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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21번째 선수 '보상선수'의 모든 것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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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03

 

전력을 가장 확실하게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당연히 외부에서 좋은 FA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FA는 공짜가 아니다. 새 선수에게 줘야 하는 몸값 외에도 감수해야 하는 출혈이 무척 크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보상선수’다. 

 

KBO 규약 제172조 ‘FA 획득에 따른 보상’ 조항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FA가 원 소속구단 이외의 다른 구단과 선수 계약을 했을 때, 원 소속구단은 선수를 데려간 구단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이적한 FA 선수의 그해 연봉 200%에 해당하는 보상금과 상대 구단 20인 보호선수 외 1명의 선수 계약을 양수하거나 연봉의 300%에 해당하는 금전 보상을 받는 것이다.

 

역대 FA 이적 선수와 보상 선수

2015년 삼성 배영수를 한화에서 영입했을 때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가야했던 정현석은 질병으로 인해 영입을 포기하고 현금으로 대체

▲ 역대 FA 이적 선수와 보상 선수 히스토리 / 출처 :  야맛드:티스토리

 

그러나 보상금만을 선택하는 팀은 거의 없다. 대부분 보상선수 지명을 통해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20인 보호선수와 보상선수에는 군 보류선수, 당해 연도 FA, 외국인선수, 당해 연도 FA 보상 이적선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보호하려는 구단과 더 좋은 선수를 데려가려는 양 구단의 눈치 싸움과 작전도 치열해진다. 이적한 보상선수가 의외의 ‘잭 팟’이 될 수도 있어서다. 


# 복을 불러온 보상 선수는 누가 있나 

FA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9년 이후, 지금까지 보상선수로 지명돼 유니폼을 바꿔 입은 선수는 총 32명이다. 2000년 해태 이강철과 LG 김동수가 나란히 삼성과 첫 FA 계약을 하면서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충식과 김상엽이 각각 해태와 LG의 지명을 받은 게 그 시작이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FA 홍현우가 해태에서 LG로 이적하면서 LG 소속이던 최익성이 보상선수로 팀을 옮겼고, 2002년에는 현대 출신 FA 박경완이 SK와 계약하면서 SK 조규제가 현대로 갔다. 이 외에도 많은 유망주들이나 베테랑들이 보상선수로 지목돼 팀을 옮겼다. 

보상선수로 지명됐다는 것은 원 소속팀이 보호전력으로 묶은 20명 안에 들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때문에 보상선수들의 상실감도 컸고, 이적 후 크게 성공한 사례도 많지 않다. 그러나 의외의 활약으로 팀을 웃게 만든 선수도 충분히 있다. 

두산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이원석이 대표적이다. 이원석은 2008년 롯데와 계약한 FA 홍성흔의 보상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내야수 전력이 풍성한 두산이었다. 이원석이 자리 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공수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전 선수로 성장했다. FA가 된 올해는 삼성과 4년 27억 원에 계약했다. 역대 보상선수 출신 FA 중 최고액 계약이다. 

 

▲ 한화 문동환은 역대 보상선수 가운데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힌다. / 연합뉴스


한화 문동환은 역대 보상선수 가운데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03년 롯데가 FA 정수근을 영입할 때 두산의 보상선수로 지명됐고, 곧바로 포수 채상병과 트레이드돼 한화로 건너갔다. 그는 이적 첫해인 2004년 부진했지만 2005년 10승, 2006년 16승을 각각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2006년에는 18승을 올린 ‘괴물 신인’ 류현진과 원투펀치를 이뤄 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힘을 보탰다. 보상선수 지명이 오히려 문동환에게는 마지막 불꽃을 태울 기회가 된 셈이다. 

최근에도 대박 조짐은 계속 보인다. LG 마무리 투수 임정우는 원래 SK 소속이었다. 2011년 말 FA 조인성의 보상선수로 팀을 옮겼다. 올해 마침내 소방수 자리까지 꿰차고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최종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려 당당히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LG로서는 전혀 밑질 게 없는 장사였다. 2011년 넥센에서 FA 이택근의 보상 선수로 데려온 윤지웅도 2014년부터 LG 좌완 불펜의 한 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올해 두 자릿수 홈런을 터트리며 거포 능력을 뽐낸 SK 최승준도 그렇다. 지난해 말 FA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LG에서 건너왔다. 이후 장타력에 물이 올랐다. 올해 한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을 터트리면서 역대 보상선수 이적 첫 시즌 최다 홈런(19개) 기록을 다시 썼다. 이전까지는 2004년 FA 진필중의 보상 선수로 뽑혀 LG에서 KIA로 팀을 옮긴 손지환이 이듬해 홈런 13개를 때려낸 게 최다 기록이었다. 시즌 후반 부상만 아니었다면 팀 성적에 더 보탬이 됐을 타자다. 미래가 밝다. 

