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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야구선수 키우기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3. 2. 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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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20

 

도리 휴즈는 1987년 어느 날, 아기를 데리고 부엌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채 돌이 되지 않은 아기는 나무 숟가락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엄마 도리 휴즈는 실험을 하기로 했다. 콩을 던져주면 우리 아기가 나무 숟가락으로 칠 수 있을까.

 

휙! 비록 나무 숟가락에 콩이었지만 ‘타구’는 총알같이 날아갔다. 엄마는 그때 깨달았다. 우리 아기는 자라서 분명히 야구 선수가 되겠구나. 아기는 타자가 되지는 못했다. 대신 최고 명문팀의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나무 숟가락으로 콩을 때려냈던 아기는 뉴욕 양키스의 투수 필 휴즈로 성장했다.

 

야구 선수는 물만 주면 자라나는 양파 싹처럼 거저 생겨나지 않는다. 도리 휴즈는 콩을 던져줬을 뿐이지만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캐치볼을 해줘야 했다. 물론 아빠 필 휴즈 시니어의 몫이었지만.

 

‘괴물투수’ 한화 류현진도 거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아버지 류재천씨의 뒷바라지는 지극 정성이었다. 어린이 류현진은 주말이면 야구장에 가자고 아버지를 졸랐다. 아버지는 “한창 최루탄이 터지던 시절이었는데도 야구장만 간다면 좋아했다. 덕분에 눈물 콧물깨나 흘렸다”고 했다.

 

야구를 시작한 뒤에는 훈련할 수 있는 야구공이 모자랐다.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넉넉지도 않던 살림. 류재천씨는 인천 도원 구장을 찾았다. 가서 관중석의 할아버지들을 졸랐다. 그들이 잡은 파울볼 1개씩에 2000원씩 쳐 줬다. 그 공을 모아서 닦고, 꿰맸고, 쪼그려 앉아 아들을 위해 배팅볼을 토스했다.

 

골프연습장을 찾아가 버리는 골프공을 얻어오기도 했다. 작은 공으로 훈련을 하면 정확한 타격능력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었다. KIA가 2년전 캠프 때 했던 골프공 훈련은, 이미 류현진이 거쳐간 뒤였다.

 

아들이 고2 때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류씨는 “세상이 다 끝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부상을 발견하지 못한 단골병원 로비에서 소동을 피웠다. 이 소동 때문에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류현진의 아버지가 건달이라 계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아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됐지만 여전히 어린 자식일 뿐이다. 류재천씨는 아들이 선발로 나선 모든 경기를 직접 지켜봤다. “그래도 여전히 떨린다”는 건, 분명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이다.

 

KIA 한기주가 선발투수이던 데뷔 첫 해 시절 얘기다. 아버지 한영준씨는 내야 지정석에 앉아서 아들의 선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타를 계속 맞자, 주변에서 욕이 나왔다. “저게 10억원짜리 투수냐.” 아버지는 말없이 자리를 일반석으로 옮겼다. 욕은 더 심해졌다. 그렇게 외야석까지 밀려갔다. 속이 상했지만 대거리를 할 수도, 아들의 경기를 안 볼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야구장을 빠져나왔고, 야구장이 보이는 외야 뒤편 아파트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 복도에 서서 조용히 아들을 응원했다. 이 또한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이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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