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포츠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탁구 (5)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2. 11. 12. 20:35

본문

2017. 03. 06. 

 

1979년 체육계의 큰 숙제 가운데 하나는 4월 25일부터 5월 6일까지 평양에서 열릴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문제였다. 대회를 눈앞에 둔 2월 20일 북 측 김유순 체육지도위원장과 김득준 탁구협회 회장은 평양방송으로 이 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만들어 참가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2월 27일 쌍방 탁구협회 대표들이 판문점에서 만날 것을 제의해 왔다.

 

이에 따라 남북 양측은 2월 27일부터 3월 12일까지 4차례 회의를 가졌으나 북 측이 단일 팀 구성보다는 한국 대표 팀의 출전을 저지하려는 저의를 드러내 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북 측은 제2차 회담에서 단일 팀 구성에 대한 알맹이 없는 제안을 내놓은 뒤 단일 팀 구성에 실패할 경우 한국 선수단의 대회 출전을 보장하라는 남 측의 요구를 묵살한 채 제4차 회담에서 “제2차 회담에서 제시한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대한탁구협회의 대회 참가 기득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엉뚱한 주장을 펴 회담을 결렬시키고 그 책임을 남 측에 전가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결국 한국 선수단의 대회 출전에 대한 북 측의 확답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 대한탁구협회는 국제탁구연맹을 거쳐 평양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탁구는 여전히 ‘만리장성’의 벽이 높았다. 안해숙과 윤경미, 양영자가 나선 여자 단체전 풀 리그에서 한국은 일본을 게임 스코어 3-1로 잡았으나 중국에 게임 스코어 1-3으로 져 은메달에 그쳤고 남자 복식에서는 김완-김기택 조가 일본의 오노 세이지-아베 히로뉴키 조에게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남자 단체전과 여자 복식의 윤경미-양영자 조, 혼합복식의 윤길중-윤경미 조는 동메달을 차지했다.

 

▲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중국의 후이준을 꺾고 우승한 유남규가 환호하고 있다. / ⓒ대한체육회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탁구는 한국-중국 라이벌전의 하이라이트였다. 한국과 중국은 탁구 7개 세부 종목 가운데 각각 3개, 4개씩 금메달을 나눠 가졌다. 두 나라가 전체 세부 종목에 걸린 26개 메달 가운데 제 3국에 내준 메달은 6개의 동메달뿐이었다.

 

한국은 4강이 겨루는 남자 단체전 결승 리그에서 일본과 홍콩을 각각 게임 스코어 5-2로 꺾고 강호 중국과 금메달을 놓고 맞붙었다. 각각 3명의 선수가 나서 돌아 가면서 경기를 치러 9단식으로 승패를 가르는 당시 단체전 방식에서 한국은 4-4로 맞선 9번 단식에서 안재형이 후이준을 세트스코어 2-1로 꺾어 4시간 30분이 넘는 격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안재형은 5번 단식에서 당시 세계선수권자인 장자량을 세트스코어 2-0으로 잡는 등 혼자 3승을 올려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한국은 3개국이 벌인 여자 단체전 결승 리그에서 일본을 게임 스코어 3-0, 중국을 게임 스코어 3-1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유남규는 남자 단식에서 후이준을 누르고 금메달을 추가했다.

 

한편 안재형과 이 대회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중국의 자오즈민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10월 두 나라가 아직 미수교인 상태에서 결혼에 성공해 한국과 중국의 스포츠 교류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6편에 계속>

 

신명철 편집국장

 

스포티비뉴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