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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魂의 母音] 탁상시계(卓床時計) 이야기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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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경우, 서투르고 서먹한 분위기와는 달리 속으로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지구상에는 36억인가 하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데, 지금 그 중의 한 사람을 만난 ㄱ서이다. 그러니까 36억대 1이라는 아슬아슬한 비율로 그를 만난 것이다. 우선 만났다는 그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하늘 밑, 똑같은 언어와 풍속 안에 살면서도 서로가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인간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설사 나를 해롭게 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는 그만큼의 인연이 있어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와 마주친 것일까. 불교적인 표현을 빈다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다가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물건과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탁상에는 내 생활을 거동케 하는 국적 불명의 시계가 하나 있다. 그놈을 보고 있으면 물건과 사람 사이의 인연도 정말 기구하구나 싶어진다.
 
지난해 가을, 새벽 예불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큰법당 예불을 마치고 판전(板展)을 거쳐 내려오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돌아와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다. 도(盜)선생이 다녀간 것이다. 평소에 잠그지 않는 버릇이라 그는 무사통과였다. 살펴보니 평소에 필요한 물건들만 골라 갔다. 내게 소용된 것이 그에게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져간 것보다 남긴 것이 많앗다. 내게 잃어버릴 물건이 있었다는 것이, 남들이 보고 탐심을 낼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부끄러웠다.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게 마련이라 생각하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빚이라도 갚고 난 것같은 홀가분한 기분이다.
 
그런데 그는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가 싶어 있는 것 없는 것을 샅샅이 뒤져놓았다. 잃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애석하지 않았는데, 흐트려놓고 간 옷가지를 하나하나 제자리에 챙기자니 새삼스레 인간사가 서글퍼지려고 했다.
 
당장에 아쉬운 것은 다른 것보다도 탁상에 있어야 할 시계였다. 도선생이 다녀간 며칠 후 시계를 사러나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을 허름한 것으로 구해야겠다고 작정, 청계천에 있는 어떤 시계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 허허 이거 어찌된 일인가. 며칠 전 일어버린 우리 방 시계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웬사내와 주인이 목하(目下) 흥정 중이었던 것이다. 
 
나를 보자 사내는 슬쩍 외면해버렸다.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못지 않게 나도 당황했다. 결국 그 사내에게 돈 천원을 주고 내 시계를 내가 사고 말았다. 내가 무슨 자선가라고 그를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어슷비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인데. 뜻밖에 다시 만난 시계와의 인연이 우선 고마왔고, 내 마음을 내가 돌이켰을 뿐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기보다, 흐트러지는 나를 내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1972년 2월 4일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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