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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농구] ⑯ 비난받는 자리, KBL 심판위원장

--유희형 농구

by econo0706 2022. 11. 1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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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2. 18.

 

비난 받는 자리


KBL(남자프로농구연맹)에서 심판위원장직을 두 차례 역임했다. 욕도 많이 먹었다. 그 자리는 어차피 비난받는 자리다. 2003년 첫 심판위원장을 맡았다. 심판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려고 노력도 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컴퓨터 배정도 시행해 보았다. 하지만 지탄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맡은 시즌에 심판 관련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심판의 미숙한 운영과 구단의 승리욕이 빚어낸 결과였다.

경기가 끝나면 패한 팀은 심판 판정이 불공정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점수 차이가 근소할 때는 불만의 강도가 심할뿐더러 패배 이유를 심판에게 돌리기도 한다. 임원과 감독이 패배의 책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서다. 경기를 마친 후 패한 팀에서 심판설명회를 요청한다. 오심 상황을 편집한 자료를 제출한 후 심판위원장, 해당 심판, 구단 감독이 검토한 후 심판위원회에서 결론을 내린다. 20~40개의 오심 사례를 가져오지만, 평균 3~5개가 나온다. 자기 팀 위주로 판단하기 때문에 오심으로 보이는 것이다.

농구는 공수전환이 빠르고, 신체접촉이 많은 스포츠다. 반칙을 놓치거나, 선수 때문에 시야가 가려 못 볼 때가 있다. 미국 NBA도 한 경기 평균 12개의 오심이 나온다. 억울한 판정도 감수하고 인정한다. 잘못된 판정도 경기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규칙 적용 위반이나 고의성이 있으면 심판당사자는 벌금을 부과받고 퇴출당하기도 한다. 그만큼 심판이라는 직업은 어렵고 힘든 자리다. 사명감과 도덕성, 자신감이 필요한 분야다.

오심 판정, 심판실에 감금


2004년 3월 플레이오프 6강전에서 사건이 터졌다. 홈팀 대구 오리온스와 창원 LG 세이커스전에서다. 중요한 경기라서 내가 동행했다. 경기가 끝난 후 1시간 동안 경기장에서 나오지 못했다. 흥분한 관중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새벽에 귀가했다. 심판의 경기 운영이 미숙해서 발생했다. 많은 대구 홈 팬들을 실망하게 했던 당시 사건에 대해 늦었지만 사과드리고 싶다.

프로스포츠의 묘미는 플레이오프다. 매 경기가 중요하고, 지역 홈 관중의 호응과 응원은 엄청나다. 열광적인 함성에 심판 호각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다. 경기 시작 전 심판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놓치지 말고 집중해서 판정하되 홈팀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중요한 시기에 결정적인 오심이 나왔다. 한 점을 다투는 상황에서 LG의 외국인 선수 빅터 토마스가 엔드라인을 터치한 것이 아니라 한 발짝을 넘어간 상황인데 눈앞에서 휘슬을 불지 않았다. 관중들이 아우성쳐댔다. 최악의 상황은 경기 종료 15초 전에 나왔다. 3점을 앞선 홈팀 오리온스가 팁 인으로 득점했는데, 노 카운트를 선언했다. 당시에는 비디오 판독이 없었다. 득점 무효 사유는 실린더 규정(링 원형 안에서 터치 못 함)을 적용한 것이다. 득점으로 인정해도 되는 상황인데 엄격하게 판정한 것이다. 득점으로 처리되었으면 5점 차가 되어 오리온스가 승리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 종료 직전 3점포를 맞아 연장전을 치렀다. 홈팀 오리온스가 패했다. 화가 난 관중들은 퇴장하지 않고 난리를 치며 항의했다. 심판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감금되어 있다가 사태가 진정된 후 서울로 올라왔다.

해당 심판은 중징계를 받았다. 라인 오버를 묵인한 A심판은 5년, 노 카운트를 선언한 B심판은 2년, 한 명은 1년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KBL 역사상 가장 큰 징계였다.

두 번의 심판위원장


더 큰 사고는 안양에서 일어났다. 홈팀 안양 SBS와 전주 KCC 경기에서 몰수패가 나왔다. 78:68로 KCC가 앞선 상황에서 SBS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20분 이상 경기에 응하지 않자 주심이 경기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몰수패 규정이 없어 당시 점수로 KCC 승리를 결정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KBL 총재를 비롯한 임원 전원이 시즌을 마친 후 총사퇴했다.

나도 사퇴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섰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김영수 씨가 총재로 취임했다. 나를 경기 총괄 운영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일부 농구인으로부터 질시와 함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프로농구 창단에 기여도 하지 않은 공무원 출신이 고위직에 오른 것에 대한 질투가 심했다. 한 시즌을 마치고 물러났다.

영원한 숙제, 심판 자질 향상-판정 일관성


두 번째 심판위원장은 2014년에 맡았다. KBL 프로농구를 직접 설계하고 출범시킨 농구계의 좌장 김영기 씨가 총재로 취임했다. 김영기 총재의 부름을 받아 심판위원장의 중책을 다시 맡았다. 심판의 훈련과 교육에 매진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물러났다.

패한 팀으로부터 늘 불만과 항의를 받아야 했다. 심판 배정, 판정, 경기 운영 등에서다. 경기 중 확실한 반칙인데도 항의한다. “상승세를 왜 저지하느냐?”, “공격자 반칙이 아니라 수비자 반칙이다.” 등 심판에 대한 불만과 시비는 영원히 없어질 수가 없다. 테니스가 처음으로 2021년 US오픈에서 8명의 선심을 없앴다. 영상 기기 판정을 도입한 것이다. 농구는 좁은 공간에서 여러 동작이 일어난다. 비디오 판독은 고의반칙, 터치아웃, 골 텐딩(볼이 하강할 때 터치하는 것) 정도만 할 수 있다. 자주 하면 경기 흐름이 끊어진다. 농구의 묘미는 스피드와 박진감이다. 빠른 공격이 이루어질 때 묘기가 속출하고 시원한 덩크 슛을 볼 수 있다.

해결방법은 없을까? 첫째, 심판의 자질을 높여야 한다. 판정 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신뢰감과 단호함이 있어야 하고, 정직성과 자신감을 갖춰야 한다. 둘째, 판정에 대해 무조건 승복하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경기운영에만 전념하도록 KBL과 10개 구단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 볼썽사나운 항의 장면은 농구 팬들을 실망시키고 결국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선수나 구단은 명심해야 한다.


유희형 / 전 KBL 심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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