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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키워드로 본 포스트시즌 추억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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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02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스포츠에 그치는 게 아니라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드라마’로 여겨진다. 1년 가운데 가장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는 포스트시즌에는 더 그렇다. 무심코 던진 실투 하나, 몸을 날려 잡아낸 타구 하나, 잠깐 방심하다 뒤로 빠뜨린 실수 하나가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 선수들이 정규시즌 경기보다 몇 배나 더 긴장하고, 한 게임을 마친 뒤에는 “두세 경기는 이미 치른 것처럼 피곤하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예년보다 늦게 시작된 올해 가을 잔치 역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과거 수많은 팀들과 선수들이 그랬듯, 잊지 못할 결정적 장면들을 여럿 아로새긴 채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을 야구를 아우르는 키워드들과 그중 대표적 순간들을 돌아봤다. 

# 슈퍼 캐치 

LG는 2016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연장 11회말 양석환의 끝내기 안타로 이겼다. 그러나 양상문 당시 감독은 경기 후 “내 마음속 MVP는 안익훈”이라고 했다. 이유가 있다. 양석환의 끝내기 안타가 나오기 직전인 연장 11회초 수비에서 안익훈은 말 그대로 ‘슈퍼 캐치’를 해냈다. 연장 11회초 2사 1·2루서 우중간을 가르는 나성범의 2루타성 타구를 환상적인 러닝캐치로 잡아냈다.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뻔했던 위기를 무사히 막았다. 죽다 살아난 LG는 다음 공격에서 결승점을 뽑아내 이겼다. 

사실 이 경기는 양 팀 합쳐 25개의 4사구가 나온 졸전이었다. 수많은 주자가 베이스를 밟았지만, 최종 스코어는 2-1. 역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4사구 기록까지 경신했다. 그런데 경기 막바지에 나온 두 번의 호수비 덕에 이 게임이 명승부로 탈바꿈했다. 안익훈의 호수비가 나오기 불과 한 시간 전, 나성범도 한 차례 패배 위기에서 팀을 구했다. 1-1 동점이던 8회 2사 만루서 채은성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그렇게 위태롭던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결국 안익훈이 다시 호수비로 경기 흐름을 바꾸고 팀에 승리를 안기면서 LG가 웃었다.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에서 수비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올해는 넥센 이정후가 또 한 번의 ‘슈퍼 캐치’로 박수를 받았다. KIA와 맞붙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KIA가 넥센을 5-5로 따라 붙은 7회초 무사 1루였다. KIA 중심타자 최형우가 풀스윙으로 타구를 외야 멀리까지 보냈다. 동시에 좌익수 이정후가 그 타구를 노려보며 전력질주했다. 좌중간을 완벽하게 가를 것처럼 보였던 타구는 낙구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이정후의 글러브로 거짓말처럼 빨려 들어갔다. 좌익수 플라이. 여기에 안타를 확신하고 이미 3루 근처까지 갔던 1루 주자 나지완까지 2루에서 태그아웃됐다. 순식간에 아웃카운트 두 개가 올라갔고, 넥센은 여세를 몰아 10-6으로 이겼다. 

# 삼중살

박진감 넘치는 다이빙 캐치나 러닝 캐치도 멋지지만, 손발이 척척 맞는 내야진의 더블 플레이도 짜릿한 희열을 안긴다. 심지어 아웃카운트 3개를 한꺼번에 잡아내는 플레이라면 더 그렇다. 하나의 타구로 세 명의 주자를 아웃시키는 삼중살.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단 세 차례만 나왔다.  
 

▲ 2004년에 기록된 한국시리즈 사상 첫 삼중살을 때린 주인공 삼성 양준혁


그 가운데 하나가 2004년 현대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펼쳐졌다. 역대 유일하게 9차전까지 치렀던 혈전의 한복판이었다. 이미 8차전 개최가 결정됐던 상황. 삼성과 현대는 7차전 선발로 각각 전병호와 정민태를 내세웠다. 삼성은 1회초 박한이와 김종훈의 연속 안타로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이때 양준혁이 때린 타구가 현대 1루수 이숭용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단 타자 주자가 아웃되면서 원 아웃. 이숭용은 그대로 1루를 밟아 이미 2루로 출발했던 1루 주자 김종훈을 아웃시켰다. 투 아웃. 그리고 2루로 다시 송구했다. 이미 스타트를 끊었던 2루 주자 박한이가 미처 귀루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스리아웃이 됐다. 한국시리즈 사상 첫 트리플 플레이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삼성은 이 희귀한 삼중살 기록을 두 번이나 당한 불운의 팀이었다. 그보다 1년 전인 2003년 SK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7회말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7회말 무사 1·3루 풀카운트에서 타자 김한수가 삼진을 당했고, 그 사이 1루 주자 양준혁이 2루로 스타트를 끊었다가 런다운에 걸려 아웃됐다. 이어 3루 주자 마해영도 그 틈을 타 홈으로 뛰어 들다가 역시 태그아웃됐다. 완벽한 작전 실패이자 포스트시즌 최초의 삼중살이었다. 

올해 가을엔 여기에 통산 3호 삼중살이 추가됐다. 한화와 넥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나왔다. 넥센이 0-2로 끌려가던 2회 무사 1·2루서 넥센 선발 제이크 브리검이 한화 김회성에게 3루수 땅볼을 유도했다. 3루 파울라인 바로 근처에 있던 김민성이 이 타구를 잡아 3루를 밟고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올렸고, 2루수 송성문에게 정확하게 송구해 1루 주자 최재훈을 아웃시켰다. 이어 송성문은 1루수 박병호에게 다시 공을 던져 발이 빠르지 않은 타자 주자 김회성까지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내야 땅볼 타구로 삼중살이 나온 것은 이번이 포스트시즌 최초 사례였다. 

