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06.
2005년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12월 29일 개봉된 영화 ‘왕의 남자’는 크게 ‘흥행 몰이’에 성공했다. 총 1,230만여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고 660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며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 그 전 해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던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여 명)를 약 60만 명 차로 제치고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 왕이 가지지 못했기에 더욱 열망했던 광대들의 자유와 신명을 그린 이 영화는 “가장 1,000만 영화다운 1,000만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연산군 시절 '조선왕조실록'에 단 몇 줄밖에 나오지 않는 궁중 광대 공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허구의 세계를 그린 데서 비롯한 극찬이었다.
▲ 토트넘 홋스퍼의 콘테 감독과 손흥민 / ⓒGettyimages
현대 스포츠에서, 감독은 흔히 ‘제왕’으로 묘사된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프로 세계에선, 감독은 더욱 절대적 권력을 향유한다. 비록 그들 자신도 언제 독이 든 성배를 마시고 사령탑에서 물러나야 할지 모르는 운명이긴 해도 감독 재임 순간만큼은 범접하기 어려운 권한을 행사한다. 특히,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명장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게 배어난다.
감독은 선수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취향과 운용 전술에 맞춰 용병술을 펼치는 감독의 눈 밖에 난 선수가 밟을 앞날의 운명은 극히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경기에 나가야 골도 넣을 수 있고 어시스트도 올릴 수 있다. 경기 출장은 실력 향상의 밑거름이다. 따라서 감독의 눈도장을 받으며 믿음을 주는 선수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굳은 토대를 쌓았다고 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손흥민, 콘테의 신뢰와 안목에 부응하는 활약상 펼쳐
▲ 손흥민이 콘테 감독 데뷔전서 선제골을 터뜨리는 순간 / ⓒGettyimages
월드 스타로 발돋움한 손흥민이 ‘콘테의 남자’가 될 첫걸음을 내디뎠다. 3년 만에 잉글랜드 무대를 다시 밟으며 내놓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토트넘 홋스퍼’ 극(劇)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토트넘 지휘봉을 새로 잡고 야심에 가득 찬 행보를 시작한 콘테 감독에게 지난 5일 첫 골을 선사하며 그의 마음속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콘테 감독의 첫 작품인 제1막(2021-2022시즌) 제1장 2021-2022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 콘퍼런스리그(UECL) G조 4라운드에서, 손흥민은 왜 자신이 토트넘의 에이스인가를 여실히 뽐냈다. 선제골을 터뜨리며 토트넘이 SBV 피테서(비테세)를 꺾고(3:2) 고비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데 앞장섰다.
3라운드에서, 토트넘은 피테서에 충격적 패배(0:1)를 당해 3위(승점 4·1승 1무 1패)로 내몰리며 예선 탈락의 위기에 처했다. 기로에서, 토트넘은 다시 2위(승점 7·2승 1무 1패)로 올라서며 반등의 기회를 맞았다.
시즌 중에 말을 갈아탄 토트넘의 결단에 따라 새로운 장수 역을 맡은 콘테 감독에겐 잉글랜드 재입성을 알리는 개막 피테서전이 무척이나 중요한 한판이었다. 그리고 손흥민은 기대치에 어긋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마룻대와 들보[棟梁(동량)]의 진가를 다시금 펼쳐 보였다.
손흥민은 아울러 콘테 감독의 신뢰와 안목에 부응했다. 토트넘 사령탑을 맡으면서 손흥민을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팀을 구해 낼 선봉장으로 낙점했던 콘테 감독으로선 더욱 뿌듯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손흥민의 뛰어난 몸놀림이었다.
콘테와 손흥민의 ‘찰떡궁합’, 토트넘 재건의 첫걸음
/ ⓒGettyimages
피테서와 벌인 UECL G조 4차전에서, 손흥민은 뜻깊으면서도 흥미로운 기록을 남겼다. ‘1호골 사나이’라는 별호가 걸맞을 만한 묘한 기록이었다.
손흥민은 2015년 분데스리가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프리미어리그(PL) 토트넘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번 시즌까지 7시즌을 치르는 동안, 사령탑은 네 번(라이언 메이슨 감독 대행 포함) 바뀌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조세 모리뉴→ 메이슨→ 누누 이스피리투 산투→ 콘테 순으로 개편된 체제 아래서, 손흥민은 시나브로 팀의 핵심적 존재로 진입해 갔다.
5명의 사령탑 가운데, 이미 토트넘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포체티노 감독과 메이슨 감독 대행을 뺀 나머지 3명의 감독과 손흥민은 공교로운 연(緣)으로 맺어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신임 감독의 토트넘 데뷔전에서 첫 골을 터뜨린 주인공은 다름 아닌 손흥민이었다. 모리뉴 감독에겐 2019년 11월 23일 2019-2020 PL 13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3:2승)에서, 산투 감독에겐 2021-2022 PL 개막 1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전(1:0)에서 각각 첫 골의 감격을 안긴 바 있다.
손흥민은 1호 골과 관련해 또 다른 진기한 기록도 남겼다. 2019년 4월 4일 문을 연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개장 1호 골을 PL 크리스털 팰리스전(2:0승)에서 기록한 선수도 손흥민이었다. 결정적 순간에 빛나는 손흥민의 ‘스타 본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손흥민이 토트넘 새 구장 개장 첫 골을 터뜨리는 장면 / ⓒGettyimages
병법에선, “선을 활용할 수 있는 자는 모든 것을 제대로 꿸 수 있다.”('병경백자')라고 한다. “먼저 소리를 질러 상대를 제압한다.”[先聲奪人(선성탈인)], “먼저 출발하여 제압한다.”[先發制人(선발제인)]라는 방략도 다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새로 출범한 콘테 체제에서, 손흥민은 첫 단추를 잘 끼었다. 부임 일성으로 “손흥민을 구심점으로 토트넘을 재건하겠다.”라고 확언한 콘테 감독을 흡족케 하며 가슴속 깊숙이 자리하는 데 작용할 멋진 활약과 첫 골 선물이었다.
첼시 지휘봉을 잡고 PL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2016-2017시즌 우승의 개가를 올린 콘테 감독은 3년 만에 다시 밟은 잉글랜드 마당에서 토트넘을 정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콘테의 남자’가 확실시되는 손흥민의 발끝에서 비롯될 듯싶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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