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2. 23
전국 최고의 농구 고수들이 모여있는 세계 KBL무림은 현재 ‘십대문파(十大門派)’로 구성되어 움직이고 있다. 매년 비무대회(比武大會)를 통해 최종 우승 문파를 가리는데 사실상 그 순간을 위해 많은 고수들이 피나는 수련을 쌓고 각종 진법 연구에 몰두한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최종대회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고수는 두고두고 무림사에 기록되어 회자되고있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농황(籠皇)’ 허재가 있다. 그는 ‘부산마차(釜山馬車)’에서의 마지막 해에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내부에서의 갈등으로 다른 문파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전에 비무대회 우승을 안겨주고 떠나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던지라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매섭게 ‘전주검문(全州劍門)’을 몰아붙였다.
‘용병의 난’등이 겹쳐 준우승에 그치고말았지만 허재의 활약은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 그 자체였다. 원거리에서는 궁으로, 거리가 좁혀졌다싶으면 검을 휘두르며 전방위로 무위를 뽐냈다. 나이를 넘어선 노장의 맹활약에 수비좋기로 소문난 ‘무음강자(無音強者)’ 추승균은 물론 용병으로 들어온 ‘흑전차(黑戰車)’ 조니 맥도웰마저 쩔쩔맸다.
허재는 검으로서 전주검문의 쟁쟁한 검사들을 압도했고 궁으로는 ‘궁왕(弓王)’ 조성원에게도 밀리지않았다. 미친듯한 활약상에 많은 무림인들은 ‘궁귀검신(弓鬼劍神)’의 현신이다며 극찬을 했고 우승을 못했음에도 그해 최고의 고수로 선정되었다. 허재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온전히 그해를 지배했다고 인정받기위해서는 눈으로 보이는 강렬함 외에 기록에서도 모두를 인정시켜야 한다. 아무래도 수비보다는 공격에 능한 고수가 더 인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예외도 있다. 공격력은 무림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상대 핵심 고수를 꽁꽁 묶어놓는 명품수비와 승부의 흐름을 읽어내는 노련미가 돋보였던 인물, ‘수비로는 무림사에 남을 영웅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깨버린 독특한 유형의 절대고수! ‘인삼파(人蔘派)’의 돌격대장이자 정신적 지주로 꼽히는 ‘무록자(無錄者)’ 양희종(38‧194cm)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무림은 기록의 세계다. 누가 어떤 무기를 잘다뤘고 어떤 무공에 능했다는 것부터 상대 문파와의 전적과 각종 수상 관련까지…, 여러 가지 각종 기록은 훗날 고수와 문파를 평가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런점에서 양희종은 특이한 고수로 불리고 있다. 다른 유명 문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세에서 밀렸던 인삼파를 명문의 반열에 오른 일등공신중 한명이지만 정작 눈에 띄는 기록은 적기 때문이다.
고수, 문파 등에 대한 기록을 담당하는 사관(史官)들은 양희종편을 쓸때면 깜짝놀라기 일쑤다. 무림에 알려진 명성에 비해 기록할 내용이 별반 없기 때문이다. 외려 한수 아래로 평가받는 다른 인물들이 쓸것이 훨씬 많은 경우가 다반사다. ‘00대첩에서는 양희종만 보였다’고 할만큼 존재감이 엄청날 때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는 이의 눈에도 경기를 지배한 고수중 한명이었지만 기록지에 옮기려면 허전하다. 무록자라는 별호가 붙은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양희종은 처음부터 그러한 유형의 고수는 아니었다. 독수리군단에서 후기지수로 활약할때만 해도 모든 병기를 잘다루고 공격시에도 선봉에 서는 다재다능함이 빛났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인삼파에서 수비수 등 궂은일 위주로 역할을 맡았는데 너무 잘해냈던 관계로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양희종의 수비는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보법(步法), 경공술(輕功術)등에 두루 능하고 무엇보다 상대를 놓치지않겠다는 투지와 집착이 대단한지라 다양한 움직임을 가져가는 상대에 대해 전천후로 대응이 가능했다. 궁신탄영(弓身彈影)이나 초상비(草上飛)를 쓰는 돌파의 달인을 끝까지 쫒아가서 앞을 막아서는가하면 능파미보(凌波迷步), 답설무흔(踏雪無痕)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수비수를 농락하는 보법의 달인들에게도 쉽게 속지않았다. 자신보다 큰 상대들이 힘으로 밀고들어오면 천근추(千斤墜)로 버티어내고 다양한 쾌검(快劍)이 눈앞으로 날아들어도 두려워하지않고 막아내고 달려들었다.
