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12
강속구에 ‘배짱’ 갖추면 금상첨화
광속구의 시대가 열리는 듯하다. 2002년 한국 프로야구 마운드에 빠른 공의 사나이들이 즐비하다. 140km대 초반이면 족했던 선발투수들의 직구 구속이 최근엔 148∼149km는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투수 기근에 목말라하는 최근 프로야구의 현실과 과학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날이 갈수록 파워가 늘어나는 타자들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투수들의 강속구 신드롬은 무명의 3년차 투수 SK 엄정욱으로부터 불어닥쳤다. 엄정욱은 최고 156km, 평균 구속 150km의 놀라운 직구 스피드를 자랑하는 강한 어깨를 갖고 있다. 5월10일 인천문학구장 기아전에서 9회 이종범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이미 지난해에도 1군서 몇 차례 뛰었으나 직구 스피드가 이 정도로 뛰어나게 기록되지는 않았다. 이날 문학구장 스피드건에는 무려 156km가 찍혀 나왔다.
고졸 투수들의 빠른 직구는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현상이다. 지난해 입단한 삼성의 이정호도 150km대의 스피드를 보유하고 있다. SK 2군에는 평균 구속 147km 이상이 아니면 대접도 못 받는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실제 SK는 올해 고졸 1∼3년차 투수들이 대거 선발투수로 나서고 있는데 한결같이 투수의 최고 덕목인 빠른 스피드를 갖고 있다. 마운드에‘영건’(young gun) 풍년이 든 셈. 이 밖에도 LG의 방동민, 롯데 임봉춘 등 아직 1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투수들도 145km 이상의 평균 구속으로 코칭스태프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엄정욱과 이정호는 지난 5월 하순 일제히 다시 2군으로 되돌아갔다. 이유는 제구 불안. 볼카운트가 조금 몰린다 싶으면 백스톱(포수 뒤쪽의 그물망)으로 공이 솟구치기도 하고, 타자의 헬멧을 겨냥하기도 한다. 해당 구단의 코칭스태프는 “문제는 심리적인 데 있다. 마인드컨트롤이 쉽게 되지 않고 있다”고 평한다. 시쳇말로 ‘깡다구’에서는 아직 낙제점인 미완의 대기들이다.
신은 두 가지 재능을 선물로 주지는 않나보다. 엄정욱과 이정호, 모처럼 나타난 광속구의 사나이들은 강속구 투수지만 마인드컨트롤이 좋지 않았던 박동희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타고난 스피드와 제구력으로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한 선동렬의 길을 걷게 될까. 수년 뒤 마운드를 호령할 영건 투수의 파이팅을 기대해 본다.
김성원 /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 rough@sportstoday.co.kr
주간동아 338호 (p8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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