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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솟아오르던 다산의 시심(詩心)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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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경학자이자 경세가이던 다산, 높은 수준의 시인이었기에 2500여수가 넘는 방대한 시를 남겼습니다.

 

어리던 7세에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듯이 그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30대 초 아버지 상을 당하여 집상(執喪) 하던 시절에 지은 시가 없고, 한창 경학연구에 몰두하던 다산초당의 시절이던 50세의 1811년에서 57세이던 1818년까지에 전하는 시가 많지 않을 뿐, 운명하던 3일 전까지도 계속하여 많은 시작을 남기고 있습니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대부분의 학문연구를 마무리하고 한가롭게 고향에서 안온한 생활을 하던 무렵에는 참으로 많은 시를 지었습니다. 탐관오리들의 착취와 비리에 분노하던 시보다는 강촌마을인 고향의 강산을 읊고 뜻 맞는 친구나 후학들과 어울려 지은 고도의 서정시들을 무수히 남겼습니다. 필설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탁월한 시들이 그 무렵에 나왔습니다.

 

신묘(辛卯:1831)년에 지은 것으로 명기된 24수의 「여름날 전원의 여러 가지 흥취…」라는 시는 바로 다산의 나이 70세 때의 시입니다. 정말로 절창(絶唱)이 아닌 시가 없지만 그중의 시 한수만 보기로 합니다.

 

   내기 활 쏘고 술 취해서 비틀비틀 돌아오는 길                  醉步之玄賭射歸
   석양에 사람 그림자 멀리서 들쑥날쑥                              夕陽人影遠參差
   시골에선 계산하여 점수 많기만 따지니                           鄕村釋算稱多
   종이에 그린 승전기를 높다랗게 쳐드네                           紙高擎勝戰旗

 

술 취한 내기꾼들이 귀가하는 석양의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비틀거리는 그림자가 석양빛에 들쑥날쑥 이라니 대단한 묘사력이 아닌가요. 그 시절에도 술내기 활쏘기야 있었겠지만, 요즘처럼 ‘바다이야기’ 사행성 도박이야 없었겠지요. 도박이나 노름을 해도 이런 풍류가 있어야지, 남을, 그것도 애잔한 서민들을 등쳐 떼돈을 버는 그런 몹쓸 짓은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물네 수, 어느 것 하나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이 아름답고 멋지지만, 비틀거리는 내기꾼의 이야기가 하도 멋있어서 하나만 거론했습니다. 70세의 노인에게서 어떻게 그런 정도의 시심이 솟아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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