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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우] 2022홍천 전국 유소년 배구대회를 다녀와서

--윤봉우 배구

by econo0706 2022. 9. 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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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30

 

지난 18일 홍천에서 열린 ‘2022 홍천 전국 유소년 클럽 배구대회’를 다녀왔다.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홍천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는 내가 3개월 동안 배구 아카데미에서 지도한 학생들(초등학교 고학년)이 참석했다. 그동안 경기를 보고, 초중고 학생들이 어떻게 배구를 하는지 보러 다녔었다면, 이번 대회는 자식 같은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전한 경기라 각오가 남달랐다.

 

경기 출발 전에 아이들은 마치 수학여행을 가는 것처럼 마냥 신난 표정이었다.

 

홍천에 도착해 대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팀 선수들이 몸을 풀고 플레이하는 것을 보면서 긴장한 탓인지 얼굴 표정도, 자세도 조금씩 얼어붙었다. 

 

수원 중촌초 팀을 상대로 시작된 첫 경기. 결과는 보기 좋게 0:2로 패했다. 

석 달 동안, 여름 방학 중에도 구슬 땀 흘리며 대회를 준비했는데, 정작 코트에서 우리가 뛴 시간은 40분.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떨구며 경기장 바닥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렇게 아이들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 경기 중 작전타임 시간

 

솔직히 아이들의 생에 첫 대회니까 큰 기대는 안 했다.  

 

하지만 경기 결과보다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은 코트에서 발을 한 발짝 떼지도 못하고 마치 얼음이 된 것처럼 몸이 굳어서 그동안 자신들이 준비한 경기력을 조금도 펼쳐보지 못 한 것이었다.  

 

‘그래. 이렇게 큰 대회는 처음이니까. 얼마나 긴장되고 부담이 됐을까...’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각 학교의 5~6학년을 중심으로 구성된 학생들이 많았다. 우리 학생들은 이제 막 배구를 시작한 상황이라 대회 참가에 더 의미를 두고 경기를 준비했고, 큰 욕심은 없었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 대견하고 또 대견하다!

경기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라!

하지만 경기에 졌다고 고개 숙이지는 말아요!”

 

문득 내가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때는 나는 어떠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떠올려봤다. 생각해 보면 배구 코트에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긴장되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코트에서 긴장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됐다. 그래도 전문적인 엘리트 선수가 아닌데 경기에서 졌다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는 건 싫었다. 

 

▲ 서브가 날아오기 전에 바싹 긴장한 우리 아이들!~

 

잠시 고민을 했다. 다음날 바로 열리는 다음 경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리 학생들이 비록 엘리트 선수는 아니지만 이기는 재미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참가에 의의를 두고 온 대회였지만 아이들의 기를 살려줄 방법은 오직 승리뿐이었다. 

 

사실 유소년 클럽의 대회는 서브로 시작해서 서브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서브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나는 코치들과 다시 미팅을 했고, 아이들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자리도 이동하고, 서브 순서도 바꿨다. 그리고 어깨가 축 처진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쉬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숙소 문을 여는 순간 깨달았다. 

나의 깊은 고민은 ‘어른들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 단합은 역시 간식이지!라는 표정에 아이들^^

 

방 안에 모여 있는 아이들은 소속된 학교도 나이도 다 다르지만 형제들처럼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고, 마치 우리가 언제 경기에서 졌냐는 듯 너무나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이번 대회의 참가 목적을 다시 상기시켜줬다.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승리보다도 이런 대회에 참가하는 경험, 그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었던 내 처음 마음이 떠올랐다.

▲ 이런 집중력을 경기 때 보여줬어야 하는데, 너무나도 진지했던 아이들!~

 

저녁 식사 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리조트 안에 있는 오락실을 찾았다. 한 시간 가까이 오락실에서 신나게 게임을 한 아이들은 다시 배가 고파졌다며 아우성이었다. 

 

*

 

숙소로 돌아가 치킨과 피자를 배달시켰다.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야식을 먹는 아이들과 이른 아침부터 학생들 챙기랴, 게임 지도하랴, 얼굴에 피곤이 가득한 코치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상반됐다. 그래도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무얼 더 바라겠나. 

 

▲ 작전타임 중 경청을 하고 있는 아이들!~

 

다음날 이어진 두 번째 경기!

 

서울 두산초 팀을 상대로 시작된 경기는 2:0으로 값진 1승을 거뒀다. 겨우 한 경기 이겼는데, 팀 분위기는 마치 이번 대회 결승전 우승을 한 팀 같았다.

 

관람석에 있는 관중들도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이제 겨우 석 달 운동한 아이들이 이런 대규모 전국 대회에 출전해 1승을 거둔 다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

 

둘째 날 모든 경기가 끝나고 12강 조 추점에서 다음 경기 상대가 결정됐다. 그리고 맞이한 세 번째 경기!

 

우리 아이들은 다시 긴장했는지 얼음 모드가 됐고, 경기에서 0:2로 패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섰던 것일까? 1차전처럼 다시 발이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결국 이츠 발리는 1승 2패로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 경기에 패하고 나서의 아이들의 표정!~

 

이번 대회를 통해 아이들보다 나 스스로가 더 많은 것을 느꼈다.

 

아이들이 대회를 치르며 느꼈던 좌절과 희열을 바라보며 내가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중학교 2학년 때가 떠올랐다.

 

키만 컸지 배구 선수로서 모든 능력이 부족했던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야 첫 경기를 뛸 수 있었다. 그때는 코트에 서 있는 그 자체만으로 숨이 가쁘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몰랐다.

 

마음만 붕 떠있는 상태로 배구 선수 윤봉우는 첫 경기를 치렀다. 옆에 동료 선수가 큰 소리로 말을 해도 헤드셋을 쓰고 있는 것 마냥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던 내 배구 인생의 첫 경기와 당시 내 모습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지나갔다. 

 

▲ 체육관 전경

 

그 옛날, 내 첫 경기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도 대견하게 이번 대회를 잘 치렀다. 재미를 잃지 않고, 좋은 경험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아직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우승도, 대회에서 1등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유소년 대회에 출전한 일부 팀은 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등의 방식을 많이 따라 하는 팀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대회에 참가한 우리 아이들은 선수를 목표로 하는 엘리트 선수들이 아니기에 조금 더 배구를 알아가고, 즐겁게 배구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 kovo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열린 이번 대회.

 

한국배구연맹은 이 대회에 참 많은 공을 들였다. 100여 개의 팀과 선수들의 체제비를 지원하며 자라나는 배구 꿈나무에게 큰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참가 선수와 학부모들까지도 프로배구대회 못지않은 열정을 보여주었다.

 

비록 아마추어 유소년 선수들의 대회였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배구를 사랑하고 또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이야말로 한국 배구가 더 건강하게 성장하고, 더 큰 인기를 얻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표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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