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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다산학의 한계(限界)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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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어떤 사람이 저에게 지나치게 다산을 미화하고 신격화해서 공평한 판단을 하는데 어렵게 한다는 지적을 해온 적이 있습니다.
 
답변할 겨를도 없고 특별히 변명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묻어두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다산은 인간이었기에 장점도 많지만 단점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장점만을 알리는 일에 급급하여 단점을 지적하고 비판할 겨를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 한 차례도 다산이 인간을 초월하여 신에 가깝다고 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유배지에서 어린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펑펑 눈물을 흘리던 인간 다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흑산도에서 귀양살던 둘째 형님에 대한 한없는 안타까움에 대해서 늘 기술했습니다. 백성들에게 탐학질하던 관리들에게 무서운 분노를 느끼며 마음 졸이던 인간 다산의 면모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천재성, 그의 탁월한 학문 역량, 열열한 애국심에 취해서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적인 조명을 했던 점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저의 저서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송강 정철이나 고산 윤선도는 다산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인물이지만 그분들은 우리나라 글인 한글로 시나 시조, 글을 남겼는데, 훨씬 뒤의 인물인 다산은 모든 글을 한자로만 남겼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요.
 
민중의 삶을 그렇게 애달파 여기고 그들의 아픔에 그처럼 동참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들인 정학연이 약방을 열어 의원 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는 신분의 저속화라 믿었던 탓인지 그처럼 화를 내고 분노를 표했던 점에는 그의 인간적 한계와 시대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높은 벼슬이나 깨끗한 직책에 있는 사람, 덕이 높고 학문이 깊은 사람도 의술에 대해 터득하고 있으나, 스스로 천하게 의원노릇을 하지 않고 병자가 있는 집안에서 위급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만 겨우 처방을 해준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렇게 말하면서 만약 약방차려 의원노릇을 계속한다면 “살아서는 연락도 안할 것이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니 네 마음대로 하거라. 다시 말도 하지 않겠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오늘의 인식에서 볼 때, 이런 분노야말로 인간과 시대에 대한 다산의 한계임이 분명합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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