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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우] 축구? 아니, 배구의 김민재!

--윤봉우 배구

by econo0706 2022. 11. 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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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는 현대적인 수비수다.

피지컬로 상대 공격수를 막아내고,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전술적 부분에서도 모두를 편안하게 하는 선수다. 김민재는 첫날부터 뛰어난 자질을 펼쳤다."

이탈리아 선수협회(AIC)에서 '10월의 선수'로 선정한 26살 나폴리의 축구선수 김민재(경남 통영 출신, 1m90cm) 얘기다. 지난 7월 처음으로 유럽 빅 리그에 입성한 대한민국 선수가 큰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올 시즌 KBS N 배구 해설위원을 맡으면서 도드람 2022-2023 V리그 전경기를 챙겨보고 있다. 현재 남자부는 대한항공이 1위를 달리고 있다. 대한항공의 순항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다. 하지만 매 경기 내 시선을 사로잡는 선수는 따로 있다. 프로 데뷔 2년 차 미들 블로커 김민재다.

 

김민재는 배구를 한지 이제 겨우 5년 정도밖에 안된 선수다. 분명 짧은 기간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배구 코트 한가운데 대못을 박듯 스파이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김민재 선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올 시즌 대한항공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론도 유독 김민재를 주목했다. 그래서 나는, 배구 해설위원의 시각으로 V리그 남자부 '10월의 선수'로 김민재를 꼽고 싶다.

 

▲ 김민재 선수(한국배구연맹 사진 제공)

 

19살 대한항공 점보스의 배구 선수 김민재(인천 출신, 1m96cm). 김민재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배구는 구력을 무시 못 하는 종목인데 김민재는 짧은 배구 경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21~2022시즌 V리그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에 대한항공에 입단해 프로 데뷔 2년 차. 프로에 첫 발을 내디딜 당시만 하더라도 김민재는 유망주의 이미지가 더 컸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이번 시즌 유력한 우승 후보팀의 주전 미들 블로커로 당당히 활약하고 있다.

 

낭중지추

 

김민재 선수가 시즌 초반 배구인들에게 자신을 확실히 각인시킨 것은 '몬스터 블로킹'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꼽자면 못을 박는 듯한 '속공'일 것이다.

 

하나씩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서 블로킹부터 살펴보면 김민재는 기본적으로 높이가 되는 선수이다. 신장 1m96cm로 미들 블로커치곤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점프가 좋다. 여기에 체공력까지 좋아 공중에 머무르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미들 블로커에게 체공력은 공중에서 상대와 볼을 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게 하고, 더 많은 오버 블로킹을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손 모양이다. 많은 배구인들이 미들 블로커에게 "손 모양이 이쁘다"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예쁜 손 모양이란 11자 모양이 네트에 얼마나 가지런히 오버가 되느냐인데 김민재는 올라가는 과정과 손 모양이 아주 좋다.

 

▲ 김민재 선수의 블로킹 장면(한국배구연맹 사진 제공)

 

다음은 리딩 능력이다.

 

많은 미들 블로커들이 힘들어하는 바로 것이 바로 리딩 능력이다.

 

리딩 능력 개선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위치 선정과 이동 스피드, 상대 세팅에 맞는 타이밍 등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김민재는 구력이 짧아 여러 상황에 대한 경험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대한항공 동료들과의 훈련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대한항공은 다른 팀보다 플레이가 빠르다. 이로 인해 동료들과의 반복된 훈련만으로도 스텝과 시야 개선에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김민재의 장점은 이러한 블로킹의 움직임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가끔 역방향으로 속거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습들이 나올 때도 있기는 하지만 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5년밖에 안된 선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로 놀라운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김민재의 장기 - 속공

 

속공은 높이와 각도, 얼마나 빠르게 히팅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도움닫기와 중심의 이동, 스윙의 궤적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스텝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김민재는 볼이 없는 움직임도 좋은 선수란 뜻이다.

 

배구 중계를 하다가 김민재의 경기 장면을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공격할 때 네트 위로 쭉! 올라오는 가벼운 몸놀림과 빠른 스윙, 그리고 넓은 공격 각도까지, 정말 이제 겨우 프로 2년 차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아직은 상대 블로커의 습성과 빈 공간을 만드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이 또한 더 많은 경험을 쌓다 보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명확한 김민재 선수는 지금의 속공 능력 만으로도 많은 배구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 유광우 선수, 한선수 선수

 

'김민재'라는 미들 블로커를 키운 8할은?

 

미들 블로커 포지션이 좋은 세터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마치 성장 속도에 불을 붙인 것처럼 무섭게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다. 지금의 김민재를 키운 8할은 누구일까? 아마 현역 최고의 베테랑 세터들인 한 선수, 유광우 선수 일 것이다.

 

나도 선수 시절엔 미들 블로커 윤봉우를 키운 세터가 있었다.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최태웅, 권영민 감독이 있었다. 영민이 형은 나와 입단 동기로 14년을 같이 한 팀에서 지냈다. 소위 ‘지지고 볶았다’고 할 정도로 티키타카가 많았다. 훈련 중에 둘의 콤비가 맞지 않으면, 훈련이 끝난 뒤 식사 시간 직전까지 '하나만 더 '를 외치며, 콤비를 맞췄고, 때로는 형에게 혼나기도 하고, 때로는 대들기도 하면서 눈빛만 봐도 영민이 형이 어떻게 공을 때려달라는 것인지 알아갔다.

 

미들 블로커와 세터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콤비를 맞추는 사이다.

