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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뚜루 마뚜루] 사인 훔치기 의혹 만연, ‘눈 가리고 아웅’ 이대로 좋은가

--홍윤표 야구

by econo0706 2023. 2. 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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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09

 

“없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모 야구단 고위 관계자)

한국 프로야구 판에 사인 훔치기 의혹이 번져있다. ‘선수끼리는 안다’는 말처럼 각 구단들은 사인 훔치기와 관련, ‘물증이 없다 뿐이지 심증은 간다’는 식으로 서로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간헐적으로 사인 훔치기에 대해 얼굴을 붉히는 일도 일어났다.

한국프로야구단이 선수를 트레이드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사인을 바꾸는 것이다. 사인 노출은 작전 노출의 위험이 크므로 당연한 노릇이다.

야구는 사인으로 시작, 사인으로 끝나는 운동이라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다. 감독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사인을 선수가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두 말 할 나위조차 없이 작전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사인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경기 도중 사인이 상대팀에 읽힌다면, 작전이 뒤틀리고 만다. 그런데 ‘사인 훔치기’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단정하기는 뭣하지만, 여전히 알게 모르게 사인 도둑질이 자행되고 있다는 게 야구단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공격 팀 타자에 대한 사인 전달 경로는 크게 3갈래이다. 1, 3루 주루코치나 2루 주자가 상대 포수의 사인을 읽고(훔쳐) 알려준다. 특히 1, 3루 주루 코치가 코처스 박스를 벗어나 앞으로 몸을 움직일 때 상대 팀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야구인들은 투, 포수가 사인을 교환하는 사이 주루 코치가 앞으로 약간 발을 내 딛거나 뒤로 물러나면 사인을 알려주는 동작으로 이해한다.

올해 들어 한화 이글스 경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대팀 선수가 2루 주자로 나가 있을 경우 한화 포수가 투수의 투구 직전 몸 쪽이나 바깥쪽으로 폴짝 뛰어 공을 잡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포수가 급작스레 미트 위치를 바꾸면 자칫 제구력이 정교하지 못한 투수의 투구가 엇나갈 위험이 있는데도 그런 움직임을 계속한다. 왜일까.

상대팀 2루 주자가 사인을 훔친다는 ‘의심’을 하기 때문에 그런 동작이 나온다는 게 한 구단 관계자의 풀이다. 문제는 거꾸로 그런 행위가 상대팀으로 하여금 같은 의심을 품게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야구단이 서로 ‘사인 훔치기’에 대한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있다 해도 무리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 구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캐처가 움직이는 걸 한 번 보라.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상대가 사인을 훔친다고 의심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런 짓은 자기들이 (사인 훔치기를) 하고 있으니까 나온다.”면서 “당사자가 양심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사인 훔치기는 심증이 가더라도 물증이 없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자가 2루에서 견제에 걸려 아웃되는 장면도 잘 보면 상대 팀 포수 사인에 몰두, 넋 놓고 있다가 당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사인 훔치기는) 안 한다고도, 한다고도 말 할 수 없다. 드러낸다면, 야구 판에서 누워서 침 뱉는 꼴이 될까봐 말하기도 그렇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사인 훔치기’는 물론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사인 훔치기는 부정행위다. 아직도 사인 훔치기를 야구의 ‘필요악’으로 이해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사인 훔치기’는 위법이자 비열한 행위이다. 타자가 훔친 사인으로 상대팀 투수와 대결하는 것은 그만큼 유리할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단 감독을 역임했던 한 야구인은 “타자에게 상대 투수의 구질을 아주 단순하게 직구나 변화구라고만 알려줘도 타격에 굉장히 유리하다.”면서 “상대 팀 2루 주자나 주루 코치가 상대 포수의 사인을 훔쳐 타자에게 알려주는 행위는 불공정 게임이자 야바위나 마찬가지로 비난받아야할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 잠실구장에서 벌어졌던 사인 훔치기 논란과 관련, 애먼 시비에 휘말렸던 한화 정근우에게 박철우 두산 코치가 이튿날 만나 설명해주고 있다.