KIA도 포수 한승택 때문에 웃고 있다. 2014년 FA 외야수 이용규를 한화로 보내면서 데려왔던 젊은 포수다. 당시 한승택은 군 입대를 앞둔 상황이었지만, 주전 포수 김상훈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미래를 내다본 선택을 했다. 결과적으로 KIA는 진짜 ‘미래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블로킹, 송구, 투수 리드 모두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 보상선수는 행운일까 비운일까 

‘보상선수’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선수도 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SK에서 방출된 투수 김승회가 그렇다. 김승회는 보상 선수로만 두 번 지명돼 두 차례 팀을 옮겼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는 두산 소속 선수였다. 그러다 2012년 말 롯데 홍성흔이 친정팀 두산과 다시 FA 계약을 맺을 때, 롯데의 지명을 받아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후 롯데 불펜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3년 뒤 다시 유니폼을 바꿔 입어야 했다. SK 출신 FA 윤길현이 롯데와 계약하자 SK는 보상선수로 김승회를 찍었다. 김승회는 남들이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보상선수 지명을 두 번이나 겪은 셈이다. 20인밖에 있는 선수들 가운데서는 늘 다른 팀들이 가장 탐낼 만한 선수였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반대로 두 번 모두 20인 보호선수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하다. 

 

그런 김승회는 올 시즌을 끝으로 마침내 FA 자격을 얻었다. 처음으로 보상선수가 아닌 계약 당사자로 ‘FA’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FA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올해 SK에서 이전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다. 문제는 SK가 김승회를 방출하면서 오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김승회는 ‘마당쇠’로 살아온 세월을 보상받지 못한 채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 프로 데뷔를 했던 두산 구단과 1억 원에 계약한 김승회. / 두산 베어스 구단 제공


그런가 하면 한화 안영명은 보상선수로 지명된 덕분(?)에 극적으로 친정팀에 돌아간 케이스다. 2009년까지 한화에서 뛰었던 FA 이범호는 1년간의 짧은 일본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2011년 초 KIA와 FA 계약을 맺었다. 보상은 원 소속구단이던 한화가 받게 됐다. 이때 한화가 지명한 보상선수가 바로 안영명이다. 안영명은 천안 북일고를 졸업하고 2004년 한화 1차 지명으로 입단한 투수. 팀 마운드의 리더가 될 재목으로 꾸준히 기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2010년 한화와 KIA의 3 대 3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팀을 떠났다. 한화가 장성호, 김경언, 이동현을 받고 안영명, 김다원, 박성호를 내주는 트레이드였다. 타선 보강이 급했던 한화는 베테랑 타자 장성호를 데려오기 위해 안영명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1년 만에 기회가 생기자 안영명을 되찾아왔다. 당시 한화 사령탑이던 한대화 감독은 “보내고 나서 가장 아쉬운 선수였는데, 다시 찾아오게 돼 기쁘다”고 했다. 

# 보상선수 제도의 그림자 

보상선수는 기본적으로 팀의 핵심 전력을 다른 팀에 빼앗긴 구단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가 준척급 FA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적을 절실하게 원하고 필요로 하는 선수들은 사실 현 소속팀에서 자리를 찾기 어려운 베테랑이나 백업 출신 FA들이다. 정작 이런 선수들은 보상선수에 대한 부담 탓에 팀을 옮기기가 어렵다. 

일단 그 선수들을 데려가려는 구단들 입장도 그렇다. 선수가 ‘재산’인 프로야구에서 구단들이 팀에 새 전력을 수혈할 수 있는 기회는 FA와 트레이드, 신인 지명, 2차 드래프트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특급 전력이 아닌 FA를 데려오기 위해 구단의 21번째, 22번째 선수를 희생하기에는 부담이 많이 따른다. 특히 선수층이 두꺼운 구단이라면, 데려오는 선수와 내주는 선수의 기량이 엇비슷할 가능성도 높다. 

올해 전력 보강이 절실한 kt의 경우도 그렇다. kt는 지난해까지 2년간 FA를 영입해도 보상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되는 신생팀 특혜를 누렸다. 지난해 말 넥센에서 FA가 된 유한준을 데려오고도 보상선수 출혈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시장부터는 그 특혜가 사라졌다. 특급 FA를 잡기에는 재정적 부담이 크고, 준척급 FA를 잡기에는 그동안 데려온 좋은 유망주들이 너무 많다. 손익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FA 등급제를 적용해 등급이 낮은 선수들은 조건 없이 이적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 FA관련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전 한화 선수 이도형이 향후 FA제도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실제로 예전에는 팀의 만류를 뿌리치고 FA를 신청했다가 ‘미아’가 된 선수들도 나왔다. 2011년 한화에서 FA를 선언한 투수 최영필과 포수 이도형이 그랬다. 둘 다 30대 후반의 나이이긴 했지만, 다른 팀에서도 충분히 현역 생활을 이어갈 만한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최영필은 5년이 지난 지금도 KIA에서 여전히 선수로 뛰고 있다. 

그러나 다른 팀에서는 보상선수 문제로 쉽사리 손을 내밀지 않았고, 한화는 구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FA 권리를 행사한 둘에게 괘씸죄를 적용했다. 결국 FA 마감 시한이던 1월 15일 오후 5시까지 둘은 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시즌을 KBO리그에서 뛸 수 없게 됐다. 

결국 이도형은 계약 불발 한 달 뒤 KBO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야구규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 FA 마감 시한까지 계약을 못할 경우 한 시즌을 뛸 수 없다는 조항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이도형의 손을 들어줬다. 그 결과 2013년부터는 마감 시한을 넘긴 FA 선수도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계약을 할 수 있게 됐다. 곧바로 경기도 뛸 수 있다. 다년 계약만 불가능할 뿐,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야 하는 위험 부담은 없어졌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2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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