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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당신은 진짜 양반일까?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2. 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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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전문 포털 지원 업체’에 의해 완벽한 양반이 된 김정태…투탁(投託)으로 족보를 만들었기에 법적으로도 완전한 양반이 된 김정태는 그때부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어험…어째서 내 아들놈에게 영장이 나왔는고?”

 

“아니, 나이가 돼서 군대 오라는 게 당연한 건데….”

 

“어허 이놈! 네놈이 지금 죽으려고 트위스트를 추는 구나! 감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양반가의 자제에게 천것들이나 하는 군역을 시키려고 하느냐? 군대는 자고로 돈없고, 빽없는 것들이나 가는 곳이지 않느냐? 국회의원 아들들이 언제 군대가는 거 봤냐? 이런 개념을 바겐세일해 버린 놈 같으니라구!”

 

이렇게 아들의 병역을 합법적으로 회피하게 된 김정태…그의 혜택은 이뿐만이 아니었으니, 세금도 대부분 면제되었고, 덤으로 양반이란 이름으로 행정상의 편의도 얻게 된 것이었다. 조선 후기 대동법의 시행으로 갑자기 졸부가 된 상민 계층과 중인 계층은 치부(致富)의 마지막 수단이자, 부의 과시를 위해 너도나도 양반 족보를 사게 되는데…

 

“전하! 갈수록 병역자원이 줄어들고 있사옵니다! 이대로 가다간 조선의 국방은 무너지옵니다!”

 

“전하! 세금도 안 걷힙니다.”

 

“아 쉬파!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괜히 인구정책 만들어서 애낳지 말라고 떠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규모의 경제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구수는 있어야 한다니까!”

 

“전하, 저출산 때문에 그런게 아니옵고….”

 

“저출산 때문이 아니라고? 그런데 왜 병역자원이 줄어드는데?”

 

“그것이…가짜족보를 들고 나온 가짜양반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통에….”

 

“그게 무슨 개깡스런 토킹 어바웃이냐? 가짜 양반이라니?”

 

“아니…거시기…개나 소나 다 가짜족보를 만들어서 양반이라고 하니까….”

 

“야야, 족보가 무슨 애 이름이냐? 그 한질에 기본 수십권이나 하는 족보를 어떻게 위조해?”

 

“그게…거시기 요즘 하도 인쇄기술이 발달해서…민간에서도 인쇄소를 차릴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그랬다. 조선초기에도 족보의 위변조 사건은 간혹 가다 있었으나, 조선 후기 때처럼 이렇게 대규모로…그것도 기업형태로 족보를 위조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족보를 일일이 위조하는 일 자체도 힘들었거니와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인쇄는 국가 차원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건너오자 상황은 돌변 하였으니, 당장 대동법에 의해 상인계층들의 부의 축적이 대규모 적으로 늘어났고, 덩달아 민간차원의 인쇄소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쇄소만 있으면, 족보 위조는 식은 죽 먹기야! 100부고 200부고 있는 대로 찍어내면 돼!”

 

여기에 시시때때로 정부에서 내놓은 공명첩(空名帖)까지 더해지면서 나라의 신분제는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리지널 양반들의 대응책이 나오게 되었으니…

 

“툭 까놓고 말해서…요즘 시대는 돈이 장땡인 시대 아님까? 문중을 이끌려고 해도 돈은 필요하고….”

 

“그래서 어쩌자고? 저 쌍것들한테 족보를 팔자고?”

 

“안 팔아도 어차피 위조할 거 아닙니까? 그럴바엔 우리가 직접 파는 게 낫다는 거죠.”

 

“야! 그러다가 우리 종파랑 도매금으로 같이 넘어가게 되면….”

 

“그러니까 안전장치를 만들자는 거죠. 족보에 올리긴 올리되 별보(別譜)를 만들어서 별책부록에만 올리자는 거죠. 그리고 그 별보에는 별파(別派)라고 해서 따로 파를 만들어 그 안에서만 놀게 만드는 거죠. 그러면 우리쪽 종파랑은 같이 섞일리도 없고…그쪽은 그쪽대로 양반행세 할 수 있어 좋고…어떻슴까?”

 

이리하여 18세기 후반에 이르게 되면, 이런식의 가짜족보와 별책부록 족보가 난립하게 된다. 우리가 은근히 하대로 쓰는 ‘이 양반이~’라는 말의 어원이 18세기때부터 시작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후 구한말이 되어 신분제가 완전히 사라지게 됨으로써, 이런 족보의 값어치가 파지뭉치 정도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시절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때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던 족보 인쇄업자들에 의해 돈만 내면 누구든지 ‘괜찮은’ 양반혈통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우리나라는 너나할 거 없이 다 양반인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자신이 뼈대있는 양반가문의 후손이라 생각하신 독자여러분들…오늘 집에 가셔서 족보를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 어떨런지요? 분명한 한 가지는…자연증가로 아무리 씨를 퍼뜨리고, 가세를 확장시켰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양반 가문의 적정 인구수는 전체 인구의 3% 내외란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전국민의 97%는 자신이 양반출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상황…진실은 언제나 추잡하고 더러운 것이란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르는 대목이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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