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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수첩] 지도자 이광종이 증명한 '감독 DNA'

--김현기 축구

by econo0706 2022. 11. 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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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9. 28

 

한국에서 축구 감독으로 대성하는 빠른 길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현역 시절 이름값을 가장 먼저 꼽을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과 거스 히딩크, 주제 무리뉴,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등 21세기 숱한 명장들이 현역 때 보잘 것 없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연구와 용병술, 리더십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아직 한국에선 먼 얘기다. 국가대표 경력은 물론 프랜차이즈 스타로도 박수를 받아야 하고 거기에 언론 친화적인 모습도 갖춰야 하는 게 이 시대 한국 축구 감독들의 모델이다. 그럼에도 언제 잘려나갈 지 모르는 신세이기도 하다.

그런 한국에서의 ‘성공 법칙’을 거역하고 실력과 뚝심으로 성공의 밑그림을 그린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26일 작고한 고(故) 이광종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다. 이 감독은 1988년부터 프로에서 10년간 266경기를 뛰었으나 국가대표 문턱도 못 가봤을 만큼 큰 인정을 받진 못했다. 유공(현 제주)에서 8년간 뛰었으나 그가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한 곳은 수원 삼성이었고 달변도 아니어서 대중 앞 기자회견 때 적을 게 많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 고 이광종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 / 제공 대한축구협회

 

하지만 이 감독은 그런 핸디캡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앞으로 나갔다. 부족한 점은 어느 새 ‘지도자 이광종’의 장점도 됐다. 그는 2000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 1기로 입문했는데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축구관계자들은 “유소년 전임지도자란 직무는 잠시 쉬어가며 재충전하는 성격이 강했다. 현직에서 제의가 오면 나가는 경우가 꽤 많았다”고 했다. 그런 풍토 속에 이 감독은 유소년 전임지도자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미래를 그려나갔고 2009년 17세 이하(U-17) 월드컵 8강과 2011년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 2013년 U-20 월드컵 8강,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한국 축구 연령별 대회 황금기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의 지도자 인생에서 ‘경험’이란 단어는 없었다. 매 순간이 뛰어들어 ‘증명’하는 무대였다. ‘증명’하지 못하는 순간 그의 자리는 쉽게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2013년 U-20 월드컵에서 8강을 일궈냈음에도 격론 끝에 1년 짜리 아시안게임 지휘봉이 주어진 일은 한국 축구의 풍토가 그에게 얼마나 높은 벽인가를 실감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성인과 같다. 성인팀에서도 내 능력을 입증하겠다”며 기꺼이 받아들였고 우승으로 말했다.

이 감독이 유소년 전임지도자를 시작할 때 그를 지켜본 이용수 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그를 가리켜 “기다릴 줄 아는 지도자”라고 했다. 어린 선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참고 지켜보는 힘이 그에게 있다는 뜻이다. 한편으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낸 뒤 다음 일을 기다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의 인생을 잘 표현한 말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반면에 그를 롤모델로 삼고 커나가는 유소년 전임지도자들은 “이 감독님은 지금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 선수들 이름만 들어도 장·단점과 성장 과정을 훤히 알고 계신다”며 극찬하기도 한다. 누구도 갖지 못한 자산을 갖고 있는 한국 축구의 큰 지도자가 병마에 별세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2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뒤 썼던 ‘지도자 이광종이 증명한 감독 DNA’란 제목과 같은 글로 그의 인생을 기리고자 한다. 하늘에선 이 감독이 하고 싶었던 축구를 ‘기다림 없이’ 마음껏 펼치길 기원한다.

 

김현기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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