 

‘2015 KBO 리그규정’ 제26조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 금지 1~4항 가운데 1항에는 ‘벤치 내부, 베이스 코치 및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투수의 구종 등의 전달행위를 금지한다.’ 고 명시해놓았다. 또 같은 조 제3항에는 ‘구단은 경기장 밖의 센터 후방 및 기타 장소에서 망원 카메라, 특수 장비가 장착된 카메라 또는 비디오카메라 등으로 상대 배터리의 사인 촬영을 금지한다.’, 4항에는 ‘상기사항을 위반하였을 경우 해당 당사자는 즉시 경기장 밖으로 퇴장당하며 필요시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명문화했다.

사인 훔치기는 사실 그 어느 구단도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에 했거나 현재도 하고 있을 수 있다. 엄연한 규정이 있지만 실제로 딱 부러지는 적발이 어려워 규정 자체가 사문화 돼 있다. 경기 도중 의심스런 일이 생기더라도 당사자가 발뺌을 해버리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올 들어 사인 훔치기에 대한 시비가 처음으로 벌어진 것은 지난 5월 9일 한화와 두산 잠실 경기였다. 박철우 두산 코치가 임수민 한화 1루 주루 코치에게 거친 언사를 던지며 서로 얼굴을 붉혔다.

그 일이 일어난 후 한참 지나 박철우 코치는 “임수민 1루 주루 코치에게서 이상한 모습이 보이니까 느낌이 들어 말한 것이다. 양의지 포수가 1차로 ‘코치 박스에 들어가서 보십시오’라고 임수민 코치와 언쟁했는데, 순간 내가 욕설을 한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 화가 난 김에 그러기는 했으나 욕한 것은 잘못했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아서 그랬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임수민 한화 코치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는 "나는 사인 훔친 적은 없다. 언쟁이 붙은 것은 선수가 코치에게 손가락질하며 항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래 주심에게 손짓을 하면서 애기하려고 했는데 두산 덕아웃쪽에서 오해를 한 것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 이후 8월 16일 롯데와 넥센의 목동 경기에서 롯데 외국인 투수 린드블럼과 넥센 2루 주자 박동원 사이에 불거졌던 시비도 사인 훔치기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이튿날 염경엽 넥센 감독은 “우리는 깨끗한 야구를 추구한다. 항상 최대한 정정당당하게 야구를 하도록 선수들에게 말한다”며 해명했고, 이종운 롯데 감독도 “린드블럼이 예민했던 것 같다.”며 염 감독의 주장을 수긍했다.

9월 2일 청주구장 덕아웃 CCTV 소동도 사인 훔치기에 대한 의심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만큼 야구단들이 사인 훔치기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사에 사인 훔치기에 대한 대표적인 공방은 2009년 SK와 KIA의 한국시리즈에서 일어났다. 당시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과 조범현 KIA 타이거즈 감독 간에 시리즈 내내 설전과 책임 공방을 전개했다.

시리즈 후 김성근 감독은 한 방송에 출연, “한국시리즈 내내 KIA가 사인을 훔쳤다.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가 지저분하게 될까봐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 파문을 일으켰다. 김 감독은 그에 덧붙여 “시즌 내내 어느 팀이나 (사인 훔치기를) 한다. 얼마나 들키지 않고 세밀하게 하느냐의 문제”라고 정리, 눈길을 끌었다.

당시 조범현 감독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하다”고 하긴 했지만 맞대응을 자제, 그 일은 흐지부지 됐다.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2011년에 펴낸 자서전 ‘김성근이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OB 감독으로 있을 때 삼성과 싸우면 성적이 좋았다. 그럴 수가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상대 포수 팔 근육의 움직임을 읽었기 때문이다. 사인은 주먹에서 시작되는데, 손가락을 펼 때 하나를 펴느냐 두 개를 펴느냐에 따라 팔 근육이 달라진다. 그 걸 읽어내니까 경기를 하면 결과가 좋았다.’(김성근이다 53쪽)

김성근 감독이 스스로 밝힌 그의 별명은 ‘잠자리 눈’이다. 잠자리 눈은 광각(廣角) 시야를 자랑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만히 서서 세상을 다 내다본다.’는 것이다. 덕 아웃에서 어떻게 포수의 미세한 팔 근육을 볼 수 있을까. 참 대단하다.

상대 팀의 사인을 훔치는 행위는 결코 ‘면죄’ 될 수 없고 합리화 될 수도 없다. 사인 훔치기는 야구의 기술이 아니라 도둑질에 다름 아니다. 깨끗한 야구를 보고 싶다. /OSEN 선임기자


홍윤표 기자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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