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靈魂의 母音] 부재중(不在中)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20:11

본문

-靑潭스님의 入寂에 붙여
 
법정스님스님!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스님이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초겨울 안개가 자욱한 강을 건너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스님의 집무실 앞에는 '不在中'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건에도 외출 중일 때 더러 붙어 있던 그 표지가 오늘 아침에는 윤나히도 뚜렷한 윤곽을 지니고 이마에 선뜻 다가서는 것이었습니다.
 
안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가사장삼을 입으신 채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셔야 할 스님의 모습음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정말 부재중이구나 싶었습니다.
 
종연생(從緣生) 종연멸(從緣滅), 인연따라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해 가는 것은 하나의 우주 질서. 생사와 열반이 지난밤 꿈결과 같다는 경전의 구절도 익히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불의(不意)에 가신 스님을 보고야 그 말들이 절절하게 실감되고 있는 오늘입니다.
 
물론 스님께서는 어디 가신 것이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내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노상 입버릇처럼 하시던 신념의 소리, 우리는 그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집과 같은 것, 집이 낡으면 허물고 새집을 짓듯이 70편생 살아온 집을 미련없이 버린 스님은 이제 어디에 새집을 마련하시겠습니까?
 
언젠가 스님은 신도들 앞에서 말씀하십디다.
 
"청정한 신도집에 태어나 내생에도 출가하여 중이 되겠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말씀도 가까운 시봉들에게 하셨습니다.
 
"니가 내생에는 내 스님이 될지 모르는데 좀 똑똑해봐."
 
우리는 믿습니다. 스님의 그 강인한 집념과 대비원력(大悲願力)을. 금생에 못다한 불사(佛事)는 이 다음 생에 가서 이룰 거라고.
 
스님은 평생을 두고 두 길만을 걸었습니다. 하나는 교단정화(敎團淨化)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중생교화(衆生敎化)의 길입니다. 두 가지 길이 모두 끝이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이제는 얼마쯤 자리잡혀지는가 했더니 스님은 그 길 위에서 문득 떠나신 것입니다.
 
자나깨나 교단정화 일을 걱정하고 모색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총무원 수위자리라도 기꺼이 맡겠다고 피맺힌 호소를 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교화를 위해서는 중고등학생들 모임에까지도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대사회적인 기능을 역설, 그 처소도 가리지 않고 몸소 뛰어들었습니다. 인간이 부재중인 현대의 병든 문명권에서 자기회복에 대한 스님의 사자후(獅子吼)는 청중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진 채 오래오래 메아리칠 것입니다.
 
스님!
 
며칠 전 바깥 모임에서 스님을 뵈옸을 때 하시던 그 말씀이 아직도 제 귓전에는 생생하게 묻어 있습니다.
 
"일 잘돼? 약 좀 먹지, 안색이 안 좋은데"
 
그러면서 성전(聖典) 원고가 다 되면 한번 보여달라시던 말씀, 귀로(歸路)에는 차를 태워 강 건너까지 보내주시던 그 별리(別離)의 정이 오히려 저를 슬프게 합니다.
 
스님!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그 뜻을 알면서도 빈 공간이 마른 바람소리로 들립니다. 부재중(不在中)! 그것은 비단 스님의 방 만이 아닙니다. 오늘의 한국불교 자체가 때로는 부재중입니다.  
 
부재(不在)의 표지를 떼어버리려고 한결같이 골몰하면시던 스님은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비탄(悲歎)이 아니라 그 뜻을 받들어 화합(和合) 정진(精進)하는 일입니다. 스님과 함께 우리들이 죽지 않으려면 그 길밖에 없습니다. 호념(護念)해 주옵소서.
 
1971년 11월 18일
 
法頂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