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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다산과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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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자에게 가장 기쁜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해주고 연구결과에 찬사를 보내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가 아닐까요.
 
18년의 풍상(風霜)을 겪은 유배살이, 얼마나 길고 모진 세월이었습니까. 그러나 다산은 서럽고 고달프게 여기지 않고,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절호의 겨를이라 여기고 밤을 낮으로 여기며 각고의 연구를 계속하여 500권이 넘는 방대한 실학관계 저서를 완성하는 대업을 이룩하고 말았습니다.
 
57세의 초로의 나이로 고향에 돌아오자, 그리운 가족들과의 생활이야 즐겁기 짝이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고독한 때도 없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책을 안고 돌아온 지 3년째이나 함께 읽을 사람도 없다”(抱歸三年 無人共讀)라는 슬픈 이야기를 했던 적도 있으나, 진리나 정의는 영원히 외로울 수 없듯이, 끝내는 높은 다산의 학문 경지에 찬탄을 금하지 않는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해배 다음 해인 1819년부터 다산의 고향마을 인근에 살던 당대의 큰 학자 석천(石泉) 신작(申綽:1760-1828)과 교류하면서 대단한 칭찬을 받았고, 1821년 여름부터는 당대의 석학이자 문장가이던 대산 김매순(1776-1840)과의 만남을 통해 연구업적들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김매순은 안동김씨로 당대의 노론 벌열의 집안 출신인데다,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이라는 고관에 오른 분이었고, 학문과 문장으로 높은 평판을 받던 분이었습니다. 그가 다산의 『매씨서평』이라는 경학관계 저술에 훌륭한 평가의 글을 보내준 것이 다산의 회갑해인 1822년 1월 29일이었습니다. 그 며칠 뒤인 2월 4일자의 다산 편지에, “박복한 목숨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이제 죽을 날도 멀지 않은 때에 이러한 편지를 받고 보니 처음으로 더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始有生世之意)라는 감격적인 답장을 보내고 있습니다.
 
당파도 다르고 나이의 차이도 있는 이름 높은 학자의 인정을 받자, 기뻐하던 다산. 노년기에 학문적 벗을 얻었기에 그들의 사귐은 즐겁고 기쁘기만 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만남이었습니까.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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