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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수첩] 대표급 센터백의 '중국화', 이해하지만 아쉽다

--김현기 축구

by econo0706 2022. 10. 1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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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7. 19. 

 

16년 전인 2000년, 대학 수비수였던 박재홍은 대한축구협회 추천 선수로 벨기에 앤트워프 구단 입단테스트를 제의받았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경쟁력을 쌓으려면 공격수 못지 않게 수비수도 유럽에서 경쟁력을 길러야한다는 축구계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박재홍 이야기는 눈물겹다. 20여일 테스트를 받았는데 홀로 출국한 탓에 벨기에 현지에서 지하철을 잘못 탄 경우도 있었고 말이 통하질 않아 연습경기 때 감독 지시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여러 악조건 속에서 제대로 된 기량도 선보이지 못하고 돌아왔다.

 

2001년엔 부산에서 뛰던 수비수 심재원이 테스트를 거쳐 독일 2부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했다. 그는 이듬해 2002 월드컵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가 자진해서 캠프를 떠나는 불운을 맞았다. 하지만 그가 독일에서 쌓은 경험은 헛되지 않았다. 심재원은 그 때 “한국에선 체력적으로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는데 독일에선 그라운드가 질퍽하고 상대 선수들 체격도 커서 힘이 많이 든다. 언제 태클이 들어올 지도 모르고 공·수 간격도 상당히 좁다”고 밝혔다. 한국 최상위급 수비수가 독일 2부에 가서 받은 느낌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안정환 박지성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 등 한국 축구는 2000년대 들어 유럽파 스타플레이어들을 곧잘 배출했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 허전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무대에서 정상급 공격수들과 맞서 싸울 센터백들은 나타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박재홍 심재원 사례는 ‘센터백이 훌륭해야 한다’는, 축구계가 오래 전부터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에서 실점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제공=대한축구협회


그럼에도 중앙수비수 유럽행이 여의치 않다가 최근 한줄기 희망으로 등장한 이가 바로 홍정호였다. 2013년 제주를 떠나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한 홍정호는 빅리그 1부에 둥지를 튼 최초의 한국 중앙수비수가 됐고 지난 시즌엔 동료 부상 등을 틈타 선발로도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정규리그 23경기 2골). 완벽한 팀 내 주전으로 부를 순 없었지만 홍정호의 일취월장에 많은 축구팬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홍정호도 ‘세계축구 신 엘도라도’로 불리는 중국으로 이적했다. 이로써 중국에서 뛰는 대표급 센터백은 김영권 장현수 김주영 김기희에 이어 홍정호까지 무려 5명이나 됐다. K리그 클래식 서울로 돌아온 노장 곽태휘 빼고는 ‘슈틸리케호’ 수비수 자원들이 모두 중국에서 활약하게 된 것이다. 홍정호를 충분히 이해한다. 독일은 선수에 대한 가치 평가가 냉정한 곳이고 홍정호 역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처럼 두둑한 연봉을 받을 수 없었다. 이 때 중국에서 거액의 오퍼를 보냈다. 이탈리아 현역 대표팀 공격수도 돈에 끌려 중국으로 가는 판국에 홍정호의 선택을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축구 전체로 볼 때 수비수들 중국행 러시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중국에 걸출한 용병들이 몰려든다고 하지만 한 나라 프로축구는 결국 자국 선수들이 강해야 전체적인 수준도 높다고 생각한다. K리그가 계속된 위기 속에서도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는 배경은 국가대표나 외국인이 아니어도 수준이 고른 자국 선수들에 있을 것이다. 중국 구단들은 팀당 하나씩 갖고 있는 아시아쿼터에 한국 수비수들을 채우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한국 축구와 대표팀 경쟁력에 얼마나 플러스가 될 지 아직은 미지수다.

한국은 아시아를 넘어 월드컵 본선을 겨냥하는 팀이다. 또 공격보다 수비가 강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취약한 수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는 2년 전 브라질 월드컵이나 지난달 스페인과 평가전에서 잘 나타났다. 병역 혜택 혹은 면제 판정이라는 큰 이득을 취한 20대 전성기 수비수들에게 유럽 무대 도전을 주문하는 게 그렇게 무리일까. 일본 수비수들은 아직 중국 구단 소속 선수 없이 자국리그 아니면 유럽에서 뛰고 있다. ‘중국행 러시’가 2년 뒤 러시아 월드컵 본선 성적과 어떤 조화를 이룰 지 가늠할 수 없어서 하는 얘기다.

 

김현기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자료출처 :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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