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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농구 (8)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3. 3. 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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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4. 03

 

1963년부터 1973년까지 10년 동안 9차례 대회를 치른 박정희장군배쟁탈동남아여자농구대회는 한국과 일본, 자유중국(오늘날의 대만)의 단일팀이 출전한 대회였지만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국제 대회인데다 한일 라이벌 의식과 한국은행과 상업은행, 제일은행, 조흥은행 등 국내 금융권 팀들의 경쟁으로 아시아 여자 농구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1972년 대회는 당시 복잡한 동북아시아 외교 문제로 유산됐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나라인데 대회 이름에 동남아가 들어간 게 특이하다. 그 무렵 아시아경기대회가 자카르타(1962년, 인도네시아), 방콕(1966년 1970년, 태국) 등지에서 열리고 지역 친선 축구 대회인 메르데카배와 킹스컵이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방콕 등지에서 개최되는 등 동남아시아가 아시아 스포츠의 중심이 되고 있었던 상황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대회가 열리는 장충체육관은 대회마다 연일 만원 관중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여자 농구 전성기였다.

 

▲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한 선수들이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 참석했다. 맨 오른쪽이 박신자 / ⓒ한국 농구 100년

 

이런 가운데 상업은행 단일팀이 1964년 4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제 4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 8위를 기록했다. 상업은행은 그 무렵 슈퍼스타 박신자를 영입한데 이어 한국은행과 치열한 라이벌전을 펼치며 경기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13개 나라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당시 여자 농구 세계 최강 소련이 우승한 가운데 체코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가 2, 3위를 차지했고 미국은 4위, 일본은 9위에 그쳤다.

 

1953년 제 1회 대회가 열린 이후 한국과 일본은 처음으로 이 대회에 출전했는데 이에 앞서 북한은 1959년 소련에서 벌어진 제 3회 대회에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나섰지만 소련에 24-89로 지는 등 7전 전패로 출전 8개국 가운데 꼴찌를 했다. 북한은 이 대회가 2016년 현재 처음이자 마지막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출전이다.한국은 조별 리그에서 아르헨티나를 87-58로 꺾었으나 체코슬로바키아에 연장 접전 끝에 72-77, 유고슬라비아에 57-60으로 져 8~13위 결정전으로 밀려난 뒤 파라과이를 73-49, 일본을 70-61, 칠레를 68-45, 아르헨티나를 82-59로 물리쳤다.박신자와 김명자, 나정선, 신항대 등으로 이뤄진 상업은행은 대회를 마친 뒤 브라질과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에서 친선경기를 가지며 한국전쟁으로만 알려져 있던 ‘꼬레아’의 이미지를 새롭게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수준이던 때 일이다.제 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는 1967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렸다. 직전 대회에 상업은행 단일팀이 출전해 준우승국인 체코슬로바키아에 연장 접전 끝에 지는 등 가능성을 확인한 한국은 이 대회에는 박신자와 김명자, 신항대, 김추자, 주희봉, 채현애 등 당시 국내 여자 농구의 중심인 상업은행과 제일은행, 국민은행의 우수 선수를 모두 모아 명실상부한 국가 대표팀을 꾸렸다. 미 수교국이자 사회주의 국가에서 열리는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종목이 여자 농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한 선수들의 환영 카퍼레이드. 서울시청 앞을 지나가고 있다. / ⓒ한국 농구 100년

 

한국은 조별 리그 B조에서 이탈리아를 76-56, 개최국 체코슬로바키아를 67-66으로 누르고 조 1위로 6개국이 겨루는 결승 리그에 올랐다. 결승 리그에서는 소련에만 50-83으로 졌을 뿐 동독을 64-59, 일본을 81-60, 유고슬라비아를 78-71로 꺾고 준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박신자는 준우승팀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혀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1959년 서독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제 2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은메달에 이어 한국 스포츠 사상 두 번째로 단체 종목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을 차지해 농구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농구 올드 팬들은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선수단이 김포국제공항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카퍼레이드를 한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 대회에 이어 8월 도쿄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여자 농구에서 한국은 프랑스와 일본을 가볍게 제치고 우승했다. 소련 등 동유럽 나라들이 북한의 호칭 문제 등 대회 운영에 불만을 품고 출전을 거부해 반쪽 대회가 되긴 했지만 한국 여자 농구가 거둔 세계 규모 대회 첫 우승이었다.


이듬해인 1968년 7월 대만에서 열린 제 2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 서울에서 열린 제1회 대회에 이어 2연속 우승하는 등 그 무렵 한국 여자 농구는 아시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9편에 계속>

 

신명철 편집국장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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