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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소고기를 먹는 자 사형에 처하겠노라!?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9. 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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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상으로 조선에서의 ‘소의 도축’은 불법이었다. 농우(農牛)가 부족해지면 벼농사 자체를 하기 힘들어지고, 이렇게 되면 국가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다는 논리였으니, 조선의 왕들은 개국 초부터 강력한 ‘소 도축 금지 정책’을 펴나가게 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전회에 설명한 태종이었다.
 
“이것들이 말야. 먹지 말라면 먹지 말 것이지, 이게 뽕이냐? 계속 먹게? 안 되겠어 오늘부로 ‘소고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 앞으로 소고기 잡는 놈들…그러니까 뭐라고? 신백정(新白丁)놈들은 도성 90리 안으로 못 들어온다! 알았지? 소 잡는 놈들이 다시 도성 안으로 기어 들어오지 못하게 금살도감(禁殺都監)을 만들어서 철저하게 단속해 알았냐?”
 
그랬다. 이 당시 태종 과감하게 소를 잡는 것 자체를 규제하였으니,
 
“이게 또 공급이 없으면, 수요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니까 그래….명나라에서도 쇠고기 판매 및 유통 금지령을 내려서 효과를 봤다니까, 우리도 이렇게 하면 꽤 약발이 먹힐거야.”
 
이런 태종의 바람은 얼마가지 못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사람이란 게 먹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니까요! 성매매 금지법 보십쑈! 파는 애들, 사는 애들 모조리 아작 난다고 했지만, 그게 줄어들었슴까? 이건 기본적으로 마인드가 변해야 할 수 있는 겁니다!”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이 시키야! 마인드를 어떻게 바꾸냐? 이미 고기 맛을 본 것들인데….”
 
“아니 그럼 돼지나, 닭, 꿩 쪽으로 입맛을 유도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유도한다고 유도가 되냐? 고기를 먹는 것들이 법을 만들고 관리하는 놈들인데 말야.”
 
“그렇다고 이대로 소들이 도축당하는 걸 볼 수는 없사옵니다! 특단의 대책을 만드셔야 하옵니다!”
 
육식자(肉食者 : 고기 먹는 사람, 좀 사는 것들)가 누구던가? 사회 기득권층 아니던가?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있는 것인데, 공급하는 쪽을 계속 막는다 하여, 그 수요가 줄어들까? 이는 성매매 금지법을 보면 알 수 있는 상식선의 문제였는데,
 
“이시키들! 서울 안으로 들어오지 말랬는데, 계속 기어들어와? 안되겠어! 서울로 몰래 기어들어온 신백정 놈들을 전부 잡아다가 해안가로 쫓아내! 그리고, 앞으론 소고기를 사는 놈들도 처벌하도록 할테니까, 사먹는 놈들…걸리면 죽어!”
 
세종의 강력한 금살령(禁殺令)…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백정들이야 쫓겨나도 금방 다음 백정들이 들어와 소를 잡으면 될 것이고, 고기를 주로 소비하는 사회 기득권 세력들은 법위에 앉아 있었고, 금살령을 내린 임금부터가 소고기를 먹고 있었으니, 과연 이법이 지켜질 수 있었을까? 금살령을 말한 세종이 거꾸로 소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설렁탕의 유래였던 것이다.
 
원래 조선이란 나라가 농업국가가 아니던가? 농업국가란 이유 때문에 해마다 나라에서는 왕이 직접 매년 경칩 절기 후 해일(亥日) 축시(丑時)에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하게 되는데, 이 곳이 어디냐면 바로 제기동(祭基洞 : 제사 지낸 터)이었다.
 
선농제라는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는데, 왕과 세자, 문무백관들이 저마다 나아가 직접 소를 이끌고 친경(親耕)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 모습을 백성들이 보게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이 모내기를 하는 모습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를 다시 세종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면…세종이 선농제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들이쳤다는 것이다. 오도가도 못하는 와중에 배는 고프고, 몸은 춥고…이때 세종이 결단을 내렸으니,
 
“야야, 오늘 선농제에 썼던 소 잡아라! 애들 다 얼어죽기 전에 뜨끈한 국물이라도 좀 먹여야 겠다!”
 
“아니…저기…지금 양념도 없구요. 결정적으로 금살령을 내리셨는데….”
 
“지금 그게 문제야? 뜨뜻한 국물이나 좀 먹이자는 건데, 걍 맹물에 고기랑 뼈넣고 끓여! 그리고 내가 왕인데 어떤 놈이 시비를 걸어?”
 
야사에 전해지는 설렁탕의 유래가 바로 이것이었는데,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소 금살령이 어디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아울러 나라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나라의 이름으로 소를 잡았으니,
 
“야야, 요즘 군바리들 졸라 뺑이치고 있는데, 소나 한 마리 잡아서 위문이나 가자. 까짓거 소 한 마리 잡으면 다들 좋아하지 않겠어?”
 
“이번에 대비 마마 생신인데, 너비아니 풀 세트로 한번 돌리자구….”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소고기 못 먹는 놈은 없는 놈이란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조금 지나자 소고기가 ‘훌륭한 뇌물’의 역할이 되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쌀이나 비단을 들고 가 뇌물을 주던 것이,
 
"대감, 이번에 소 등심으로 한 열근 끊어왔습니다.”
 
“어허! 김영감 무슨 돈이 있어서 소 등심을…. 그나저나 저번에 김영감이 부탁했던 자제분 음서는 내가 긍정적으로 한번 검토해 보겠소.”
 
오늘날 명절 때만 되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갈비 종합선물세트’의 원형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나라에서 의욕(?)적으로 소고기의 생산, 판매, 유통을 제한하려 하였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미 한번 고기 맛을 본 것을 말이다. 더구나 그 법을 입안하고 실천해야 하는 자들이 가장 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인 것을…. 어쨌든 조선시대의 소 금살령은 그렇게 조선이 끝날 때까지 쭉 이어져 내려왔었다. 물론 지켜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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