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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잠 못 이루는 가을밤에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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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70세 전후라면 해배 후 고향에서 생활한 때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세월입니다.
 
다산은 그 무렵에 가장 많은 시를 지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시절의 서정시들은 너무나 좋고 훌륭하기도 합니다. 1830년이면 다산의 나이 69세였는데, 그해에 그 유명한 귀공자 해거도위(海居都尉) 홍현주(洪顯周 : 1793~1865)가 먼 시골인 두릉(斗陵)으로 다산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해거도위가 누구입니까. 그렇게도 다산을 좋아했고 그렇게도 믿어주고 신뢰하던 학자군주 정조대왕의 외동 사위가 아니던가요. 그야말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귀인에다 시문(詩文)에 뛰어난 당대의 명사가 바로 ‘영명위(永明尉)’라는 작위를 받은 홍현주였습니다.
 
“속세의 신선모습 그 누가 비길소냐. 귀인에다 유학자임은 옛날에도 드물었네“(塵界仙標誰可擬貴人儒雅古應稀)라고 다산이 칭찬했듯이, 그는 대단한 당대의 귀공자에 시문이나 유학(儒學)에 넉넉한 문사였습니다.
 
1831년은 다산이 70세이던 해, 그 해에도 홍현주가 다산을 찾아와 수종사(水鍾寺)에 오르자고 했으나 몸이 늙어 아들들의 제지로 젊은 사람들만 산에 오르고 잠 못 이루는 밤에 홀로 누워 외로운 신세를 읊은 다산의 시는 정말로 멋있습니다.
 
    검버섯 피고 등은 굽어도 마음은 어린애                                凍梨痀背尙童心
    한 풀에 비로봉 정상에 오르렸다만                                       一蹴毗盧頂上臨
    노약하다며 아이들의 제재를 심히 받으니                              劣弱苦遭兒輩制
    효도가 효도 아니라 증삼(曾參)이 생각키네                            孝乎非孝憶曾參
  
                                (밤에 누워서 무료하기에 장난삼아 10수를 지어 답답한 마음을 풀다)
 
10수 중의 시 한 수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증삼은 어버이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주던 유명한 효자였기에,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말리는 아들들을 탓하면서 해본 이야기일 것입니다.
 
얼굴에 저승꽃이 피어나고 꼬부장 등이 굽은 노인네, 마음만은 동심(童心)이라니, 다산의 시 짓는 솜씨를 어떻게 따를 수 있을까요. 10수로 된 시,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지만 하도 뛰어난 표현이어서 한 수만 보았습니다.
 
늘그막에 아들보다 더 젊은 임금의 부마 홍현주의 내방은 다산을 매우 즐겁게 해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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