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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배구 (2)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3. 2. 1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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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5. 30.

 

1945년 11월 20일, 1930년대 보성전문(오늘날의 고려대학교)에서 배구를 했던 인사들이 중심이 돼 대한배구협회가 발족됐다. 1956년 10월 창설된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는 배구 발전에 기폭제가 됐다. 이때는 9인제 배구의 전성기였고 1960년 6인제가 도입됐다.


1958년 5월 도쿄에서 열린 제 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배구(남자 6인제인제)가 정식 종목으로 처음 열렸고 한국은 9인제에만 출전해 일본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1959년 서울에서 열린 제 40회 전국체육대회부터 6인제 경기를 택했다. 1959년 10월 FIVB(국제배구연맹)에 가입했다. 이에 앞서 남자는 195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20개 출전국 가운데 18위에 머물렀다.

 

▲ 1925년 진명여고 운동장에서 배구(오른쪽)와 농구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 대한체육회 90년사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에 배구는 여자부가 추가됐고 남녀 모두 6인제와 9인제가 열렸다. 여자가 6인제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뒷날 세계 무대에서 선전을 기약했다. 9인제에서는 남녀 모두 은메달을 획득했다. 남녀 모두 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조금씩 떼고 있었다.

 

도쿄 올림픽은 ‘신금단 부녀 상봉’과 북한 선수단 철수 등으로 대회 전부터 갖가지 화제가 잇따랐다. 1964년 10월 10일부터 24일까지 94개국 5천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는 19개 종목 163개 세부 종목에서 기량을 겨뤘다. 배구로서는 남녀부가 함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의미 있는 대회였다.


한국은 이웃 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인데다 북한을 의식해 17개 종목에 154명(남 128 여 26)의 당시로서는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다. 한국 선수단 가운데 가장 다급하게 경기에 나선 종목이 여자 배구였다. 지역 예선에서 아시아 대표로 뽑힌 북한이 느닷없이 철수하자 FIVB가 지역 예선에서 2위를 한 한국에 출전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 1928년 제 1회 전조선중등학교배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경성사범 선수들. 경성사범은 1932년 전일본중학배구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 대한체육회 90년사

배구는 개최국 일본의 전략 종목이었다. 일본은 실제로 이 대회 배구 여자부에서 금메달, 남자부에서 동메달을 손에 넣었다. 여자 배구는 북한의 불참으로 출전국이 5개국으로 줄면서 정식 종목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위기에 놓였다. 한국은 FIVB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미 해체된 대표팀을 급히 다시 소집해 출전했으나 일본 소련 폴란드 등에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꼴찌에 그쳤다. 그러나 여자 배구는 이후 기량을 갈고닦아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다.


1963년 12월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북한과 총성 없는 전쟁을 한 끝에 3-2로 이기는 등 6전 전승을 거두며 본선에 오른 남자 배구는 세계 수준과 실력 차를 절감하며 9전 전패로 꼴찌에 머물렀다. 다만 헝가리, 루마니아, 미국 등과 경기에서는 풀세트 접전을 펼치며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3편에 계속>

 

신명철 편집국장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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