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민속의 복원을 계속해온 국립 민속박물관에서는 올 설날부터 관광객으로 하여금 한해의 소원을 적은 종이를 박물관 앞마당에 매달게 했는데 적지않이 5만명의 소원이 모였다 한다.
이 소원을 대나무로 만든 달집에 담아 소지(燒紙)함으로써 승천(昇天) 성취케 하는 의식을 갖는다 한다.
세상사람들은 자연계(自然界)와 초자연계(超自然界), 땅과 하늘, 이승과 저승 - 하는 나름대로의 초월(超越)세계를 상정하고 산다. 그 세계와의 교통수단도 문화권에 따라 같지가 않다. 우리 한국의 그 수단으로 메시지를 담은 종이를 태움으로써 그 연기를 타고 초월세계에 통달되는 것으로 알았다. 이를 소지라 했다. 각종 제사 때 읽는 축문은 바로 소원을 적어담은 종이다.
고사 때 읽는 축문(祝文)은 불상사 없이 무사하게 진행되길 바라는 소원이 담겼고, 무당굿 때 읽는 축문은 병이나 불행을 거둬달라는 소원이 담겨있다. 그리하여 그 축문을 태움으로써 인간만사를 관장하는 초월자에게 통달시켜 선처를 바랐던 것이다.
돈 모양을 한 지전다발을 상여(喪與) 앞에 들고가서 무덤 앞에서 태우는 것도 같은 상징작업이다. 상여나갈 때 부르는 향두가에 보면 우리 한국인은 뇌물(賂物)없이 죽지도 못한다. 실낱 같은 목숨 팔뚝 같은 쇠사슬에 묶여 떠날 때부터 저승사자에게 인정(人情)이라는 뇌물을 바쳐야 저승 가는 길 시장한데 점심도 먹고, 신발도 고쳐신으며, 쇠뭉치 쳐들고 빨리 가자 재촉받지도 않는다. 저승 문전에 다달으면 우두나찰, 마두나찰 달려들어 인정 달라 아우성이고, 심판받는 열두대문마다 어두귀면 나찰들이 형벌도구 차려놓고 인정 달라 손을 내민다. 만약 인정 마련 없이 갔다가는 의복이며 신발, 심지어 눈깔이며 이빨까지 다 빼앗긴다. 그래서 지전(紙錢)을 태워 저승가는 길 노자까지 챙겨주었던 우리 조상들은 휴머니스트다.
결혼한 신랑신부의 아버지가 해로(偕老)를 약속하는 축문을 소지하는 관습도 그 일환이며 서당에서 젊은이들이 장래를 약속한 글을 써 소지하는 것도 그 약속의 신성보증수단이었다 할 수 있다. 곧 소지기원은 한국의 잃어버렸던 정신문화의 단면으로, 물질주의 탁류(濁流)를 역행(逆行)하는 신선한 종이배만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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