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웃사이드 파크] 역대 포스트시즌 명장면 '수비편'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10. 4. 11:51

본문

2016. 10. 28

 

LG는 10월 24일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연장 11회말 양석환의 끝내기 안타로 이겼다. 그러나 양상문 LG 감독은 경기 후 “내 마음속 MVP는 안익훈”이라고 했다. 이유가 있다. 양석환의 끝내기 안타가 나오기 직전인 연장 11회초 수비에서 안익훈은 말 그대로 ‘슈퍼 캐치’를 해냈다. 연장 11회초 2사 1·2루서 우중간을 가르는 나성범의 2루타성 타구를 환상적인 러닝캐치로 잡아냈다.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뻔했던 위기를 무사히 막았다. 죽다 살아난 LG는 다음 공격에서 결승점을 뽑아내 이겼다. 
 

▲ 10월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 NC와 LG 경기에서 4회초 LG 오지환과 히메네스가 NC 나성범의 타구를 잡다 부딪혀 넘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이 경기는 양 팀 합쳐 25개의 4사구가 나온 졸전이었다. 수많은 주자가 베이스를 밟았지만, 최종 스코어는 2-1. 역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4사구 기록까지 경신했다. 그러나 안익훈의 호수비가 다 쓰러져가던 이 경기를 일으켜 세웠다.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팀에 승리까지 안겼다.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에서 수비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 번 일깨웠다. 

#가을 야구에서 느끼는 ‘슈퍼 캐치’의 미학

올해 포스트시즌은 정규시즌과 달리 유독 투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플레이오프까지, 매 경기 많은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수비의 뒷받침이 빛을 발했다. 일주일에 한 번 보기도 힘든 호수비가 연이어 쏟아졌다. 안익훈의 호수비가 나오기 불과 한 시간 전, 나성범도 한 차례 패배 위기에서 팀을 구했다. 1-1 동점이던 8회 2사 만루서 채은성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그렇게 위태롭던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지만, 결국 안익훈이 다시 호수비로 승기를 낚아챈 것이다. 

LG와 KIA가 맞붙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그랬다. 1차전에선 KIA 유격수 김선빈이 결정적인 다이빙캐치로 병살 플레이를 연결해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2차전에선 KIA 노수광이 0-0으로 맞선 8회 2사 1·3루서 양석환의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내 실점을 막았다. KIA 외야수 김호령은 9회 김용의의 큼직한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 끝내기 안타가 아닌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둔갑시켰다. 어차피 잡든 못 잡든 패배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상대가 실수할 수 있는 단 1%의 확률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투혼을 발휘한 것이다. 올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패한 KIA가 승리팀인 LG만큼이나 많은 박수와 조명을 받은 이유다. 

호수비는 사실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더 쉽게 잊히기도 한다. 안익훈의 ‘슈퍼 캐치’는 플레이오프 3차전 기록지에 나성범의 ‘우익수 플라이’로만 표기됐다. 기록의 가치가 그 어느 스포츠보다 중요한 야구에서 ‘기록은 진짜 보고 싶은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격언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국시리즈 삼중살의 짜릿함 

박진감 넘치는 다이빙 캐치나 러닝 캐치도 멋지지만, 손발이 척척 맞는 내야진의 더블 플레이도 짜릿한 희열을 안긴다. 심지어 아웃카운트 3개를 한꺼번에 잡아내는 플레이라면 더 그렇다. 하나의 타구로 세 명의 주자를 아웃시키는 삼중살.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단 두 차례만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2004년 현대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펼쳐졌다. 역대 유일하게 9차전까지 치렀던 혈전의 한복판이었다. 이미 8차전 개최가 결정됐던 상황. 삼성과 현대는 7차전 선발로 각각 전병호와 정민태를 내세웠다. 삼성은 1회초 박한이와 김종훈의 연속 안타로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이때 양준혁이 때린 타구가 현대 1루수 이숭용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단 타자 주자가 아웃되면서 원 아웃. 이숭용은 그대로 1루를 밟아 이미 2루로 출발했던 1루 주자 김종훈을 아웃시켰다. 투 아웃. 그리고 2루로 다시 송구했다. 이미 스타트를 끊었던 2루 주자 박한이가 미처 귀루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스리아웃이 됐다. 한국시리즈 사상 첫 트리플 플레이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삼성은 이 희귀한 삼중살 기록을 두 번 모두 당한 불운의 팀이었다. 2003년 SK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7회말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7회말 무사 1·3루 풀카운트에서 타자 김한수가 삼진을 당했고, 그 사이 1루 주자 양준혁이 2루로 스타트를 끊었다가 런다운에 걸려 아웃됐다. 이어 3루 주자 마해영도 그 틈을 타 홈으로 뛰어 들다가 역시 태그아웃됐다. 완벽한 작전 실패. 포스트시즌 사상 첫 삼중살이었다. 쫓기던 SK는 환호했고, 삼성은 불운에 고개를 숙였다. 

