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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 (17) 우리를 슬프게 한 대전구장 관중들…1992년 한국시리즈 대 난동

---[韓國프로野球 亂鬪史]

by econo0706 2022. 9. 2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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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30

 

1992년,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전신)는 시쳇말로 잘 나갔다. 정규리그에서 일주일을 제외하곤 언제나 팀 순위 1위 자리를 지켰다. 8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팀 승률 6할대(.651)를 기록했고, 2위 해태 타이거즈와의 승차는 무려 10.5게임이나 됐다. 

팀 타율 3할과 팀 평균자책점 3.68로 투, 타, 공, 수 모든 부문에서 다른 팀을 압도했다. 그 바탕엔 절정의 타격 솜씨를 뽐내며 2년 연속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빛난 장종훈(41홈런, 119타점, 장타율 .659로 2년 연속 3관왕)과 타격왕을 연패한 이정훈, 그리고 마운드에서 19승 17세이브 8패를 기록하며 다승, 구원 2관왕에 오른 송진우와 새내기 정민철(14승 7세이브 4패)의 눈부신 활약 등이 깔려 있었다. 

이런 마당이었으니, 빙그레 팬들이 한국시리즈 우승 꿈을 부풀린 것은 당연하고도 마땅한 노릇이었다.

헌데, 막상 한국시리즈에 들어가자 사정이 달라졌다. 페넌트레이스 3위로 가을잔치에 나간 롯데 자이언츠가 ‘대를 쪼개는 기세’로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4위)와 해태 타이거즈(2위)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와 맞선 것이다.

불길한 조짐은 그렇게 시작됐다. 롯데의 무서운 기세는 빙그레로선 악몽이었다.

 

1992년 10월 9일, 빙그레, 악몽을 꾸다

악몽이 아니라면 무엇이랴.

10월 8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롯데는 박동희(고인)를, 빙그레는 예상대로 에이스 송진우를 선발로 내세워 맞불을 놨다. 결과는 6-8 빙그레의 패전. 힘으로 빙그레 강타선을 억누른 박동희의 빠른 공이 8이닝 동안 돋보인 반면 ‘믿었던 도끼’ 송진우는 롯데 타선에 초반에 난타 당해 3이닝을 넘기지 못한 채 4실점하고 일찌감치 물러났다.

10월 9일 2차전. 빙그레는 새내기 정민철이 호투, 8회까지 무실점으로 롯데 타선을 잘 막아냈다. 그 때까지 양팀은 0-0으로 팽행선을 달렸다.

9회 초 빙그레 김영덕 감독은 다소 지친 기색을 보인 정민철을 내리고 송진우를 내보냈다. 송진우는 롯데의 선두 타자 전준호를 1루 땅볼로 아웃시켰으나 2번 대타 한영준부터 5번 박정태까지 4타자에게 연달아 좌전안타를 내주며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이어 나온 한용덕도 1안타, 2볼넷을 내줘 빙그레는 순식간에 3점을 잃었다.

비록 빙그레가 9회 말에 2점을 추격하긴 했으나 그걸로 끝, 2-3으로 져 시리즈 2연패로 궁지에 몰리게 됐다. 눈높이가 한껏 올라가 있던 대전구장의 ‘일부 과격한’ 팬들의 눈초리가 험상궂게 변했다. 화를 삭이지 못한 대전 팬들의 분노는 ‘자해 난동’으로 치달았다. 상대 팀에 해코지를 하는 대신, 응원 팀인 빙그레 선수단에 분풀이를 한 것이다.

밤 9시께, 경기가 끝나자마자 빙그레 응원 관중 500여명이 대전구장 본부석 앞으로 몰려가 대형유리창을 박살냈다. 경찰이 제지에 나섰으나 소용없었다. 난동군중들의 흥분은 증폭됐다. 대전구장 밖으로 몰려나간 관중들은 구장 정문 유리창 30여장을 파손시켰다. 구장 정문도 떨어져 나갔다.

이어 빙그레 구단 대형버스(대전 5라 6210호)를 도로 한복판에서 가로막고 에워싼 채  돌과 오물 따위를 마구 던져 차 유리창을 깨버렸다.

선수단 버스가 무슨 죄라고. 그들은 돌멩이 빈병, 휴지통 따위를 닥치는 대로 마구 집어던져댔다. 구장 질서 유지를 위해 파견된 경찰 4개 중대 병력은 구장 정문 앞에서 관중들과 옥신각신하다가 돌멩이와 빈병이 어지럽게 날아오자 볼썽사납게도 그만 일사불란하게 구장 안으로 대피하는 뒤태를 보였다. 

 

관중들의 난동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구단 버스에 타고 있던 장종훈과 이정훈, 송진우 등 주전 선수들 대부분은 버스 안에 갇혀 있다가 귀가를 포기하고 일단 구단직원들의 호위 속에 대전구장 덕아웃으로 되돌아갔다.

난동 군중들은 “김영덕 물러가라”를 외치며 1시간가량 경찰과 대치하며 소란을 피웠다. 일부 관중들은 대전구장 옆 도로를 점거, 진압 나온 경찰 4개중대 병력과 격렬한 몸싸움까지 벌였다. 대부분 술에 취한 난동 팬들은 경찰에 맞서 폭력을 휘둘렀고 양쪽 모두 부상자가 속출했다. 일부 취재기자도 난동 관중들이 던진 돌이나 술병에 얻어맞아 다쳤다. 빙그레 구단 버스 운전기사인 김성귀 씨는 관중들의 버스 습격의 와중에 한쪽 다리를 다쳤다. 선수들을 버스에 태운 뒤 차에 올라타려는 김 씨가 관중들이 뒤에서 문을 닫는 바람에 왼다리를 문틈에 끼여 정강이에 상처를 입었다.

롯데 선수단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관중 소요에 대비 선수단 버스를 대전구장에 주차해 놓지 않고 숙소인 대전 새서울호텔로 돌려보냈다. 경기 후 관중 난동이 일자 롯데 구단 측은 무선으로 연락을 취해 구장으로 오던 버스를 되돌려 보냈다. 롯데 선수단은 경기 종료 후 1시간이 지난 뒤인 밤 10시께야 경찰 보호 아래 간신히 구장을 빠져나갔다.

난동 관중들은 소동이 진정된 뒤에도 야구장 부근 골목을 떼 지어 다니며 “왜 잘 던지고 있던 정민철을 빼고 송진우를 넣었느냐”고 김영덕 감독을 성토하며 투수교체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 난동은 1986년 10월 22일 한국시리즈 3차전 후에 벌어진 대구 관중들의 해태 구단버스 방화 사건에 버금가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관중 난동으로 기록될 만한 대형 소동이었다. 빙그레는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결국 롯데에 1승 4패로 져 첫 우승의 꿈이 사라졌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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