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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우리의 소소하지만 큰 행복, 보상 휴가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3. 2.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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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2. 20

 

아우크스부르크전이 끝난 후, 감독님이 우리에게 3일 휴가를 쿨하게 쏘셨다. 라커룸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방금 승리한 것처럼 환호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없던 힘이 다시 생기는 기분이었다.

나는 독일의 고향과도 같은 함부르크로 떠났다. 그곳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웃으며 푹 쉬었다.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선물한 보 스벤손 감독님께도 감사했다. 시즌 중간에 주어지는 짤막한 휴가는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값지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런 보상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선수들에게 휴가는 절대적으로 소중하다. 몸을 쓰는 직업인만큼, 몸을 푹 쉬게 해주는 기간이 꼭 필요하다. 공식적인 휴가 기간은 이렇다. 대부분 유럽 리그 시즌은 7월 말이나 8월 초에 시작해서 5월 중순 혹은 말에 끝난다. 이 기간에 분데스리가 선수들에게는 두 차례 휴가가 주어진다. 새 시즌 시작 전에 4주 정도 받고, 12월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10일에서 2주 정도 휴가를 받는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4주 휴가 기간에 A매치가 있으면 추가로 2주 휴가를 더 받는다. 프리미어리그는 겨울 휴식기 없이 박싱데이를 소화한다. 생각만 해도 벅찬 일정이다.

거기에 덧붙여, 시즌 중간중간 받는 휴가가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전이 끝나고 받은 3일 휴가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보상 휴가라고 부른다.

사실 이번 보상 휴가는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시즌 후반기 첫 경기인 슈투트가르트전을 준비하며 코치진이 선수들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5경기를 치르는 동안 승점 8점을 따면 3일 휴가를 준다고 했다. 8점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선수들끼리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슈투트가르트, 도르트문트, 보훔, 우니온 베를린, 아우크스부르크를 만난다. 아우크스부르크와 보훔전은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럼 6점이다. 도르트문트와 우니온은 힘든 상대다. 둘 중 하나라도 비겨서 1점을 얻는다면 비교적 안전하게 8점을 얻을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전에서도 이길 거로 자신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슈투트전에서 비기고 말았다. 3점을 얻어야 할 경기에서 1점을 얻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도르트문트전에서도 1점을 얻을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홈에서 다행히 보훔을 잡아 4점이 됐다. 이제부터는 절대 져서는 안 된다. 우니온전이 중요해졌다. 우리는 0-1로 지고 있다가 극적으로 1-1까지 만들었다. 다들 ‘됐다!’고 생각했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도 이대로만 끝나면 된다며 기뻐했다. 그러다 결국 실점하고 말았다. 1점도 얻지 못했다. 팀 분위기는 급격하게 다운됐다.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 이겨도 7점이다. 휴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아우크스부르크 경기 전날. 코치진이 주장단을 따로 불러 미팅을 했다. 우린 모두 내심 기대했다. 혹시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휴가를 주겠다는 협상을 하려나? 그게 아니었다. 왜 요즘 이렇게 후반전 막판에 실점하는지,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미팅이었다. 지금 우리가 강등권 위험이 있으니 아우크스부르크전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단다.

휴가는 없구나.

선수들은 모두 마음을 비우고 아우크스부르크전에 임했다. 내가 두 골을 넣으며 팀이 오랜만에 크게 이겼다. 승리를 자축한 후 라커룸에 들어갔다. 그때 감독님이 깜짝 발표를 했다. 3일 휴가를 줄 테니 푹 쉬고, 수요일 오후에 훈련장에 모이자고 말이다. 선수들은 물을 뿌리며 환호했다. 감독님은 진정하라며 웃으셨다. “오늘 너희가 보여준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우린 이런 축구를 해야 한다. 우리의 축구를 잘 보여준 것에 대한 보상이다”라고 하셨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당장 다음 주 일요일(19일)에 경기가 있는데 3일씩 휴가를 주신다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다. 우리를 제대로 ’들었다 놨다‘하셨다.

그런 게 감독님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선수들을 이해하는 것. 만약 휴가를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였겠지만 내심 속상했을 거다. 그걸 감독님이 잘 알고, 3일 휴가를 주셨다. 평소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며 우리를 잘 파악하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감독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선수들과의 교감. 한 팀에 25명에서 30명 정도의 선수가 있다. 선수들은 각자 처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는 늘 동기부여가 되어있고, 누군가는 축 늘어져 있다. 한 팀으로 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감독 한 명이 모든 선수를 다 관리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전북현대 시절, 최강희 감독님도 선수 개개인을 세심히 살피셨다. 당시 나는 정말 많은 경기를 소화하느라 시즌 중에는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주중 경기가 없는 날에만 주말 경기 후 하루 외박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내가 너무 지쳐버렸다.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가 됐다. 최강희 감독님은 내게 집에 가서 쉬고 오라고 하셨다. 선수단 중 나만 유일하게 휴가를 받았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고향 울산에 돌아가 축구를 잠시 내려두고 푹 쉬었다. 팀에 복귀하자 거짓말처럼 제 컨디션을 되찾았다. 만약 감독님이 나의 상태를 모르시고, 계속 경기를 뛰게 하셨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힘들다. 혹은 국가대표 경기 일정이 겹쳤더라면…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버렸을 거다.

