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아이들끼리 싸우고나면 짚단을 둘 사이에 쌓아놓고 불을 질러 태움으로써 화해(和解)했던 생각이 난다.
둘 사이에 남아있을 증오(憎惡)의 응어리나 앙금을 마저 불태워버리는 화해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첼 소나타>에 보면 질투에 불타 아내를 죽인 주인공이 못다 소모(消耗)시킨 격정(激情)을 가누지 못할 때마다 종이나부랭이에다 불을 지르고 있다.증오·원한·질투·분노 등 솟구치는 감성을 억제할 자체 내의 이성이 감당할 수 없을 때 방화(放火) 충동(衝動)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뇌(腦)에는 감성과 이성을 다루는 두 뇌 사이에 이를 조절하는 교환대(交換臺) 같은 망상체가 있다 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양육(養育)돼 온 근대화과정에서 작은 일에도 카악! 하는 감성뇌(感性腦)만 비대(肥大)하고, 이를 억제(抑制)하는 이성뇌(理性腦)는 건포도처럼 시들어 이를 조화시키는 망상체는 거미줄처럼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특정(不特定) 다수(多數)를 겨냥한 미국의 총기난사 등 충동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신적 타격(打擊)에 저항력(抵抗力)이 없거나, 경쟁(競爭)에 시달리거나, 내성적(內性的)이거나, 어머니의 간섭(干涉)이 치밀(緻密)하거나, 왕따당하거나 하면 이에 저항할 힘이 없기에 이 힘을 주입(注入)하는 것이 구미 선진국들의 최근 교육풍조라 한다.
지금 미국이나 영국의 상류사회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베르뉘의 <열다섯 소년의 표류기>, 스티븐슨의「보물섬」, 악쇼노프의 <별나라에의 입장권> 등 모험(冒險) 이야기 읽히기가 붐을 이루고 있음도 이성뇌 강화책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도깨비 불이라 하여 전통적 방화관행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불륜으로 아기를 배거나 했을 때 귀신소치로 돌리고자 귀신 도래를 위장하려는 방화일 뿐이지 감정을 못 가누어 불을 지른다는 법은 없었다. 한데 우리나라에서도 이같은 고전적 방화관행이 망상체 마비라는 현대적 방화로 끝바꿈하고 있다.
잇단 소방관들의 살신성인으로 우울했던 지난 한 주였다. 이 두 차례에 걸친 숭고(崇高)한 주검들을 유발한 화재가 누전(漏電)이나 실화(失火)가 아니라 방화였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못 가눈 데서 오는 대량살상행위(大量殺傷行爲)의 토착화를 의미하며 자녀교육에 가정이나 학교가 감당해야할 새 지평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