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때만 해도 전국의 생활용품은 지게에다 지고 다니며 가가호호 방문판매를 했던 '무시로 장사꾼'이 있었다.
팔도에 판매조직이 돼있고 개성(開城)에 있는 도가(都家)에는 은퇴한 노상인들이 세일즈 교육까지 시켜 내보냈다. 그 상술(商術) 가운데 하나로 "세 번 거절해도 다섯 번 권하라"는 것이 있었다 한다. 한 번 권해서 사는 사람보다 세 번 다섯 번 권해서 사는 사람이 단골로 길게 간다고도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겠다는 경우보다 안 사겠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거듭되는 사지 않겠다에 낙심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定)이요, 그 상정에 패배하지 말고 실패에서 오히려 활력(活力)과 반동(反動)의 힘을 더 얻어 재시도하라는 실패 이용(利用)의 경영학인 것이다.
88 서울올림픽에서 미국사람들은 기록상 7관왕이 가능한 수영선수 비욘디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한데 처음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놓쳤고, 이 실패가 남은 다섯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비관(悲觀)했으며 배반(背反)당한 국민의 비난소리도 높았다. 한데 사회심리학자 셀리그만 교수는 남은 다섯 경기는 따놓은 당상(堂上)이라는 점쟁이같은 말을 해서 놀라게 했다. 그는 미국 올림픽선수들이 실패했을 때 그에 충격받아 기록이 내리느냐 오르느냐의 실패친화도(失敗親和度)를 조사한 교수로, 비욘디의 실패친화도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 말이요, 이 예언은 적중해 5관왕으로 개선했던 것이다.
미국에서 세일즈 직종에 신입사원을 뽑을 때에는 지적 능력보다 실패친화도가 높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러고 보면 세 번 거절에 다섯 번 권유(勸誘)의 무시로 상술은 선견(先見)이 아닐 수 없다.
미래를 망치는 악재(惡災)로 실패를 패배로 받아들이는 문화권과 비약(飛躍)하는 호재(好災)로 받아들이는 문화권이 있으며, 우리나라가 전자에 속하고 미국이 후자에 속한다 할 것이다. 비단 기업이나 장사뿐 아니라 인생관리에서도 매한가지다. 대학입시에 떨어지거나 부도났다 해서 자결하는 것을 실패친화도가 높은 미국사람에게 이해시키는 데는 힘이 든다. 더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몸을 뒤로 젖혀야 힘을 얻듯이 실패는 앞서가라는 신의 등밀이다.
이웃 일본에서 실패를 비약의 발판으로 삼는 실패학이 붐을 이루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교과서에서 제국주의라는 실패를 은폐하고 있는 나라이고 보면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