 상금을 채택한 것이다. 아울러 비교적 품을 적게 들이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바둑도 일찍이 프로화 되었다. 김일성 사후인 95년 4월 평양에서 첫 국제프로레슬링경기대회가 열려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최근 한반도를 뒤덮은 월드컵열기는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북한 남성들의 축구열기는 광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주민들의 열망을 반영한 듯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주요 경기를 하루 뒤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한 바 있다.

 

http://office.kbs.co.kr/tongil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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