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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학자 주군(主君)에 실학자 신하(臣下)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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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조선 5백년 왕조, 왕조 초기에 세종대왕이 있었다면 후기에는 정조 대왕이 있었습니다.
 
정조는 재위(在位) 24년 동안 신하들의 학문과 질을 높이려고 규장각(奎章閣)을 창설하여 재주 있는 현신(賢臣)들이 마음껏 연구하고 공부하여 나라 다스릴 역량을 키우게 해주었습니다. 규장각이 정조 시대 지혜의 보고였다면 집현전(集賢殿)은 세종 때의 어진 신하 양성소였습니다.
 
훌륭한 임금과 뛰어난 신하들이 제대로 만나 훌륭한 치세(治世)를 이룩하는 경우를 ‘어수지계(魚水之契)’, 즉 물고기가 강물에서 마음대로 뛰놀 수 있는 경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종 때의 집현전 학사들이나 정조 때의 규장각 학사들의 경우가 바로 ‘어수지계’였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의 신하를 꼽자면 바로 다산이었고, 정조와 다산이야말로 진정한 ‘어수지계’였을 것입니다.
 
“사람이 그 나라에 살면서 임금의 집에 들어가 빛나는 임금의 풍채를 가까이 할 수 있다면 비록 청소하는 일을 맡아도 영광스러운데, 황차 궁중 내부에 비장된 책과 여러 임금들의 보배로운 문적을 가지고 문필에 종사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또 그러한 일을 한다면 비록 이익이나 봉록(俸祿)이 없다 해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더구나 팔진미의 음식이나 오후청의 귀한 음식까지 날마다 하사하니 할말이 있겠는가.…” [규영부교서기(奎瀛府校書記)]
 
정조가 얼마나 신하들을 아끼고 우대했으며, 그런 대우에 신하들은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여겼었던가를 그냥 알아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몸을 바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알아주는 정조에게 어떤 신하가 몸을 바치지 않았겠습니까.
 
무릇 국가를 경영하는 군주라면 반드시 재주 있고 올바른 신하를 등용시켜야 하고 등용된 신하에게는 온갖 정성을 다 바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세종의 치세와 정조의 문예부흥기는 그렇게 해서 이룩되었습니다.
 
천하의 인재를 고르는 것 같지도 않고, 골라 놓고도 제대로 정성스럽게 대우해주지도 않는 것 같은 요즘 세상은 그래서 소란스럽기만 하는 것 아닐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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