# 치명적 실책 

호수비는 스코어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실책은 실점으로 연결될 때가 많다. 한 시즌 내내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데 앞장선 선수가 한 순간의 실수로 고개를 숙이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부터 그랬다. OB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은 4-2로 앞서다 7회 동점을 허용한 뒤 계속된 2사 2·3루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김우열이 친 평범한 플라이를 투수 황규봉과 포수 이만수가 서로 잡으려다 충돌해 공을 떨어트렸다. 그 사이 3루주자 윤동균이 홈을 밟았다. 김이 샌 황규봉은 김유동에게 추가로 2타점 적시타까지 맞아 승기를 내줬다. 두산의 우승에 분수령이 된 경기였다. 

1990년 해태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천하의 선동열 카드마저 실책 앞에 무너졌다. 선동열은 0-0으로 맞선 5회 무사 2루서 이강철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 있던 김용국은 볼카운트 1B-2S서 포수 머리 위로 뜨는 파울플라이성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이 공 역시 포수 장채근과 1루수 김성한이 서로 미루다 놓쳤다. 위기를 넘긴 김용국은 바로 다음 공을 받아쳐 선제 결승 2점 홈런을 쳤다. 선동열의 몇 안 되는 포스트시즌 패배가 그렇게 나왔다. 

1998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선 두산 외국인 2루수 에드가 케세레스가 연장 10회말 1사 2루서 LG 김재현의 강한 2루수 땅볼 타구를 뒤로 빠트렸다. 팽팽하던 승부에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는 포스트시즌 첫 끝내기 실책이었다. 2012년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도 그랬다. 3-3으로 맞선 연장 10회말 1사 2루 홍성흔 타석 때 두산 투수 스캇 프록터의 3구째가 포수 양의지의 미트를 맞고 뒤로 굴러 나갔다. 롯데 2루 주자 박준서가 3루까지 내달렸다. 공을 잡은 양의지는 박준서를 잡기 위해 3루로 공을 던졌다. 그러나 이 송구가 3루수 이원석의 글러브에 맞고 외야로 굴러갔다. 박준서는 홈까지 달려왔고, 결승점을 뽑았다.  

2015년 처음으로 도입된 와일드카드 결정전 역시 끝내기 실책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넥센과 SK가 4-4로 팽팽하게 맞선 연장 11회말 2사 만루. SK 구원투수 박정배는 넥센 윤석민을 유격수 플라이로 유도했다. 그러나 투수, 2루수, 유격수 가운데 누구도 이 공을 잡지 못했다. 결국 SK 유격수 김성현의 끝내기 실책으로 기록됐고, SK는 힘겹게 올라온 가을 잔치를 1경기 만에 마감했다. 

# 해프닝과 신경전

워낙 경기 결과에 따라 극명한 희비가 엇갈리는 시기이다 보니, 정규시즌에는 쉽게 볼 수 없는 해프닝과 신경전도 종종 벌어진다. 2007년 SK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선발투수 다니엘 리오스가 2-0 완봉승을 올리고 난 뒤 갑작스럽게 소동이 일었다. “SK가 1루 쪽 더그아웃 옆 펜스 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두산 주루코치의 사인을 훔쳐보려고 했다”는 소문이 돌아서다. 흥분한 SK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직접 의혹의 원인이 된 장소를 공개했고, 당연히 그곳에 몰래 카메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소문의 진원지였던 두산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고, SK가 받아들이면서 일단락됐다. 
 

▲ ‘1루 쪽 더그아웃 옆 펜스 밑에 몰래카메라’ 논란이 불거졌던 2007년 SK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당시의 인천 문학경기장.


2009년 SK와 두산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황당한 상황이 나온 탓에 규칙 적용을 놓고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3-3이던 7회 2사 1·2루서 SK 박정권의 타구가 외야 좌측으로 향했다. 타구는 두산 좌익수 김현수의 글러브 위로 날아가다 관중이 펜스 안까지 내민 손에 맞고 그라운드로 떨어졌다. 그 사이 2루주자와 1루주자가 득점에 성공했다. 타구가 관중의 손에 맞고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왔으니, 심판은 일단 볼데드를 선언한 뒤 정상적으로 타구가 날아갔을 때의 상황에 근거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단 그 타구가 김현수가 직접 잡기 어려운 안타성 타구였다는 점에는 양 팀 모두 동의했다. 따라서 관중의 수비 방해로 인한 아웃으로 선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루주자의 득점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득점 인정. 김경문 두산 감독이 항의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2014년 NC가 가을 잔치 최종전에 내보낸 마지막 투수는 간판타자이자 주전 외야수인 나성범이었다. 나성범은 대학 시절까지 투수로 활약했지만, NC 입단 직후 타자로 전향했다. 김경문 NC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나성범이 팬서비스 차원에서 마지막 경기에 투수로 나올 수 있다”고 예고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나성범은 4-6으로 뒤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 9회 2사 후 마운드에 올라 시속 147㎞ 직구를 뿌렸다. 다만 팀의 명운이 걸린 마지막 경기인 데다 점수 차가 고작 2점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김 감독의 ‘모험’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3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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