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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바이에른전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3. 4. 2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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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4. 24

 

우리가 바이에른 뮌헨에 세 골을 넣고 이길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0-1로 지던 와중에 3-1로 역전승을 거뒀다. 바이에른을 잡으며 우리는 10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세웠다. 놀라운 주말이다. 지지 않는 DNA가 팀에 생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선발로 나서서 승리에 기여할 수 있어 더욱더 기뻤다. 지난 세 경기 연속 교체 멤버로 나오다가 바이에른을 상대로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정말 간절하고 치열하게 경기에 임했다.

선발 기회는 내게 너무나 소중하다. 수많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지만 선발은 여전히 당연하지 않다. 특별하다. 이번 바이에른전이 끝난 후 선발과 교체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이미 연차가 많이 쌓였지만 매주 마음 졸이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기뻐한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것들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공유하려 한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

 

3월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한국에 가서 오랜만에 대표팀 동료들도 만나고, 새 감독님과 인사를 나눴다. 월드컵 기간에 우리를 뜨겁게 응원한 분들 앞에서 신나게 공을 찼다. 다시 벅찬 에너지를 안고 마인츠로 돌아왔다. 바로 그 주 주말에 라이프치히 원정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라이프치히 원정은 워낙 까다로워 승리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라이프치히전에 기억이 좋아 항상 자신 있지만, 대표팀에 다녀오면 나는 늘 교체로 출전한다. 장거리 이동과 경기 소화로 다른 동료 선수들보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리그 경기를 준비할 시간도 거의 없다. 이번 라이프치히전도 팀 훈련에는 딱 하루 참여했다. 교체로 나서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고, 그런 배려를 해주는 감독님께도 감사하다. 하지만 가슴 속 저편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아쉬움이 든다. 내게는 한 경기 한 경기가 모두 소중하다. 경기를 앞둔 내게 체력과 컨디션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선발로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나는 예외없이 벤치에 앉았다.

내 자리에 선발로 선 동료가 좋은 활약을 펼치면 기분이 좋은 한편 불안하다. 기회는 지금 잘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가 활약하면 또 한 번 기회를 받을 거고, 나는 기회를 잃는다. 내겐 안타까운 상황으로 돌아온다. 사람 마음이란 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라이프치히전에서 나의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우리는 라이프치히에 3-0으로 대승을 거뒀다. A매치 휴식기 이후 첫 경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대가 라이프치히였기에 그 임팩트는 엄청났다. 바로 다음 경기인 베르더 브레멘전에서도 같은 선발 라인업이 꾸려졌다. 나는 후반전에 교체로 출전했다. 분위기를 바꾸는 활약을 했다. 만족스러운 경기력이었다. 다음 경기인 쾰른전을 준비하며 몸도 가벼웠다. 훈련 성과가 괜찮았다. 쾰른전에서 선발로 나설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경기 당일. 호텔에서 경기장으로 출발하기 전 전체 팀미팅을 했다. 그 자리에서 감독님이 선발 라인업을 알려주셨다. 내 이름이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미팅이 끝나고 선수들이 모두 일어나 나가는데, 감독님이 나를 부르셨다. 따로 남으라더라. 감독님은 내게 이번 라인업에서 나를 제외하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하셨다. 후반전에 뛸 테니 준비를 잘하라고 덧붙이셨다. 사실 감독의 입장에서 안 해도 될 말이지만, 그 짧은 말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나를 생각해 주신다는 거니까. 하지만 기분이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다. 경기장으로 이동하고, 몸을 풀고, 경기를 준비하는 내내 마인드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났을 수도 있다. 3경기 연속 교체라니. 이번 쾰른전은 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바이에른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훈련을 통해 내가 선발로 뛰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쾰른전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못 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집어삼켰다. 쾰른전을 준비할 때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몸이 무거웠다. 좋은 플레이도 안 나왔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너무 긴장하고 신경 쓰다 보니 오히려 훈련 성과가 좋지 않았다. 이번 바이에른전도 힘들겠구나.