귀공자같은 외모와 달리 궂은 일도 망설이지않았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면 바닥을 굴러다니는 뇌려타곤(懶驢陀坤)도 서슴치않고 구사했다. 혼자 막아내기 힘든 상대나 상황에 대해서는 팔괘풍운진(八卦風雲陣), 건곤미리진(乾坤迷籬陣) 등 진법의 중심에서 수비를 진두지휘하는 역량까지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충돌이 일어난 관계로 ‘지나치게 거칠다’, ‘상대에 대한 도발이 과하다’등의 논란도 일으켰지만 인삼파 입장에서만 보면 이보다 더 든든하고 믿음직한 살림꾼은 찾기 힘들었다. 장로부터 사형제들까지 모두가 신뢰하는 대들보같은 존재로 타문파에서도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역 시절 내내 화려함을 버리고 수비나 궂은일을 통해 방패 역할을 수행해준 모습은 두고두고 귀감이 될 일이기 때문이었다.
올해 비무대전이 시작되기전 전대 장문인과 간판 궁수가 함께 타문파로 이적했음에도 인삼파가 변함없는 선두 질주를 하고 있는데는 양희종이라는 노송이 버티고있는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다. 긴 장문인 생활에 비해 업적이 아쉽다는 혹평을 받고있던 ‘이동유도탄(移動誘導彈)’ 김상식 신임 장문인도 양희종을 중심으로 잘 만들어진 인삼파에서 명장의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얼마전 양희종은 올해 비무대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지만 문파가 한창 활황세일때 홀가분하게 무복을 벗기로 결정했다. 인삼파 제자들은 물론 많은 강호인들은 17년간 무림을 호령한 살아있는 전설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그가 위대한 무림인이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양희종이 자신의 마지막 비무대전을 우승으로 장식하고 무림을 은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감독님, 양희종은 어떤 선수였나요?”
안양 KGC 황금기 중심에 항상 서 있었던 남자 양희종. 그는 2022-23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 첫 통합우승을 이끈 살아있는 역사의 마지막에 반가운 두 사람이 메시지를 전했다.
이상범 전 DB 감독과 김승기 캐롯 감독은 한때 양희종과 함께 KGC를 KBL 정상으로 이끈 주인공들이다. 이 감독은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 김 감독은 첫 통합우승을 이룬 기억이 있다.
▲ 이상범 전 DB 감독은 양희종과 함께 KGC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 사진=KBL 제공
이 감독은 양희종이 신인이었던 2007-08시즌부터 함께 했다. 처음에는 코치와 선수 관계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감독대행-선수, 그리고 양희종의 군 전역 후에는 감독-선수로 점점 발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2011-12시즌, 이 감독과 양희종은 ‘동부산성’ 원주 동부를 꺾고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루며 최고의 순간을 누렸다.
이 감독은 “(양)희종이는 ‘굉장히 좋은 선수’다. 농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다. 근데 좋은 선수, 훌륭한 선수들은 많지 않다”며 “‘굉장히 좋은 선수’라는 건 농구도 잘하면서 모범이 될 수 있고 또 팀을 잘 끌고 갈 수 있는 선수를 의미한다. 그런 선수가 있는 팀은 결국 우승하게 되더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처음 우승했을 때를 돌아보면 우리 선수들이 정말 어렸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화려하다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신인이거나 군 전역 후 갓 복귀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하나로 뭉쳤던 건 은희석, 김성철과 같은 베테랑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희종이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바라봤다.
