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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다산(茶山)과 안동(安東)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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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경상도의 안동 고을, 자칭이건 타칭이건 입을 열면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 호칭하며 맹자(孟子)나 공자(孔子)가 살았던 유교(儒敎) 문화의 수준 높은 고을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곳입니다.
 
성씨마다 이름난 유학자 한두 분을 추대하고 한번 자리잡은 세거지지(世居之地)를 떠나지 않고 종가(宗家)를 지키고 종손(宗孫)을 떠받들면서 전통적 삶을 가장 많이 유지하는 고을입니다.
 
조선의 유학사에서 이름만 부르면 그냥 알만한 학자들이 줄줄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후손들도 그들의 유훈을 받아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세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퇴계 이황선생을 필두로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의 본향이기도 하지만 농암 이현보 같은 선배들도 그곳 출신입니다. 번암 채제공(蔡濟恭)이 정리했던 대로 근기(近畿) 남인의 학통은 퇴계로부터 출발합니다. 퇴계의 제자에 한강 정구(鄭逑)가 있으며 그 제자에 미수 허목(許穆)이 있으며 허목을 사숙(私淑)한 제자가 성호 이익이며 그 성호의 학맥에서 다산 정약용이 배출되니, 퇴계의 고향이던 안동은 바로 다산에게도 학문의 고향이 되는 셈입니다.
 
다산은 28세이던 1789년 초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시작되는데 7품관인 희릉직장에 제수되면서 곧바로 초계문신에 발탁되고 가주서(假注書)의 직분으로 울산도호부사로 봉직하던 아버지를 찾아뵙는 경상도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신방급제의 문신(文臣)이던 당당한 다산은 학문의 고향 안동을 들러 고려 공민왕 때에 창건했다는 영호루(映湖樓)라는 정자에 올라 서애 유성룡의 마을인 하회(河回)를 생각하는 시를 지었고, 그곳에서 가까운 지방의 벗들을 만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의성김씨 대족들인 좌랑 김한동(金翰東)의 집에 들러 전적(典籍) 벼슬의 김희직(金熙稷)이나 김희락(金熙洛)을 비롯하여 진성이씨 등 많은 선비들과의 회후가 이루어졌습니다. 밤을 새우며 시를 짓고 담론을 나눈 기록이 보입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안동은 아직도 유서 깊은 유학의 냄새가 가시지 않은 전통적인 고을입니다. 그래서 그때도 다산은 그곳을 좋아했던가 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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