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347. 경학(經學)이 왜 중요한가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5. 14:37

본문

정자다산, 누가 평가하더라도 탁월한 경학자였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습니다.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하여 주자(朱子)의 성리학적 해석을 모두 바꾸어 실천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경학 체계로 새로운 해석을 내렸습니다. 그런 경학 관계 연구서가 232권이 넘는다는 것이 다산 자신의 주장이었습니다. 강진의 유배살이 초기에 정말로 생활하기 불편하던 밥과 술을 파는 노파의 주막집 오두막에 기거하면서도 그는 『예경(禮經)』과 『역경(易經)』을 골똘히 연구하여 거대한 저술을 이룩해냈습니다.
 
『역경』은 다섯 차례나 수정(修正)과 개고(改稿)를 거듭하면서 양파의 껍질을 벗겨 알속으로 들어가는 치밀한 방법을 동원해서 거듭거듭 참뜻을 찾으려고 노력과 지혜를 다 바쳤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경(經)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을까요.
 
“경의 뜻이 밝혀진 뒤에야 도(道)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 도를 얻은 뒤에야 비로소 심술(心術)이 바르게 되고, 심술이 바르게 된 뒤에야 덕(德)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경학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더러 선유(先儒)의 학설에만 의거하며 같은 무리들과만 함께하고 다른 학설은 공격하여 [黨同伐異] 감히 다른 학설은 의논조차 못하게 한다. 이들은 모두 경을 빙자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무리들이지 진심으로 착함을 향해가려는 사람들이 아니다”(經旨明而後道體顯 得其道而後 心術始正 心術正而後 可以成德 故經學不可不力 有或據先儒之說 黨同伐異 令無敢議者 是皆 藉圖利之輩 非眞心向善者也 : 「爲盤山丁修七贈言」)(『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왜 경의 연구에 생애를 걸어야 하는가의 답변도 되지만 당시 학계의 동향이나 학문 풍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주자의 학설에 반대의사를 표했던 윤휴(尹鑴)나 박세당(朴世堂)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혹독한 탄압에 생명까지 잃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했던 이야기일 것입니다.
 
얼마든지 새로운 의견을 낼 수 있어야만 진리가 밝혀질 경학, 당동벌이가 계속되어서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학문의 자유를 외쳤고 참다운 경의 뜻을 밝히려고 애쓰던 다산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박석무 드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