2016-17시즌 첫 통합우승, 2020-21시즌 ‘퍼펙트 10’ 전승 우승을 함께한 김 감독 역시 양희종에 대해선 극찬만 가득했다. 그는 “희종이는 내게 있어 아주 특별한 선수라고 볼 수 있다. 10년 가까이 지내면서 우승을 2번이나 했다”며 “같이 지낸 시간 동안 좋은 일,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이 모두 있었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다. 기회가 된다면 은퇴식 때 찾아가 꽃다발이라도 주고 싶다. 그만큼 희종이는 특별한 존재”라고 말했다.
▲ 김승기 캐롯 감독은 양희종과 KGC의 창단 첫 통합우승, 그리고 무패 우승을 함께했다. / 사진=KBL 제공
2010년대부터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던 KGC. 그들이 긴 시간 동안 패배보다 승리에 더 어울렸던 이유는 뛰어난 선수들이 꾸준히 팀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수들을 하나로 묶고 또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비와 허슬을 도맡은 양희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이 감독과 김 감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감독은 “희종이와 같은 스타일의 선수는 꾸준히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한국농구도 발전할 수 있다. 팀의 활력소가 되는 선수가 바로 희종이다. 뒤에서 묵묵히 수비하면서 선수들이 흐트러지지 않게 커뮤니케이션을 꾸준히 하는 것.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희종이가 있기에 화려한 농구가 더 화려해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희종이는 많은 지도자와 함께하면서 얻은 경험이 엄청난 선수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을 때 가장 잘 빛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문)성곤이가 그 길을 걷고 있지 않나(웃음)”라며 “(희종이는)중요한 순간에 공격이나 수비 포인트를 잡아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선수는 정말 찾기 힘들다”고 밝혔다.
한편 이 감독과 김 감독은 곧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할 양희종에게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먼저 이 감독은 “은퇴 후에 지도자 과정을 밟는 것인가?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 물론 아쉽다. 내 제자였던 선수가 은퇴한다는 건 감정적으로 조금 그렇다. 그래도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 아니겠나.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과정을 잘 밟아서 좋은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희종이는 정말 많은 경험을 했고 또 잘 배웠다.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다. KGC에 있었을 때 특정 시기가 오면 감독이 될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꼭 도와주고 싶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잘 배운 선수였고 자질도 충분했다. 은퇴 소식에 조금 놀랐지만 지도자가 되어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100% 확신한다”고 웃음 지었다.
“존경하는 (양)희종이 형, 제2의 인생 응원합니다.”
안양 KGC 양희종은 22일 2022-23시즌을 끝으로 15년 프로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의 은퇴 소식에 하승진은 21년 우정을 가득 담은 메시지를 전하며 새로운 인생을 응원했다.
양희종과 하승진은 21년 전인 2002년, 삼일상고를 전국 최강으로 이끈 공포의 듀오였다. 전국대회 4관왕은 물론 22연승 행진을 달리며 한국농구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 KGC 양희종은 22일 2022-23시즌을 끝으로 15년의 프로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의 은퇴 소식에 하승진은 21년 우정을 가득 담은 메시지를 전하며 새로운 인생을 응원했다. / 사진=KBL 제공
그들의 우정은 연세대, 그리고 국가대표팀까지 이어졌다. 하승진이 NBA로 떠나며 잠시 이별한 시간도 있었지만 2008 KBL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기 전 양희종의 프로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찾는 등 각별한 사이임을 증명했다.
각자 KGC, KCC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서 뜨거운 맞대결을 펼치기도 한 양희종과 하승진이다. 그러나 올스타전에서는 같은 유니폼을 입고 멋진 호흡을 자랑했다.
‘형’ 양희종보다 먼저 은퇴를 결정,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동생’ 하승진. 그는 몸이 떠나 있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양희종과의 우정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뜨거웠다.
하승진은 MK스포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희종이 형이 은퇴한다는 소식을 지금 들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따로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다음은 하승진이 양희종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존경하는 우리 희종이 형. 은퇴하신다니 형하고 함께 했던 수많은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군요.
성치 않은 몸 상태에서도 항상 몸을 던지며 투혼을 불사르던 형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다니 아쉽습니다.
긴 시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2의 인생도 응원하겠습니다! 양희종 파이팅!
김종수 / 칼럼니스트 oetet@naver.com
+ 민준구 기자 MK스포츠(kingmjg@maekyung.com
점프볼 + MK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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