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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일신라시대의 경제 생활

대한민국 경제歷史

by econo0706 2007. 3. 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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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10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귀족중심의 경제는 더욱 탄탄해졌습니다.

 
귀족은 많은 땅과 목장을 기반으로 재산을 형성하였으며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키워 갔습니다. 귀족들의 세력이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국가가 땅이 없는 농민에게 땅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귀족들의 세력이 다시 커지고 왕족과 귀족의 사치스런 생활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진 농민은 도적이 되거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방직기술과 금은 세공품 및 나전칠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든 제품들은 중국이나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경주는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울산에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드나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33년 일본 동대사 정창원에서 통일신라시대 서원경 부분의 4개촌의 장적이 발견되었습니다. 8세기 중엽 경덕왕 때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에는 촌주를 통해 국가가 농민을 통제했으며 3년마다 노비를 포함하여 인구, 가축의 수, 뽕나무나 잣나무 숫자까지 파악하여 기록하였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무역은 견직물, 베, 해표 가죽, 금·은 세공품을 수출하고 비단, 책 및 귀족의 사치품을 주로 수입하였습니다. 이때의 교역은 전라남도 영암에서 중국의 상하이, 경기도 남양만에서 산동반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당나라, 일본과의 무역을 장악하였습니다.

 

자료제공 : 재정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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