경기 전날이 되었다. 우리 팀은 호텔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때 코치님이 내게 오시더니, 내일 선발로 무조건 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하라고 하셨다. 깜짝 놀랐다. 보통 선발 라인업은 경기 당일에 나오는데, 전날 내게 개인적으로 알려주셨다. 내가 잔뜩 풀 죽고 기분이 다운된 게 보였나 보다. 그때 직감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무조건 잘해야 한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경기는 5개. 바이에른전에서 나의 퍼포먼스가 앞으로 나의 향방을 정할 것이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또 기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이에른전을 준비했다. 바이에른은 내가 선발로 뛰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상대다. 감독님은 선발로 나서는 선수들을 모아두고 “너희가 오늘 선발로 나서는 이유를 증명해라. 너희로 인해 못 뛰는 벤치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라”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최근에 느낀 게 많았기에, 그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곧 나를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경기는 솔직히 진짜 힘들었다. 팀 자체로는 흐름이 좋았다. 한 번도 10경기 무패를 해본 적이 없는데, 바이에른전에서 그 기록에 도전하게 됐다. 우리 선수들도 요즘 계속 지지 않는 경기를 해서 자신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힘든 경기였다. 올 시즌 경기 중 가장 어려웠다. 여기서 내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남은 경기에서 못 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다 걸고 뛰었다. 비록 쥐가 빨리 올라오긴 했지만, 후회가 남지 않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보람찼다. 한 주간 훈련 성과는 좋지 않았으나 진심을 다했고, 의지와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게 이번 경기에서 잘 나왔다. 경기장에 찾아온 한국 팬분들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어서 더 기뻤다. 내 덕에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지 팬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보고 정말 벅차올랐다. 그저 다음 경기에 또 뛰기 위해, 감독님에게 증명하기 위해, 나를 위해 뛰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함께 행복해한다니. 경기 내내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자만은 금물이다. 다음 경기, 그다음 경기에도 선발로 나선다는 보장은 절대 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정도다. 이전처럼 불확실한 마음을 갖고 처절하게 준비하기보다, 한층 자신감을 갖고 준비할 수 있다. 이미 보여준 모습이 있으니 나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 모습을 또 보여줄 수 있다고 훈련을 통해 증명하면 되니까. 만약 자만하고 훈련에서 조금이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금세 벤치로 밀려난다. 선발로 매주 나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늘 선발로 뛴다는 확신이 있으니 안심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아니다. 나를 대신해 뛸 선수는 얼마든지 많다. 그들을 뛰어넘어 내가 선발인 이유를 매 경기 증명해야 하니 부담감과 책임감이 더 크다. 팀의 기대와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경기를 대비하는 과정은 교체 멤버보다 한결 수월하다. 교체 멤버 입장에서는 기회를 잡기 위해 훈련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지만, 선발 멤버는 경기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한다. 그런 점에서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여유롭다고 표현할 수 있다.

선발을 예상하며 경기를 준비하다가 뜻밖에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올 시즌 후반기에 그런 경험을 몇 차례 했다. 특히 최근 쾰른전을 준비하면서 사실 선발로 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레멘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훈련 중에도 스스로 만족할 만한 퍼포먼스를 보였다. 선발로 나설 준비가 됐다고 느꼈다. 하지만 경기 당일, 선발 명단에 나의 이름은 없었다. 감독님의 결정을 언제나 존중하지만 이런 경우에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당혹스럽고, 마인드 컨트롤이 쉽게 되지 않는다. ‘내가 왜 선발로 뛰지 못하지?’, ‘도대체 왜일까?’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부정적인 생각에 휘말린다. 이럴 때 극복하는 특별한 방법은, 안타깝게도, 없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다. 한번 정해진 선발 명단은 바뀌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결정은 오로지 감독님의 권한이다. 얼른 잊고, 다시 나의 시간이 주어지게끔 만드는 수밖에 없다. 인정하지 않고 불만을 품으면 나만 괴롭다.

