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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조선시대의 다방을 찾아서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9. 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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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커피 브레이크와 같은 조선 판 티타임을 가지자는 의견….
 
“아니, 영국놈들만 티타임을 가진다는 법이 있어? 우리도 우리식의 티타임이 필요하다니까! 홍차 대신에 녹차! 쿠키 대신에 인절미! 딱 이다!”
 
이리하여 만들어 진 것이 조선 판 티타임인 다시(茶時)였으니, 서울의 각 관청은 업무가 끝날 무렵에 맞춰 관원들끼리 하루의 업무를 정리하는 티타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차 마시는 걸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각 관청마다 자판기를 갔다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그렇다고 티켓다방에 티켓 끊어서 다방레지를 불러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이거 참,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예, 다방레지를 각 관청마다 두는 건 어떨까요?”
 
“다방레지? 이게 지금 개념을 바겐세일 해 버렸나...신성한 업무시간에 다방레지를 불러서 희희덕 거리겠다고? 너 죽을래?”
 
“아니, 그런 의미의 레지가 아니라, 순수한 의미로 차를 끓이고 차 시중이나 드는 그런 여자를 두자는 거지요. 저는 그저 순수한 의미로 가볍게 어드바이스 해 드린 겁니다!”
 
“흠, 순수한 의미로 차 끓이고, 차 시중하는 여자라….”
 
“아무래도 남자가 끓이는 것 보다는 여자가 끓이는 차가 맛있지 않겠습니까? 또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여자가 훨씬 낫죠.”
 
“오케이 거기까지!”
 
이리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다모(茶母)였던 것이다. 차 문화의 확산과 다례(茶禮)를 권장하기 위한 정부의 히든카드인 다모(茶母)는 차 문화의 확산과 함께 급속도로 각 관청에 퍼져 나갔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일반적으로 다모(茶母)하면 하지원이 나온 좌포청의 여형사로 생각하는데, 원래 초창기의 다모는 일반 서민 여성들이나 의녀들 중에서 성적이 나쁜 애들을 골라서 다모를 만들었었다. 그러던 것이 차 마시는 문화가 후퇴하게 되면서 다모의 성격도 변질, 급기야 여자 형사로 180도 변질되게 되었던 것이다. 자,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차 문화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조선판 티타임인 다시(茶時)에 국가적으로 차 끓이는 관청인 다방(茶房)까지 두면서 의욕적으로 다례(茶禮)를 권장하던 조선이 일순간 이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인냥 차에 관한 모든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린 이유…그것은 바로 차 문화를 위협했던 술 문화와 조선의 기본 컨셉인 숭유억불 정책 때문이었으니….
 
“차가 몸에 아무리 좋으면 뭐하냐고…. 그래봤자 차지. 그걸 마신다고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술은 그래도 취하기라도 하잖아. 안 그래? 그리고 말야, 이 험난한 세상에 그까이거 차 마신다고 세상일이 해결돼? 걍 술이나 빨면서 한세상 잊는 거야!”
 
“좋아 가는 거야!”
 
“그 맹숭맹숭한 차 마시면 뭐가 달라져? 그래봤자 녹차 티백이지. 걍 소주나 마시면서 사는거야.”
 
“차? 녹차? 그런 건 양반네들이나 마시는 거지. 우리 같은 무지랭이야 탁주 한사발이면 그만이지. 차 같은 건 배우고, 배부른 양반들이나 마시는 거지….”
 
여기까지는 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겠다. 자, 그런데 진짜 문제는 바로 숭유억불이란 정책적 키워드였으니, 원래 한반도의 차 문화는 불교에 의해 번성된 문화였다.
 
“원래 차라는 게 말야…졸음 예방에는 짱이거든. 커피보다 카페인이 더 많은게 녹차란 말야. 그리고, 이 차라는 게 말야…성질 자체가 깨끗해, 욕되지 않고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딱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게 바로 다도(茶道)란 말이지.”
 
이랬던 것이었다. 이 덕분에 국교를 불교로 채택한 고려왕조 시절에는 차 문화가 번성하게 되었지만,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부터는 이야기가 살짝 달라지 게 되는데, 아무리 왕들이 나서서 다방도 만들고 다시도 정해 놨다 하지만, 이제까지 불교와 함께 달려온 다도 문화였기에 불교를 때려잡으니, 다도문화도 자연 쇠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조선 초에는 불교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한 왕들이 많았기에 그럭저럭 버텨 나갈 수 있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엔 신권(臣權)이 왕권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불교를 보호할 최소한의 버팀목도 사라진 상황. 결국 차 문화는 술 문화에게 잠식 되게 된 것이다.
 
태조가 경복궁에 다방(茶房)까지 차리며 권장했던 다도(茶道)문화 이건만, 지금 후손들에겐 드라마 속에 나오는 좌포청 비밀 여형사 다모(茶母)로만 기억 되어진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대목이다. 조선의 다방(茶房)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다방도 하나 둘 역사의 뒤편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서, 역시 시간 앞에서는 그 어떤 문화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확인 하게 된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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