#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져… 

호수비는 스코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반면 실책은 실점으로 연결될 때가 많다. 그래서 야구팬들은 결정적인 호수비보다 치명적인 실책을 더 오래 기억한다. 이 때문에 매년 가을에는 영웅들만큼 많은 ‘엑스맨’들도 그라운드에 출몰한다. 한 시즌 내내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데 앞장선 선수가 한 순간의 실수로 고개를 숙이기 일쑤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부터 그랬다. OB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은 4-2로 앞서다 7회 동점을 허용한 뒤 계속된 2사 2·3루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김우열이 친 평범한 플라이를 투수 황규봉과 포수 이만수가 서로 잡으려다 충돌해 공을 떨어트렸다. 그 사이 3루주자 윤동균이 홈을 밟았다. 김이 샌 황규봉은 김유동에게 추가로 2타점 적시타까지 맞아 승기를 내줬다. 두산의 우승에 분수령이 된 경기였다. 

1990년 해태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천하의 선동열 카드마저 실책 앞에 무너졌다. 선동열은 일찌감치 몸을 풀다 0-0으로 맞선 5회 무사 2루서 이강철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는 타격감이 상승세였던 김용국이 서 있었다. 김용국은 볼카운트 1B-2S서 포수 머리 위로 뜨는 파울플라이성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이 공 역시 포수 장채근과 1루수 김성한이 서로 미루다 놓쳤다. 그렇게 아웃 위기를 넘긴 김용국은 바로 다음 공을 받아쳐 선제 결승 2점 홈런을 쳤다. 선동열의 몇 안 되는 포스트시즌 패배가 그렇게 나왔다. 

2014년 넥센과 삼성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2승 2패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넥센은 9회 1-0 리드를 지키기 위해 마무리 투수 손승락을 올렸다. 그러나 1사 후 나바로의 평범한 유격수 땅볼 타구를 현역 최고 유격수 강정호가 놓쳐 버렸다. 이 실책은 결국 넥센의 1-2 끝내기 패배로 이어졌다. 3승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뻔했던 넥센은 6차전에서 대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 단 세 번뿐인 끝내기 실책의 아픔 

물론 끝내기 실책은 이보다 더 뼈아프다. 역대 포스트시즌 끝내기 실책은 단 세 번 나왔다. 1998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최초였다. 두산 외국인 2루수 에드가 케세레스는 연장 10회말 1사 2루서 LG 김재현의 강한 2루수 땅볼 타구를 뒤로 빠트렸다. 팽팽하던 승부에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는 포스트시즌 첫 끝내기 실책이었다. 

두 번째 끝내기 실책도 두산에서 나왔다. 이번엔 아예 시리즈를 끝내는 실책이 됐다. 2012년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3-3으로 맞선 연장 10회말 1사 2루 홍성흔 타석 때 두산 투수 스캇 프록터의 3구째가 양의지의 미트를 맞고 뒤로 굴러 나갔다. 롯데 2루 주자 박준서가 3루까지 내달렸다. 공을 잡은 양의지는 박준서를 잡기 위해 3루로 공을 던졌다. 그러나 이 송구가 3루수 이원석의 글러브에 맞고 외야로 굴러갔다. 박준서는 홈까지 달려왔고, 결승점을 뽑았다. 

지난해 처음으로 도입된 와일드카드 결정전도 끝내기 실책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넥센과 SK가 4-4로 팽팽하게 맞선 연장 11회말 2사 만루. SK 구원투수 박정배는 넥센 윤석민을 유격수 플라이로 유도했다. 그러나 투수, 2루수, 유격수 가운데 누구도 이 공을 잡지 못했다. 결국 SK 유격수 김성현의 끝내기 실책으로 기록됐고, SK는 힘겹게 올라온 가을 잔치를 1경기 만에 마감했다. 

이들 못지않게 악몽 같은 하루를 보낸 선수들도 있다. 태평양 정진호(1989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두산 홍성흔(2000년 한국시리즈 2차전), 현대 박종호(2000년 한국시리즈 6차전), 두산 이대수(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 등은 한 경기에서 3개씩 실책을 범하는 지옥을 경험했다. 특히 이대수는 6회 한 이닝에만 3개의 타구를 모두 실책해 패닉에 빠졌다. 

한 이닝에만 실책 3개가 나와 무너졌던 팀들도 역대 7번이나 나왔다. 2001년 두산과 한화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선 한 경기에서만 양 팀 합계 실책 7개가 쏟아졌고, 두산의 전신 OB는 1987년 해태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무려 6개의 실책이 한 경기에서 나와 역대 한 경기 한 팀 최다 실책의 불명예를 안았다. 실책은 전염된다는 속설도 포스트시즌에는 특히 유효하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277호] 

 

느림보 박경완이 홈 파고들 줄이야…허를 찌른 베이스러닝

포스트시즌에서 수비만큼이나 경기 흐름을 한순간에 바꿔 놓을 수 있는 요소가 바로 베이스러닝이다. 빠른 발은 당연히 야구 선수의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꼭 발이 빨라야 도루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 상황을 읽는 센스와 두둑한 배짱을 갖췄다면, 충분히 느린 발로도 상대를 뒤흔들 수 있다. 