 

영민이 형과의 에피소드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나는 것이 있다. 한 번은 백 A 퀵을 맞추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영민이 형이 늦게 뜬다고 계속 꾸지람을 주었다. 내 딴에는 빨리 뜬다고 해서 계속 뜨는데, 계속해서 지적을 하길래 '에라!~ 모르겠다.'하고 공보다 먼저 떠서 스윙도 번개처럼 했다.

 

그 순간! 공은 멋있게 코트에 빵!! 하고 꽂았지만 내 스윙은 멈추질 않았고, 내 손목 마지막 스냅은 형의 머리 꿀밤을 주고 말았다. 꿀밤의 강도가 내 힘이 100% 실려 있었기 때문에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 당시 형에게는 '미안해요!'라는 말과 함께 훈련이 끝났지만, 속으로는 '이게 번개 속공이지!'라며 흐뭇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 시간 속에 영민이 형은 나에게 조금이라도 공을 잘 주려고, 난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때리려고 했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 그 시기가 보면 배구에 욕심을 많이 냈던 시절이었다.

 

 

▲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한국전력 권영민 감독 (한국배구연맹 사진 제공)

 

그리고 만난 태웅이 형. 내 나이 29살에 형을 만났다. 그때는 선수로서 자신감이 넘쳐 있을 시절이었다. 그전까지 삼성화재라는 팀의 핵심 멤버였던 형이 우리 팀(현대캐피탈)으로 온 순간 나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태웅이 형은 늘 이렇게 말했다.

 

"공격 코스를 잡아갈 때 왜 이렇게 잡아가야 하는지!

이런 타이밍에 세터는 어떤 느낌인지! 상대 미들 블로커는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 봐라.

어떤 상황에 대해 전체적인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조각을 연구한다."

 

태웅이 형의 말을 들으면서 같이 운동하는 동료들! 다른 팀 선수들의 생각이 궁금해졌고, 가득이나 호기심이 많던 나에게 기름을 붓는 듯했다. 그전에도 상대팀에 대한 영상을 많이 보던 시절이었지만, 이때부터는 내가 했던 훈련 영상을 더 많이 찾아봤다.

 

그리고 내가 했던 움직임이나 상황 속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렇게 움직였지?'하고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가 봐도 어이없는 동작이 나오면 다음날 다시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안 되는 것들을 찾아갔다. 스텝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도 이 시기였던 것 같다. 내가 했던 것들이 정답이 아니라고 느끼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였다.

 

당시 나는 태웅이 형에게 참 많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형은 세터의 입장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마치 아는 것을 공유할 때 더 배가된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 주는 선배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당대 최고의 세터들과 좋은 시절을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김민재 선수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최고의 세터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미들 블로커들에게는 그 어떤 보약보다 좋은 약이 될 것이다.

 

▲  한선수 선수가 김민재 선수에게 농담 중인 사진

 

'후배' 김민재를 위한 '선배' 윤봉우의 조언

 

나는 김민재와 같은 포지션으로 배구를 오래 했고, 지금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며 배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런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김민재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 물론 내 말이 100% 정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김민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좋은 마인드와 습관' 과 '소통 능력(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평정심'이다.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갑자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소위 ‘붕 뜬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흔히 '어깨 뽕'이 들어갔다고 표현하는데, 여기에 팀 성적까지 좋은 지금은 모든 것에 자신감이 높아지고, 적극적인 자세일 수밖에 없다.

 

신체적인 조건은 나이가 어린 만큼 앞으로 훈련과 경기를 하면서 더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인드’다. '내가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예전과 달리, 각 팀에 전력분석관이 있기 때문에 상대 분석과 관련한 것을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움직임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료를 유심히 보다 보면 본인의 습관도 파악할 수 있다. 상대 세터와 리시브 상황, 세팅 위치에 따라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영상을 보는 습관이 생기면 자연스레 행동으로 이어지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훈련과정에서 시도를 해봐야 한다. 어떤 동작과 타이밍 본인에게 더 잘 맞는지를 찾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하나씩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더 넓은 시야가 생길 것이다. 코트 안에서 내 움직임만 보이는 게 아니라 함께 뛰는 동료의 움직임을 보게 된다. 여기서 내 생각과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면 자연스레 서로 생각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서로 생각의 합을 맞춰가야 한다.

 

이것이 코트 안에서 만들어지는 커뮤니케이션, 바로 소통 능력이다. 실제로 많은 대화가 오간다는 건 그만큼 집중력이 높아져 있는 상태라는 걸 의미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가 바뀐다. 그리고 평정심이 생긴다. 아직은 어린 나이라 평정심의 뜻을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구를 한 날보다 앞으로 해야 할 날이 훨씬 많이 남은 김민재 선수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평정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 경기가 끝난 뒤 밝은 미소를 짓은 김민재 선수

 

프로선수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은 ‘내가 배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고 볼 수 있다. 선수가 돋보여야 할 곳은 코트 안이다. 많은 팬에게 보다 멋진 배구를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트 외부에서의 우월감을 느끼려 하는 순간 김민재의 성장은 멈추게 될 것이고, 그냥 반짝하다 잊히는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국 배구계가 주목했던 수많은 유망주들이 평정심의 중요성을 깨우치지 못해 배구팬의 시야에서 멀어진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김민재에게 더욱 평정심을 강조하고 싶다.

 

김민재는 치열한 프로의 세계에 이제 막 첫 발을 뗐다. 100m를 빠르게 달리는 스프린트보다는 한 걸음씩 걸어가더라도 배구 선수로서 자신이 걸어나갈 길에 진한 발자국을 오랫동안 남기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데표

 

자료출처 : 네이바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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