​나는 선수 생활을 하며 교체보다는 선발로 뛴 날이 더 많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고려대학교와 전북현대, 홀슈타인 킬에서 늘 주전 멤버에 속했다. 그러다 보니 교체 멤버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인츠에서 교체 멤버의 입장이 되어보며,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 선발로 나서는 선수들도 노력을 많이 하지만 교체멤버들이 겪는 어려움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기회를 얻고자 매 순간 모든 것을 걸고 노력한다. 매일 하는 훈련이 곧 전쟁터다.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되면 체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많으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체력이 선발 선수들보다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후끈 달아오른 경기장 분위기를 곧바로 따라잡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밖에서 열심히 몸을 풀어도 경기 속도를 따라갈 만큼은 아니다. 교체로 투입된 후 초반 몇분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그 숨을 한 번 넘겨야만 경기에 적응할 수 있다. 적응하고 나면 에너지가 생겨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거기서 경기의 흐름까지 바꾼다면 기쁨은 훨씬 더 크다. 그게 바로 교체 멤버에게 바라는 모습 아닌가. 지고 있거나 비기고 있을 때 상황을 역전시키거나 이기고 있을 때 그 분위기를 유지해 주는 것. 그 임무를 완료해야 교체로 나선 후에도 웃을 수 있다. 전반기 아우크스부르크전과 후반기 브레멘전이 내게 그랬다. 미션 수행 완료.

​선발이든 교체든 힘들지 않은 위치가 없다. 각자 임무가 확실하고, 중요하다. 그렇다고 교체 멤버 자리에 만족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선발 라인업에 내 이름이 올라갔을 때의 기분은 그 무엇보다 짜릿하다. 내가 지난 한 주간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순간이다. 나의 노력이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일주일 중 가장 기쁜 순간이다. 나를 위해 경기장에 찾아온 팬들, 시간대가 다른 나라에서 TV로 응원하는 팬들이 선발 라인업에서 내 이름을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들이 나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 것에 보답할 순간이다.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순간. 꼭 경험해봐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20분이 아닌 60분, 70분, 그리고 90분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설레고 신나는가. 이렇게 멋진 경기장에서 말이다. 축구가 좋아 축구선수가 되었으니 선발이 간절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설령 지금 교체 멤버의 위치에 있다면, 기회는 반드시 오니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라고 전하고 싶다.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선발이든 교체든 기회가 왔을 때 좋은 활약을 보여줘야 한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은 게 중요하다.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훈련에 매진하다 보면 기회는 오게 되어있다. 잘 견디고 버텨야 한다.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 생각은 최대한 적게 하고, 주어진 상황과 운동에만 집중하면 마인드컨트롤은 자연스럽게 잘 된다.

이번에 쾰른전을 준비하며 내가 생각해도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나의 판단이다. 내가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감독님의 입장에선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선발 라인업에서 내 이름이 빠져 실망하고 힘들어한 건 어쩌면 나의 오만이 낳은 결과일 지도 모른다. 바이에른전도 마찬가지. 훈련 성과가 별로였다고 생각했지만, 감독님은 또 다르게 보셨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뛰어서는 안 될 상태라고 판단했다. 감독님은 내가 뛸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셨다. 그런 거다. 스스로 판단하는 걸 조심해야 한다. 그게 마인드컨트롤을 방해한다. 내 발목을 잡아버린다. 확신을 갖고 나 스스로를 평가하는 걸 주의해야 한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훈련에 매진하고, 푹 쉬고, 감독님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프로 선수의 생활을 오래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일, 매주, 매 시즌 이런 과정을 경험한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가능한 연차가 됐지만 막상 그 일이 닥치면 똑같이 힘들다. 끝이 없는 싸움이다. 앞으로 내가 몇 년이나 더 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번 주에도 선발 기회를 위해 싸울 거다. 선발 명단에 오르면 날아갈 듯이 기뻐할 테고, 교체 명단에 오르면 좌절하겠지만 다시 기회를 얻기 위해 마음을 다잡을 거다. 다음 시즌에도 똑같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축구이고 내가 선택한 길이다. 바이에른전에서 몸은 잔뜩 지쳤지만 행복하게 경기장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그런 커리어를 완성하고 싶다. 웃으면서 후회 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뛸 것이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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