특히 홈스틸은 베이스러닝의 백미다. 상대 안방마님이 버티고 있는 적진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기 위해서는 치밀한 작전과 수행 능력이 필요하다. 주루사 하나가 경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포스트시즌에선 더욱 위험 부담이 크다.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단 두 번밖에 안 나왔을 정도로 성공 확률도 높지 않다. 

 

▲ 박경완

역대 최고의 포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박경완은 현대 시절이던 1998년 10월 27일 LG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뜻밖의 명장면을 만들었다. 당시 현대는 3-0으로 앞선 채 쐐기 득점을 노리는 중이었다. 4회 2사 1·3루서 딜레이드 더블스틸을 시도했다. 1루 주자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 공이 2루로 향하는 사이 3루 주자가 기습적으로 홈을 노리는 작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LG 포수 김동수는 1루 주자가 달려가는 2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그 틈에 3루에 있던 박경완이 홈으로 달려들었다. 발이 빠르지 않았던 박경완의 홈스틸 시도는 LG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다. 그러나 김동수의 2루 송구가 정확하지 않았던 탓에 이 득점은 홈스틸이 아닌, 상대 실책에 의한 득점으로 기록됐다. 

정식으로 기록된 역대 최초의 포스트시즌 홈스틸은 SK 김민재가 2013년 KIA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1회에 성공시켰다. 1회 2사 2·3루서 KIA 선발 김진우가 2루로 견제구를 던지는 사이 기습적으로 홈에 파고들었다. 첫 판의 첫 이닝에 선취점을 만들어내는 귀중한 기록. 확실한 기선 제압이었다. 

통산 최다 도루 선수인 현대 전준호는 이듬해인 2004년 10월 29일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 1회에 역대 두 번째이자 한국시리즈 첫 홈스틸 기록을 썼다. 그해 50도루를 돌파해 도루왕에 올랐던 전준호는 1사 1·3루서 상대 투수 전병호가 1루 견제구를 던지는 틈을 타 홈으로 몸을 날렸다. 역대 포스트시즌의 명장면 가운데서도 손에 꼽히는 홈스틸이었다. 이 경기가 끝내 무승부로 마무리된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홈런의 상징과도 같은 삼성 이승엽은 발로도 중요한 활약을 한 적이 있다. 1999년 10월 13일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었다. 삼성은 롯데 선발 주형광에 밀려 3회까지 1안타를 뽑는 데 그쳤다. 그런데 4회 타석에 선 이승엽이 주형광의 공에 뒷목 부분을 맞고 쓰러졌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큰 부상이 우려됐다. 

그러나 괴로워하던 이승엽은 응급조치를 받고 1루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다음 타자 찰스 스미스의 타석에서 갑자기 2루 도루를 감행했다. 이승엽은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다. 게다가 강한 사구까지 맞았으니 더욱 더 도루를 예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롯데 포수였던 강성우는 갑작스런 도루 시도에 당황해 2루에 악송구했다. 몸을 아끼지 않았던 이승엽의 도루는 결국 침묵하던 삼성 공격의 도화선이 됐다. 삼성은 그 이닝에 4점을 한꺼번에 뽑았고, 6-2로 이겼다. 

이들 외에도 화려한 발야구로 팬들을 즐겁게 한 팀들과 선수들이 많았다. 1992년 해태와 롯데의 플레이오프 5차전은 한 경기에서만 무려 8개의 도루가 쏟아졌다. 한 이닝에만 도루 3개를 해 상대의 혼을 쏙 빼놓은 팀들도 있다. 1987년 한국시리즈 2차전 1회의 해태, 1993년 플레이오프 5차전 3회의 삼성, 1997년 한국시리즈 3차전 3회와 2013년 플레이오프 3차전 1회의 LG다. 이뿐만 아니다. 해태는 1993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무려 7개의 도루를 해내 역대 포스트시즌 한 팀 한 경기 최다 도루 기록을 세웠다. 그해 도루 73개를 했던 신인 이종범이 3번이나 베이스를 훔쳐 7개 가운데 거의 절반을 책임졌다. 삼성은 해태보다 안타를 더 많이 치고도 해태의 발에 당했다. 작고한 삼성의 레전드 장효조는 1984년 롯데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5차전까지 모두 도루에 성공해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연속 경기 도루 기록을 남겼다. 7차전까지 이어진 승부에서 3승 4패로 패해 우승을 못한 게 아쉬움이었다. [은]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