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318. 종두법의 공동연구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7. 10. 21:44

본문

정자 사람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의술은 그 공이 참으로 크고 훌륭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술(仁術)이라고까지 호칭하면서 그 덕을 칭찬하기 마련입니다. 병마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어진 마음에서 나오는 기술이어서 ‘인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여겨집니다.
 
정말로 인간을 사랑했던 다산 정약용, 그는 문학가이고 철학자이며 경세가였지만 그가 연구해낸 의학연구의 업적은 조선 5백년 동안에 최고의 수준이었음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마과회통』을 비롯한 그의 의학연구서 또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종두설(種痘說)」이라는 짤막한 글을 읽어보면, 당시 북학파의 거장이던 초정 박제가(朴齊家)와 공동연구를 통해 천연두(天然痘), 즉 마마의 예방법을 연구하여 그 근본적인 치료법인 종두(種痘), 즉 약하게 채취해낸 마마의 균을 배양하여 건강한 어린이에게 투입시켜 마마를 앓은 뒤에 그 면역성을 길러 마마의 질병에 감염되지 않을 방법을 연구해냈던 것입니다.
 
근래 황모 교수 등이 공동연구를 한답시고 난치병 치료의 줄기세포 배양 문제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가 용두사미로 끝난 허망함에 비하면, 초정 박제가와 다산이 공동연구로 개발해낸 마마의 예방법은 정말로 훌륭한 의학연구의 업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의 글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정말 슬픈 곡절이 또 있었습니다. 세심한 연구결과로 얻어낸 종두법이 의사를 통해 시술되어가다가, 그 의사가 천주교 신자라는 누명을 쓰고 정치적 탄압을 받아 고문으로 거의 죽게 되자 종두법도 끝내 단절되고 말았다는 비통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초정과 다산의 공동연구로 종두가 완성되어 널리 퍼지기 전에 신유교옥(辛酉敎獄)으로 초정은 함경도의 경원(慶源)으로 다산은 경상도의 장기로 귀양가는 비운을 맞았고, 의사까지 무고로 반죽음을 당해 그 훌륭한 연구업적이 제대로 펴지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나 민간에서는 전해졌다니 다행입니다.
 
정권욕으로 의학자까지 탄압했던 이유로 공동연구의 그 훌륭한 결과가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음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