 

▲ A매치 휴식기는 내게 다시 증명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 경우가 정말 있다. 보상 휴가를 받고도 국가대표 경기에 가야 해서 활용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혹은 A매치 휴식기. 이 기간에는 국가대표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자리인지 매번 느낀다. 말이 휴식기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휴식이 아니다. 국가대표로 차출되지 않은 선수들이 쉬면서 체력을 회복할 동안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먼 길을 떠나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두 경기를 치른다. 그냥 두 경기도 아니고 우리 국민들이 지켜보는 경기다. 엄청난 부담감 속에 경기를 치른다.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러고 독일로 돌아오면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다. 완전히 지친 상태다. 바로 그 주 주말부터 리그 경기가 시작된다. 자연스레 나는 벤치에서 시작한다. 독일에서 내게 매 경기는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소중하다. 그렇게 한 경기를 놓치면 정말 속상하다. 그럴 때면 쉰 선수들에 대한 부러운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뒤섞여 밀려온다. 그들은 푹 쉬었고, 다시 정상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한다. 나를 대신해 뛴 선수가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면 내가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국가대표는 영광스러운 자리이지만 소속팀에만 집중하는 선수들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짊어져야 하는 숙명인 것 같다. 그러니 참 어렵고 힘든 자리다.

그렇다면 보상 휴가는 선수들에게 ‘무조건’ 좋은 걸까?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내가 기회를 잘 받지 못하는 선수라면 보상 휴가 기간에 온전하게 쉬지 못했을 거다. 아니, 쉬어서는 안 된다. 훈련을 통해 몸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남들이 쉴 때 같이 쉬어버리면 난 계속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쉬지 않고 개별 운동을 해야 한다. 안 뛴 선수들은 뛴 선수들에 비해 체력이 충분히 남아있다. 그만큼의 운동량을 채우지 못하면 오히려 안 좋다. 몸이 더 무거워질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지난 슈투트가르트전이 그랬다. 교체로 출전해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 못했다. 팀 일정을 보니 일요일에 회복훈련을 하고 월요일에 쉰다고 하더라. 나는 당장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월요일에 쉰다니. 결국 혼자 조깅을 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했다. 다른 선수들처럼 그냥 쉬어버리면 안 된다. 예전에 똑같이 쉬었다가 몸이 풀어진 경험이 있어 이제는 노하우가 생겼다.

간단하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 내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고, 내 상황에 맞춰 휴식과 운동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 함부르크에서 지하철을 타고 여행했다

최근에 쉰 3일 휴가도 그렇게 활용했다. 주중, 주말 경기를 계속 뛰어서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든 상태였다. 정신적으로도 재충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한 함부르크로 떠나 푹 쉬었다. 덕분에 아주 맑아진 정신으로 수요일 오후 훈련에 임했다. 동료들의 안색도 좋아 보였다. 물론 여기저기 놀러 다니다 와서 조금 피곤한 기색은 있었다. 하지만 훈련을 잘 소화했고, 감독님도 휴가 후 첫 훈련인데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가끔 휴가를 다녀오고 확 풀어져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감독님은 그런 걸 진짜 싫어하신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다음부터 휴가가 없을 테니 선수들도 스스로 잘 관리한 것 같다.

그 덕분일까? 이번에 또 다섯 경기에서 7점을 받으면 3일 휴가를 주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번엔 1점을 줄여주셨다. 쉽지 않은 점수란 걸 아신 것 같다. 이 칼럼을 마무리 짓는 일요일 밤, 우린 레버쿠젠에서 극적으로 3점을 땄다.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 4점이 남았다. 모두 함께 꿀맛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뛰어야겠다. 어떻게 우리가 매주 순위만 보고 뛰겠나. 이런 ‘소확행’ 같은 선물이 있는 덕분에 더 재밌게 뛸 수 있는 것 같다.

▲ 이영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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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볍고 즐겁게 휴가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글을 쓰며 보상 휴가는 제게 휴식을 위한 휴식이 아닌 축구를 위한 휴식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쉬지 않고 안주하지 않겠다는 저의 의지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몸소 느끼는 요즘입니다. 감사함을 잊지 않고, 지금처럼 기쁜 소식을 꾸준히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멀리서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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